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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과 메모리얼 데이

미국 들여다보기 - 43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2년 후 전쟁이 있었다. 6.25 동란. 당연히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군인과 민간인 가릴 것 없이 남쪽 사람, 북쪽 사람 참 많이도 사망했다. 그뿐만 아니다. 남쪽을 돕기 위해 북쪽을 돕기 위해 나라 밖에서 들어온 군인들의 인명피해도 있었다. 6. 25 동란이 끝나고 한참 후 우리 국군이 해외에 파병되었는데 월맹과 전쟁을 하고 있던 월남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월남에서도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그리고 더 한참 후에는 우리는 국제연합(UN)의 평화유지군 일원으로 해외에 파병했다. 



  다음은 미국. 미국은 남북전쟁(Civil War) 이후로는 자기네 나라 안에서 일어난 전쟁은 없다. 즉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미국은 외적이 미국 땅 안에 쳐들어와서 그들과 맞서 싸우는 그런 전쟁을 해본 적은 없다는 얘기다. 나라 밖에서 벌어진 전쟁에 미군이 파병되어 전투를 수행했다. 1, 2차 세계대전이 그랬고 월남전이 그랬다. 그리고 모든 전쟁에는 인명피해가 따르는 법이므로 미국이 개입된 전쟁에서도 당연히 미국 측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니 우리도 미국도 전쟁에서 발생한 인명피해가 있다는 점은 같다. 여기서는 군인의 경우만 생각해보기로 한다. 우리와 미국은 전사한 군인을 대하는 태도에 공통점이 있다. 두 나라 모두 그들을 기리기 위한 날이 있고 그리고 그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어있다. 공휴일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날이니까 당연히 국가적 행사가 있다. 우리는 6월 6일, 현충일. 유흥업소도 영업을 하지 않는 날. 미국은 전몰장병 추모일인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5월의 마지막 월요일.



  이제는 다른 점. 미국은 전사자를 그 땅에 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데려오려고 노력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유골이라도 돌아오도록 정부는 노력을 다한다. 심지어 6.25 동란 중 북한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골을 받아오기 위해 북한에 돈을 주기도 했다. 수십 년이 지난 유골이라도 DNA 감식 등 현대 최신 기술을 이용해서 그가 누구인지 알아낸다. 그 비용을 기꺼이 감수한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하여간 집으로 돌아간다는 가능성이 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를 하는 게 아닐까.



  우리에게는 6. 25 동란 때 전사한 군인들에 대한 수색 발굴을 위한 국가기관이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그동안 국내에서 만 이천 건 이상 발굴했다. 큰 성과이다. 그런데 가끔 월남전을 생각해본다. 이역만리 십자성 아래 월남에서 전사한 군인의 시신과 유골은 모두 수습된 것일까? 아직 돌아오지 못한 국군장병이 있지는 않을까? 아직 거기 남아있는 국군이 있다면 귀환을 위한 노력을 지금이라도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군인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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