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 42
우리는 6.25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한국전쟁 또는 한국전(Korean War)이라고 한다. 잘 아시다시피 이 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에 휴전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6월 25일과 전쟁이 멈춘 7월 27일. 어느 날을 기념하는지 우리와 미국은 다르다.
우리는 당연히 6월 25일에 무게를 둔다. 우리가 7월 27일 보다 6월 25일을 더 중요시하는 것은 일요일 새벽 불시에 침략을 당해서 장장 3년 동안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쉽게 통일이 되지 못하고 전쟁을 멈춘 7월 27일보다는 민족분단이 고착된 시발점인 6월 25일 그날이 우리에게는 더 뼈저린 날이니까. 그래서 6월 25일 다가오면 반공을 주제로 미술시간에는 포스터를 그렸고, 작문시간에는 글짓기를 했다. 반 대항, 학교 대항 웅변대회도 열리고.
미국에서도 한국전에 관한 기념식을 한다. 7월 27일 휴전일에. 즉 전쟁이 시작된 날이 아니라 전쟁이 끝난 날을 기념한다. 1, 2차 세계대전도 전쟁이 끝난 날을 기준으로 기념식을 한다.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한국전이든 1, 2차 세계대전이든 전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미국은 당사자가 아니었다. 미국은 전쟁이 시작된 후에 참전하였다. 그러기에 전쟁이 시작된 날은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든 전쟁의 끝에 미국은 당사자로 남아있었으므로 전쟁이 끝난 날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월남전(Vietnam War). 이 전쟁은 북위 17도를 중심으로 북쪽인 베트남 민주 공화국(월맹)과 남쪽의 베트남 공화국(월남) 사이의 전쟁이었는데, 북쪽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다. 그리고 많은 남쪽 월남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월남을 떠났다. 그때 자그마한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떠난 사람들 즉 보트피플(boat people)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철수하는 미군과 함께 떠난 사람, 자신의 힘으로 민간 선박이나 항공기를 탔던 사람, 쪽배에 몸을 실어 보트피플이 되었다가 구조된 사람 중 많은 월남 사람들이 미국에 정착했는데 이들은 지금도 그때의 남쪽 월남 국기를 내건다. 노란 바탕에 빨간 가로 줄 셋이 있는 그 국기. 이들은 지금의 월남정부를 자신의 정부로 여기지 않는다.
여기 버지니아주 북부에도 퍽 많은 월남 사람들이 있는데, 월남국수를 파는 음식점 중에 <Pho 75>라는 상호가 있다. 포(pho)야 월남국수니까 음식점 이름에 넣을 수 있다. 무엇을 파는 음식점인지 잘 나타내니까. 그런데 75라는 숫자는? 숫자 75의 의미를 오랫동안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남쪽 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 4월 30일이다. 즉 사이공이 함락된 해가 1975년이니까 여기의 숫자 75는 사이공이 함락된 그 해를 잊지 않기 위해서 상호에 집어넣은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