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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오스 이비 Aug 28. 2022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

기소불욕 물시어인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

"???"

"..."

충격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를 멀리하는 까돌이의 행동에...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 정도 인지는 몰랐다. '나에 대해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니...'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반박할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미... 미... 미안해..."

나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안 괜찮아!"

하지만 나의 사과에 까돌이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



'무엇이 잘 못된 것일까.'

'나는 단지 컵에 물을 따라 마시라고 했을 뿐인데...'


평소 까돌이는 컵이 더럽다는 핑계로 페트병에 있는 물을 그냥 마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컵에 따라 마시라고 했다. 하지만 어제는 500ml 페트병이 자기 컵이라며 2000ml 페트병에 있는 물을 500ml 페트병에 따라 마시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어쩌면 사춘기에... 약간의 재미와 약간의 반항심이 섞여 그렇게 행동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까돌이의 그런 행동이 나에 대한 반항심으로 느껴, 평소보다 더욱 강하게 얘기했던 것 같다.



'나는 왜 물을 컵에 따라 마시라고 하는 걸까?'

'컵에 따라 마시지 않으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웃겨! 자기들이 좋은 습관 들어 달라고 해 놓곤...'


'좋은 습관은 고사하고 아이와 관계만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았다. '

'나에게 나쁜 것만 배우고...'


출근길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무엇을 포기해야 지금 이 상황이 개선될까?'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순간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있는 글귀가 생각났다. 


'까돌이 엄마와 뭐가 다른 거지? '

'다른 것 하나 없잖아.'


아내가 아이들을 약간은 억지(?)로 학원에 보내려고 하는 것과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행동에 나는 아내에게 "네가 맞다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너에게 옳고 맞을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틀릴 수 있어. 그러니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억지로 시키지 마!"라고 하곤 했는데...


돌이켜 보니 좋은 습관을 들인다는 명분으로 또 약속을 했다는 이유로 나도 억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분명 아내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좋은 습관을 들여 달라고 했고, 또 약속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도 아내와 똑같았던 것이다. 단지 아이들과 약속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분명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는 만큼 한 번 몸에 밴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못하게 한다고 고쳐지는 것도 분명 아니다. 아내에게 자주 했던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공부는 한다'는 말처럼 습관도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 들이는 것을 포기하자!'


'기소불욕 물시어인?'

'아니, 시저기이불원 역물시어인!'


'어떤 말이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각자가 하나의 독립 객체 아닌가. 

스스로 잘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격려해 주자. 

분명 시행착오는 겪을 것이다. 그래도 스스로 판단하도록 옆에서 믿고 지켜보자. 

조금은 오래 걸리더라도 말이다.'


생각을 바꾸니 출근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퇴근 후 집. 

여전히 화장실 불은 켜져 있고 누군가 볼일 본 흔적이 변기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누가 물을 내리지 않았는지 화장실 불은 안 껐는지 찾아다녔겠지만... '뭐 어때!'라고 속으로 말하고 그냥 내렸다. 


며칠 후 나는 까돌이를 포함해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아빠가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아빠가 너희들에게 왜 잔소리를 하고... 결국엔 소리를 지르게 된 이유를... 그건 아마도 너희들에게 좋은 습관을 들여 준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는 너희들에게 좋은 습관 들이는 것 하지 않을래... 아빠가 며칠 해보니 참을만하더라... 너희들도 뭐 알아서 잘하겠지? 그렇지?"

"..."

나의 말에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너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뭐 성인이 돼서 더럽다고 눈치 없다고 창피 좀 당하면 어때! 또 그런 일로 손해 좀 보면 어때! 어떻게 보면 그런 사소한 것들 때문에 너희들이 아빠와 좋은 추억 하나 없이 지내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좋겠어. 그래서 앞으로는 아빠에게 좋은 습관 들이는 거 도와 달라고 하지 마! 알았지?"


'진심이다.'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라는 의미를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무엇이 아닌 어떻게라는 것을...



참고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들에게 베풀지 말라”라는 뜻이고 ‘시저기이불원(施諸己而不願), 역물시어인(亦勿施於人)’은 중용 도불원인장(道不遠人章)에 나오는 글귀로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 보아서 원치 아니하는 것은 또한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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