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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치 Jul 18. 2024

임신 5주차

내가 바로 지하철 빌런

만석 지하철을 타면 갑갑함이 느껴진다. 갑갑함에 괜히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차멀미 같은 것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 포화도가 높은 지하철 간에 타면 임신 전과는 다른 레벨로 목을 옥좨오는 기분도 종종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지하철 임산부석이 참 다행이다. 만석에서 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몸이 눌리지도 않으며 계단에서 바로 내려가는 칸에 임산부석이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헤매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임산부 석은 10번이면 8번 정도 이미 누군가 앉아 있다. 임산부같이 보이는 여성분이면 임산부인가 보다 할 텐데 대부분은 할아버지 아니면 나이가 있으신 아주머니 아니면 할머니다. 나이 차별하자는 건 아니지만 요즘 젊은이들과 어린 아주머니들은 임산부 석을 비워두는데 꽤 익숙하신 듯하다. 혹여나 자리에 앉아있다가 내가 '저기 혹시, 이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라고 물어보면 화들짝 놀라며 죄송합니다, 못 봤어요 하며 양보해 주신다. 


하지만 대부분은 양팔을 끼고 지하철에서 잠을 청하고 있거나 핸드폰을 하느라 못 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다른 칸으로 옮겨갈까 하다가 나앉으라고 만든 자리에 내가 왜?라는 생각에 그분들에게 직접적으로 요청한다.

저기요, 하고 손을 잠깐 들어 표시를 한다든지, 자고 계신다면 어깨를 살짝 터치한다든지 해서 여기는 임산부 석이예요.라고 하며 임산부 배지를 보여주면 '뭐 어쩌라고'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니면 '응' 이러고 하던 핸드폰을 하시거나 잠을 다시 청하신다.


다시 한번 '저는 임산부예요'라고 했더니 '그래서 뭐? 나보고 일어나라고?'

'네.'


그럼 일어나야지 뭐... 이러면서 마지못해 천천히 일어나신다. 나는 임산부로서 임산부석을 차지해 내고 이런 내가 자랑스럽다 못해 지하철 빌런이 된 것처럼 종종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보통의 임산부들은 더 큰 문제를 만들거나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 배지를 알아볼 때까지 꾹 참고 가는 것에 익숙한 것 같다. 정부에서는 임산부가 임산부석 근처에 오면 소리를 나게 하는 등 다른 시도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임산부석인지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임산부석 필요성의 인식과 존중의 문제다. 만석인 지하철에 임산부 자리가 비어있으면 힘들 땐 당연히 앉고 싶을 만도 할 텐데 항상 비워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며 조금 앉아 쉬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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