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치 Oct 02. 2024

HSP의 임신과 출산 1

감각적 예민함과 트라우마 치료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단어를 20대 중반 정도에 처음 듣게 되었다. 감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한국어로는 초민감자라고도 한다. 초민감자의 특성 중 하나는 남들보다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어렸을 땐 꽤 낙천적이고 둔했던 아이였던 것도 같았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입시를 거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청소년기의 자극과 발달에 좋다고는 하지만 한국 청소년과 청년들은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고 또 대학 입시와 플러스 미대 입시에서 자존감과 성취감의 하락이 심했다. 동시에 학교와 학원에서 심한 체벌을 받아왔고 정서적 지지가 단단해야 할 가족과도 신뢰와 안정감이 깨지면서 방어기제인 민감함의 센서가 켜진 것 같다.

그때부터는 감정, 청각, 후각, 촉각에 아주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전공과 하는 일이 눈으로 하는 일이라 시각에 특히 초예민하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중 빛의 밝기에 굉장히 민감했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너무 잘 느껴지다 못해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면 나도 고통스러워지고, 기차나 지하철에서 아주 약한 향수라도 뿌린 사람이 있으면 꼭 자리를 피해야만 해결되기도 했다. 내 옆에서 목청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위협이라 느낀다. 또 남편의 큰 전화소리 나 설거지의 달그락거리는 접시 소리가 괴로워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일도 여전히 잦다.

그중 임신과 출산의 결심을 막았던 이유이기도 하며 여전히 걱정되는 한 가지는 촉각에 대한 예민함이다. 어떤 공포스러운 상황이 오거나 상상이 되면 온몸이 굳어버리고 머리는 하얘진다. 예를 들면 임플라논을 제거하려 살을 조금 짼다거나, 다래끼를 치료하려 눈을 째는 일, 또는 사랑니를 뽑아내는 일. 이 점의 공통점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당시, 그리고 미래의 상황과 통증이 상상됨을 넘어 재경험하는 것이다. 처음 사랑니를 뺄 때는 뭣도 모르고 가서 앉아있어 떨지도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로 뽑으러 갈 때는, 머리에 가해지는 의사, 간호사의 손 압력이나 입안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온도의 짜고 비린 피 냄새. 지혈이 제대로 안되었는지 입안에서 선지가 된 물컹한 핏 덩어리. 그것을 뱉기보단 삼켜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속의 울렁거림. 그런 것들이 다시 회상되어 치과 두 번째 방문에서는 벌벌 떨고 있자, 그것을 보다 못한 간호사는 괜찮을 거라며 나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임플라논을 제거하려 팔뚝 살을 아주 조금 째는 데도 마취 주사 후 확인하려는 의료진의 질문도 잘 안 들리거나 한국말로 어떤 말을 혼자 말을 읊조리기도 한다.

임신 중기에 들어선 지금은 나의 몸 변화가 꽤나 자연스럽게 느껴져 공포스럽지는 않다. 걱정했던 몸매 변형에 대해서는 그냥 가끔씩 흰머리가 하나씩 솟아나 듯이, 목에 주름이 하나 늘어나듯 자연스러운 노화, 어떤 면에선 몸의 진화로 느껴질 정도로 중립적인 감정이 되었다. 

하지만 출산이라는 것은 여전히 공포스럽다. 자연분만을 떠올리면 영화 에일리언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배를 찢고 나오는 외계인과 넘쳐흐르는 피, 뜯어진 뱃근육. 그리고 더 최악인 점은 그것이 일어나는 일이 나의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성적인 부분 곳에서 일어난 다는 것이다. 그 여린 살이 늘어나고 찢어지고, 피가 나고, 가위로 잘리고 또 바늘로 꿰매진다는 것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제왕절개가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수술대 위에 누우면 느껴지는 차가운 수술대의 느낌이나, 환해서 눈을 못 뜰 것 같은 수술 조명, 알코올의 냄새와 수술기구들의 쨍그랑 소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기만 하다. 그리고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하반신 마취를 해서 정신은 온전한데 나의 열린 뱃속에서 아기를 꺼내는 일. 정신은 또렷한데 지금 나의 배가 열려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 게, 나의 피부, 근육과 장과 자궁을 들여다보고 만지고 있을 거라는 게 공포스럽다. 그 상황에서 아기에게 눈을 맞출 자신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임신 계획 전부터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일어날 수 있는 수면마취와 제왕절개를 하겠다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제왕절개가 의료상 필요하지 않으면 잘해주지 않고 또 그렇기에 수면마취를 요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한국에서 출산을 하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놓이는 선택이었다. 한국에 가기 전에 정신전문건강의와 산부인과의가 협력해서 하는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는데, 이런 감각적 예민함은 내가 청소년/성인기에 체득한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트라우마 치료를 하면 예민함이 사라질 거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청각에 아무리 예민해도 락페스티발을 가거나, 좋은 노래를 크게 듣는다거나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또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해 냄새를 맡거나 또 미각 부분에서는 딱히 어떤 예민함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타고난 감각적 예민함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영향을 받는 후기에 발달된 감각이라 보았다.

지금까지 트라우마 치료를 했을 때 EMDR이라는 치료 기법이 잘 맞았으므로 이번에도 같은 치료법으로 한국 가기 전까지 여러 세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전히 이런 예민함이 치료가 될 수 있을까? 출산 장면을 생각하면 중립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매우 의문스럽긴 하지만 그전 테라피를 생각하면 굉장히 효과적이었어서 다시 한번 해보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전 09화 임산부의 죄책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