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음
임신한 사람들의 임신 생활은 그 사람의 건강 상태에도 달라지지만 의외로 심적인 부분, 그 사람의 성격, 성향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운동 여부, 빈도, 강도부터 먹는 것을 얼마만큼 조심하느냐, 또는 가족과 친구에게 언제 알리는지에 대한 민감도도 다르다. 결국 임신 중 운동과 식생활은 임산부의 불안과 두려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안한 상태로 다른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는 말을 하게 되면 자신의 의사결정과 확고함이 흔들리게 되는 취약성이 생긴다.
그래서 인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해서 출산을 하는 사람들의 채팅방에 들어가 있다. 모든 참여자가 여성인 게 약간은 분하다. 남성는 특성상 그룹끼리의 대화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겪는 일이 아니라 불안이나 정보 공유 필요성의 정도가 낮은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처음부터 계속 거슬리는 점이 있다. 임신한 순간부터 여성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ㅇㅇ맘 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현재는 태명이지만 나중에는 아기 이름으로 바뀌게 될 별명들이다. 나는 어떤 한 남자가 자신을 오빠라고 칭하면서 '오빠가 해줄게' 같은 말을 하는 것 같마냥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단지 임신 전이나 후, 출산 전이나 후에도 나이고 싶은 사람인데 갑자기 나타난 나의 부직업이 나의 주 정체성이 되어버려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도 든다. 더 이상 철안든 성인으로 헤벨레 살 수는 없다고 갑자기 자유를 박탈당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은 나 안에서 엄마라는 직업이 주가 된 나인 게 아니라 아기가 주가 되고 내가 그를 서포트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걸까? 사실은 병원과 산후조리원과 유치원에서는 ㅇㅇ의 엄마라는 호칭 대신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나의 아기를 나의 아기, 어린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의 결정으로 임신하고 출산하는 입장에서 태어날 아기는 나의 아기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아기의 맘이 되는 것이 꽤 불편하다. 뭔가 거꾸로 된 듯한 느낌이다. 그와 동시에 ㅇㅇ팝이라는 말은 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지 의문이다. ㅇㅇ엄마라는 말이 너무 길어 맘으로 줄였다면 ㅇㅇ아빠라는 말도 팝으로 줄여 쓰는 게 맞지 않나?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임신을 하면서 느끼고 있는 점. 임신과 출산은 생물학적 암컷이 감당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정해진 (대부분의) 자연계의 법칙이라는 거다. 생명을 배속에서 키워내고 영양분을 공유하며 고통 속에서 출산하는 이 자연의 법칙을 누군가에게 불평불만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출산 후에도 모유 수유를 한다고 하면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영양분 공급까지 모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편리한 도구들을 발명해냈고 수컷도 양육을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지식 동물이다. 어떤 사회에 사느냐에 따라 양육의 비율과 안정적인 환경 구축(수입)이 암컷과 수컷 전담으로 나눠지기도 하고 또는 평등하게 분담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녀간의 육아휴직의 기회와 균형이 맞아야 한다. 또 임신과 출산의 큰 변화를 겪는 시기에 여성은 생각이 많아진다. 아기-엄마의 애착관계를 위해 일을 포기하는(해야만 하는 상황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나도 이젠 일하기 싫다는 핑계 삼아 애 키우는데 100% 집중해 볼까 행복한 고민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계속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의 정신건강, 성취감, 정체성, 사회 소속감과 관계에 좋고 그 엄마의 정신적 건강함은 아기에도 좋을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사실 청개구리 마음으로 여성 쪽에서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그 흐름에 절대 동참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워킹맘으로서 절대 죄책감을 갖고 싶지도 않았다. 애초에 남성쪽은 워킹대디라는 말도 없을뿐더러 그 워킹대디가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 세상인데. 나라도 더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 무거운 짐이 여성에게로만 가며, 나까지 기성세대처럼 포기와 희생의 아이콘인 그 엄마로는 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아이와 부모의 애착관계란 질적인 관계를 말하는 데 일을 해도 질 좋은 애착관계 형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하는 것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의 심리, 애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일하는 엄마의 삶의 질적인 문제, 일과 가정의 균형, 엄마의 심리적 여유라고 한다.
내 성격으론 분명 육아만 하다 보면 지루하고 우울해 질 것을 알기에, 더욱이 일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또 일하는 것이 아기를 위해 돈을 벌기보다는 적게 벌더라도 성인으로서 나의 정체성과 사회 소속감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양육은 내가 여성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주는 철학이기도 하다. 여자라서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은 가족 구성원과 함께 고생하고 행복해하며 값진 시간을 보내면서도 동시에 사회 일원으로서 가치를 더할 수 있음을 그래서 행복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