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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치 Aug 10. 2024

혼혈아

인종차별의 나라 한국에서

인종차별이 난무한 대한민국에서 혼혈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한국을 떠나 해외 생활을 하면서 종종 인종차별을 받곤 했다. 단지 그냥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아니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서. 어떤 사람은 의도치 않게 순수한 무지에서, 어떤 사람은 그냥 한번 웃자고 하는 장난으로, 어떤 사람은 일부러 골탕 먹이려 작정을 한 사람도 있었다. 가장 무서운 인터넷 반응이 악플보다는 무플이라고 나도 무응답으로 대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그들에게 기분이 나쁜 것을 표시하면서도 안전한 방법이라 그냥 그들을 무표정으로 쳐다보고 지나쳐 왔다. 하지만 몇 년 사이 한국의 위상이 점점 올라가고 있고 이제는 길거리에서 니하오라 인사하는 사람이라든지, 아니면 북한에서 왔냐 남한에서 물어본다는 지 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졌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지난 8년을 생활하면서 차별을 받아본 적을 몇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나를 평등한 한 인간으로 대해주었다. 누가 봐도 딱 아시아에서 온 것 같은 나의 외모에도 나를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더치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 언제나 참 고마웠다.


한국에 가면 차별 상황은 여전했다. 하지만 반대로. 차별받는 대상이 남편이 된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서있는 나도 표적이 된다. 재미있는 상황이다. 한국밖에서는 내가 표적이 되면 됐고, 남편이 있으면 아무도 나를 못 건드렸는데 한국에서는 외국인과 함께 다니는 여성이 더 타켓이 될 때도 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사람들은 항상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또는 옆이나 뒤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며 낄낄 거리거나 서로 티 나게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다. 사람들이 쳐다보면 위협이라 생각하던 나는 남편과 단순히 걸어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쳐다보니, 손을 잡거나 애정 표정은 더더욱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에서는 애정표현을 최대한 자제하게 되었다. 또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으면 영어 대신 네덜란드어로 바꾸어 대화를 하곤 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비율이 많아지고는 있다지만 체감상 아직도 사람들이 우리를 이렇게 쳐다보는데 이젠 내가 외국인 옆에서 배 만삭이거나 아니면 혼혈 아기까지 데리고 다니면 얼마나 시선을 받을까 벌써 걱정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 때문에 '백인'이라서 예쁘고, '백인'이 섞여서 예쁘고 이런 말을 듣다 보면 너무 현타올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 엄마가 딱 그랬다. 엄마는 내가 외국인을 만나는 것을 반대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생각도 않고. 흑인을 만나는 것은 더욱더 반대했다. 내가 까만 애를 낳는 것이 싫다며. 


이제는 내가 얼굴이 조금 하얀 아기를 낳게 된다. 그니까 이 아이는 엄마한테 단지 백인이라서 예쁜 걸까?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밝은 갈색이라 예쁜 걸까? 영어를 잘해서 예쁜 걸까? 아니면 그래서 더럽나? 혼혈이라서? 피부가 까맸으면 못났다고 했을까? 백인이라서, 유색인종이라서 예쁘고 못났고를 나누는 사람들의 말에 나는 머리가 띵 해지고 할 말을 잃는다. 아직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 이미 낳기도 전에 사람들의 많은 편견을 지니고 태어난 이 아이가 한국 사회에서 남들과 같은 위치에 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까 고민이다.


하지만 우리는 네덜란드에서 주로 자라게 될 이 아이에게 한국 국적을, 한국의 정체성을 나누어주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라고. 나의 엄마는 한국 사람이고, 자기도 한국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한국어로 말할 수 있는 그런 아이로 자랄 수 있다면 좋겠기에. 네덜란드에서도 이 아름다운 나라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잘 살아가자고.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랑스러운 나라임을 한국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을까? 가끔은 좀 무섭다. 세상은 아직 날카롭고, 무지하니까. 과연 어떤 말들을 듣게 될지.


모든 사람이 태어난 배경에 상관없이 그 사람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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