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토리 Feb 09. 2017

도깨비, 운명에 대한 그들의 답.

(결말 포함, 스포 포함)


도깨비, 운명에 대한 그들의 답.


어느 날부터인가 페이스북에는 도깨비 이야기가 넘쳐났다. 도깨비를 한 편도 보지 않은 나도 펀치가 부른 도깨비 OST를 알고 있었고 도깨비 신부부터 시작해서 이런 저런 내용들을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다. 보아하니 내 취향 저격 스토리인 것 같아서 아껴두고 아껴두다가 엔딩이 나자마자 쭉 몰아서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스러웠다. 여러모로 흥행요소가 잘 어우러진 느낌이었고 재밌었다.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


재미와 메세지,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


도깨비는 불멸의 삶을 살게 된 도깨비와 그 불멸을 끝낼 수 있는 도깨비 신부의 이야기와 그 주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깨비의 스토리는 굉장히 몰입력이 있다. 드라마의 중요한 점은 계속해서 다음화를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깨비는 충실하게 다음화를 궁금하게 만들어냈다. 도깨비 스토리 자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줄기는 도깨비가 언제 죽느냐이다.  도깨비 신부가 누구느냐를 두고 이야기를 끌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남편을 찾는 것 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 지은탁이 도깨비 신부임을 드라마 초반부에 도장 쾅쾅 찍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도깨비의 검을 언제 뽑게 될 것인가? 그리고 도깨비가 죽게 되면 이야기가 끝나는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큰 줄기를 진행시키는 것도 좋았지만 도깨비를 더욱 더 몰입감 있는 스토리로 만든 건 곁가지의 이야기들이다. 저승사자와 써니의 이야기, 그들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는 앞으로 이 드라마는 어떻게 되는거지? 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궁금증들을 잘 풀어서 설명해냈기에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더더욱 빛이 나는 게 아닐까 싶다.


과연 여기서 끝났다면?


여기서 엔딩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면 혹자는 말한다. 13회가 진엔딩이다. 도깨비가 죽었을 때 사실상 드라마는 끝난 것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13회처럼 엔딩을 마무리 지었다면 납득이 되었을까? 라고 되짚어 생각해보면 아니다. 도깨비가 죽는 것은 예정된 사항이었다. 그리고 그 도깨비가 죽었다. 그리고 모두 슬퍼하며 끝이 났습니다. 라는 건 너무나도 진부한 엔딩이고 특색 없는 엔딩이다.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라면 오히려 13회와 같은 엔딩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도깨비가 죽고 남은 여생을 살아가게 된 도깨비 신부가 캐나다에 있는 도깨비의 묘에 가서 묘비를 쓰담쓰담 하는 정도의 엔딩? 하지만 도깨비는 드라마이다. 긴 호흡으로 열심히 끌고 왔는데 도깨비가 죽었습니다. 가 엔딩이라면 오히려 허무했을 것 같다. 물론 14회부터 뭔가 우당탕탕 하면서 급전개가 이루어진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질투의 화신' 처럼 24부작으로 아예 길게 끌고가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16부작으로 콤팩트하게 끝내는 게 더 나은 것 같으니 뭐라 말하기도 애매하다.


해피엔딩? 잘 모르겠다.


다른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새드 엔딩이 싫어서 해피 엔딩을 만들어주려고 한 게 아닌가? 라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도깨비의 엔딩이 해피엔딩일까? 아니다. 도깨비의 부제목이 생각나는가? 쓸쓸하고 찬란한 신.

그게 바로 도깨비다. 그리고 도깨비의 엔딩은 이 쓸쓸하고 찬란한 신에 정확히 부합하며 끝나고 있다.

13회 이후 도깨비는 부활했다. 다시 불멸의 삶을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은탁과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듯 싶으나 지은탁이 죽게 되고 다른 이름으로 환생하여 도깨비를 만나며 끝난다. 언뜻 보면 다시 만났으니 해피엔딩 같지만 도깨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도깨비는 또 다시 지은탁의 죽음을 볼 것이다. 또 다시 망각의 차를 마시지 않고 환생하여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또 다시 그 죽음을 볼 것이다. 그렇게 4번의 삶이 지나도 도깨비는 여전히 불멸이다. 그 모든 기억을 안고서 말이다. 도깨비 신부인 지은탁을 만나 찬란해 보이지만 다시 쓸쓸해지는 불멸의 신. 그게 바로 도깨비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도깨비의 모습이 마냥 행복해보이지만은 않다.

그다지 해피 엔딩 같지도 않고...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운명은 신이 던지는 질문일 뿐.


도깨비는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삶과 선택. 운명. 신이라는 존재.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들이지만 한 번은 생각해봄직한 문제들이다. 그래서 난 도깨비에서 나온 이 구절이 참 좋다.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도깨비 속 인물들도 각자의 운명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다. 도깨비 신부의 죽음을 막고자 본인의 운명을 받아들여 죽음을 택하는 도깨비. 누군가를 살리고자 본인의 운명을 비껴나가는 인간 지은탁. 운명처럼 만났지만 전생의 기억을 되찾는 바람에 다음 생을 기약하는 저승사자와 써니. 각자에게 운명이란 질문은 던져졌지만 그들이 찾은 답이 모두 같진 않았다. 


세상사 정해진 일이 어디있겠는가? 중요한 건 운명이 아니라 그 매 순간 순간의 선택이다. 지은탁의 선택을 그려냄으로써 우리들에게 이런 메세지를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있을지 모르는 신이 던지는 운명이란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나름의 선택을 매 순간 찾아나가라고. 그게 항상 정답은 아닐지라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우리는 도깨비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드라마라는 환상에 빠지길 원한다. 현실이 이토록 각박하고 힘든데 드라마마저 퍽퍽한 고구마 같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이런 환상, 판타지를 채워준다는 측면에서 도깨비는 적절한 드라마이다. 나만 바라봐주고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오고 나에게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남자. 이런 완벽한 남자의 환상을 채워주는 게 바로 도깨비이다. 그에 한 몫 보탠 건 공유의 외모였고...


내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환상,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마치 기나긴 꿈을 꾼 듯 하다. 아주 기분 좋은 꿈일 때도 있고 때로는 불쾌한 꿈이기도 하지만 도깨비는 아주 

기분 좋은 꿈이었다. 


도깨비를 보고 나니 정말 도깨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을 때 신을 찾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자 혹은 선행을 베푸는 자에게는 축복을 내려주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에게는 저주를 퍼부어주는 그런 도깨비. 그런 도깨비가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런데 혹시 모르지 않나?  진짜 도깨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그러니 나는 바르고 착하게 살아야겠다.

도깨비가 어디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니, 나의 바르고 착한 모습을 보면 콩고물 하나라도 떨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도깨비님. 화이팅! 전 당신의 축복에 감사하며 살 준비가 되었습니다. 어서 저에게 축복을......











매거진의 이전글 오 나의 귀신님 - 박보영의 , 의한, 위한 드라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