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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관한 짧은 생각

용과 dragon의 차이

  영어에 dragon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를 '용(龍)'이라고 번역하는게 괜찮을까?


dragon은 서양문화 산물이다. 전체적으로는 공룡의 모습인데 커다란 날개가 달려있어서 하늘을 날고 입에서는 불을 뿜어낸다. 인간과 친하지 않고 대개 적대적이다. 악을 상징하는 그런 느낌이다. 보통 '용(龍)'이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그 번역,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dragon은 '용'이 아니다. 다른 명사를 만들어내든지 그냥 '드래곤/드래건'이라고 적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서양의 사고방식. 동양의 용은 날개 없이 하늘을 난다.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무엇보다도 상서로운 존재이다. 그러니 dragon과 용은 얼마나 다른가 말이다. dragon을 용이라고 번역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생각.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렇게 번역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번역가에게 많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 살면서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게 되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2의 창작 정도가 아니라 ‘번역도 하나의 창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번역에 관해 쓴 글 중에 ‘황량’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얘기를 풀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짙은 구름이 낀 어느 겨울날의 들판에서 느끼는 ‘황량’과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가슴에 남은 ‘황량’은 한글로는 같지만 영어로는 전혀 다른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그런 글이었다. 다른 언어체계와 단어 사이에서 잘 만들어진 문장과 적절히 선택된 단어로 이루어진 번역은 참 어려운 일이다.




  1975년에 발표된 미국 영화에 <One Flew Over the Cockoo’s Nest>라는 게 있다. 이걸 어떻게 번역하는 게 좋을까? 당시 신문 영화 광고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고 나와있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국내에 맨 처음 소개된 번역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람>이었다. 영화가 상을 받으면 국내에 그 작품을 소개하는 책이 순식간에 출간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초기에 나온 책의 제목에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다>라는 번역도 있었다. 지금은 온통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번역되어있다.



  문장의 처음에 나오는 One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사람’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새’로 번역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One을 직접 번역하지 않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다>라는 번역을 가장 좋아한다. 단어가 있다고 그 모든 단어를 번역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번역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몹시 좋아하는 번역 두 가지.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대사가 ‘tomorrow is another day’인데 우리말로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로 번역되었다. ‘another day’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쓰는 말인데 참 멋진 번역이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인데 ‘오래 버티고 살다 보면 이렇게 되는거지.’ ‘오래 버티고 살다 보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라는 정직한 번역보다는 오역으로 알려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가 그가 남긴 여러 일화에 더 부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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