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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토리 Jan 29. 2022

그해 우리는 - 첫사랑 로맨스의 가면을 쓴 성장 드라마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첫사랑 로맨스? 성공적

'그해 우리는'은 첫사랑 로맨스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이다. 과거 일련의 일들로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 어찌 보면 참 진부한 주제이고 이야기일 수 있지만 다큐 촬영이라는 형식, 그리고 독백을 활용해서 재밌고 신선하게 풀어내고 있다. 과거 '연애의 발견'이라는 드라마에서 비슷한 형식을 취했는데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 오랜만에 취향저격 드라마를 발견했다.


결론만 놓고 보자면 첫사랑 로맨스 이야기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헤어졌던 연인이 다시 만났다가, 또 갈등을 빚고 헤어졌다가 마지막에 재결합하는 이런 고구마 100개쯤 먹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사이다를 콸콸 쏟아 넣는 드라마도 아니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적당히 이야기에 텐션이 유지되는 느낌? 너무 자극적이지도,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느낌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말하려면 참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다른 많은 분들이 해주실 거니까 여기서는 아끼도록 하겠다. 


사실 나는 '그해 우리는'을 보면서 첫사랑 로맨스 드라마의 가면을 쓴 성장드라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드라마 소제목, 주체적인 삶


우리가 주목할 점은 드라마 소제목과 드라마 내용에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해 우리는'의 1~15화까지의 소제목은 영화 제목이거나 영화 제목에서 따온 이름들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던지, 말할 수 없는 비밀, 비포 선 셋 등 한 번쯤 봤거나 들어봤을 법한 영화 제목들. 그리고 16화의 소제목만이 어디에선가 가져온 게 아닌 드라마의 제목인 '그해 우리는'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면서 드라마를 되짚어봤더니 참 재미있더라.


최웅, 국연수의 성장 드라마는 16화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이 중심에 있는 건 바로 '주체적인 삶'이다.

먼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최웅과 국연수를 살펴보자. 최웅과 국연수는 정반대의 환경에서 자랐다. 최웅은 부유하고 아낌없는 사랑을 나눠주는 부모님 아래에서, 국연수는 아주 가난하고 부모님이 안 계시는 환경에서 자랐다. 상반된 환경에서 자란 둘이었지만 둘 모두 '주체적인 삶'을 살진 못했다.


국연수는 기울어진 집안 형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고, 취업하고... 주변 환경이 너무 좋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맞춰 살아가야만 했고, 최웅은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어릴 적 알게 된 이후로 부모님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적당히 맞춰가면서 살아왔다. 


최웅의 경우는 성격 자체가 워낙 욕심이 없는 것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정확히는 욕심이 아니라 목표가 없었다. 부족한 게 없는 삶이라고 느꼈을 테니... 하지만 연수와 헤어지면서 최웅의 삶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삶의 돛대와 같던 연수가 급작스럽게 사라지고 나니, 삶이 너무 공허해졌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 그림을 그려 작가가 된다. 어찌 보면 이 조차도 '주체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연수가 사라진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이 드라마는 그런 최웅이 다시 연수를 만나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면서 점차 바뀌어간다. 그리고 결국 16화에 이르러서는 연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본인 스스로 성장을 하고자 유학길에 오른다.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말이다. 드라마 내내 좋은 게 좋은 거지의 태도로 일관했던 최웅이 뭔가를 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한 첫 순간. 그게 16화에 되어서야 나왔다. 


연수는 어땠을까? 기울어진 집안, 늙은 할머니를 부양하고자 매사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할머니와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게 그녀의 삶이었다. 그런 그녀도 최웅의 유학 제안에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다. 내가 살아온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살기 위해 공부를 했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또 살기 위해 대학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살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을 되짚어보니 마냥 살기 위해서만 했다고 하기에는 꽤나 괜찮은 순간들이 많았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단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연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유학길, 꽤나 괜찮은 조건의 제안 등을 내려놓고 한국에 남는다. 연수의 '주체적인 삶'을 깨닫고 난 뒤 첫 번째 선택이었다. 이게 16화에 나온 장면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 최웅과 주체적인 삶을 깨닫게 된 연수의 선택이 나오는 16화의 제목은 그래서, 다른 영화의 이름을 따오지 않은 '그해 우리는'이라는 드라마 제목일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에 휘둘리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어찌 보면 누군가를 카피한듯한 그런 평범한 인생이 아닌 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인생의 시작. 그게 16화였으니까.


16화에서 서브 주인공들의 서사가 완성되는 것도 재미난 포인트이다. 김지웅은 어머니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최웅의 어머니는 최웅이 친아들이 아닌 사실을 털어놓고 함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채란이는 김지웅에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달하고, 엔제이는 최웅이라는 첫 친구를 만들게 된다. 16화에서 모두 나름대로 각자의 성장을 이루어낸 것이다. 



나도 성장할 수 있을까요?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를 되짚어 봤다. 대학교에 점수에 맞춰서 들어갔고, 특별한 일 없이 졸업을 해서 학과와 자격증에 맞춰 취업을 했다. 그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지금까지 근무를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참 연수와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도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게 모르게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던 게 아닐까? 수많은 선택의 갈래에서 수많은 선택지를 골라 도달한 게 지금의 '나'의 모습이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썩 괜찮은 순간들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성장이라는 게 사실 특별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뭔가 꼭 정량적으로 늘어야만 성장은 아니다. 중요한 것을 깨닫는 순간도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르곤 한다. 앞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전에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주체적인 삶'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선택엔 항상 핑계가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그 또한 내 선택의 결과이니 후회 없이 밀고 나가는 것. 언제나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일어날 채비를 하는 것. '주체적인 삶'을 깨닫는다는 건, 과거의 선택이 틀렸음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한 선택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게 아닐까? 그게 바로 성장의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성장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충분히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에 인색하지만, 특히나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것은 더더욱이나 인색하다.

오늘은 내가 살아온 순간들을 되짚어보면서 스스로에게 잘해왔다.라고 칭찬을 해주고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생각보다 우린 아주 잘해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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