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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솔 깨부맘 Feb 07. 2023

내 안에 답을 만나다

자본주의

내 안에 답을 만나다 : 자본주의


2020년부터 2022년 2월까지 꼼짝없이 집 안에서 지내다가 조금씩 조금씩 현관 밖으로 나와 햇볕을 쬐고 들어가고,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들어가며 늘렸던 체력이었다. 겨울이 가며 봄이 오려하기 전이었다. 점심 전후의 햇볕이 너무 따스하고 포근해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내 나의 발걸음은 집 바로 옆에 있는 천변으로 이끌었다.


천변에 다다르기 전에 이미 체력은 힘들어지고 있었다. ‘아, 이 정도는 아직 안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은 천변 벤치에 앉아보고 싶어. 가보자’ 나와의 대화를 하며 신호를 받아 건널목을 건넜다.


건널목 끝에 다다른 천변의 풍경은 자연의 아름다움,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얼마 만에 내 발로 나와 보는 풍경이며, 자연인가. 계단을 내려가 하천변에 잘 닦여 있는 길을 걸었다. 걷다가 중간에 벤치에 앉아 쉬기도 했다.


벤치를 몇 번 지나 마음이 가는 위치에서 멈추었다. 다행히 가까이 벤치가 있었다. 벤치가 앉아서 가만히 멈춘 채 나무를 바라보았다. 겨울이 다 간 계절이 아니다 보니 바람이 찼지만 따뜻한 햇볕이 있어 춥지 않았다. 간혹 운동 나온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그 자리에 굳건히 지키고 서서,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는 버드나무였다.


한참을 바라보다 내 안에서 말을 걸어왔다. ‘나무는 이는 바람에 그저 자유로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가지를 바람에 맡기고 있네.’ 수없이 보았던 장면인데 그날은 나무가 나인 듯 느껴지고, 나무와 달리 인생을 긴장하고 힘을 잔뜩 주고 살아왔던 내가 느껴졌다. 자연과 나무가 많은 산을 좋아했던 나였는데, 자연의 일부인 사람으로, 자연의 이치, 삶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좁은 눈으로 보던 세상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해 봄, 내 불안의 요소에는 ‘돈’이 있었다. 병으로 일상이 예전처럼 되지 않는 상태이고, 직장을 나가 돈을 번다는 건 더욱이 말이 되지 않았다. 내겐 돈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필요한데 돈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유튜브를 접하지 않던 나도 누워서 보거나 들을 수 있는 이 환경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 돈이나 재테크 등 돈에 관한 영상을 보기 시작했고, 우연히 어떤 영상 속에서 『자본주의』라는 영상과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책을 보기에 앞서 간략히 영상을 찾아보았다. 접해 본 적이 없고, 잘 알지 못하는 분야였기에 책으로 덥석 접하는 것보다 영상으로 쉽게 접근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자본주의』를 보며, ‘난 정말 ‘1’도 모르고 돈을 벌고, 쓰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게 충격으로 와닿은 것은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공장화하고, 그 공장에서 생산하기 위해 학교를 만들고, 학교는 대량으로 노동자를 만드는 곳으로 활용된 것이었다.


또 하나, 뼛속까지 노동자로 만들어지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충격은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나와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내 옛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확실한 이유가 되었다.


어느 날 산책하며 내 안에서 들려온 말을 말해보자면, ‘나는 나와 진정으로 연결되었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나와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갓 사랑을 나누고 있는 수줍은 소녀처럼 나와 늦사랑을 시작했구나를 느낀 날이기도 했다.


‘나에게 주어졌고, 주어진 환경과 주변 사람의 요구에 맞춰 살아왔다. 사람들의 감정과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는 관찰력이 있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기질과 결합되어 선배려, 선양보, 선후퇴 같은 행동이 계속하여 반복되었으며, 그게 내가 되었다.


그렇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내가 무엇으로 슬픈지, 화가 나는지, 아파하는지 나에게서 찾지 못하고 외부에서 찾으려 했었다. 내 안에 진짜 내가 잊혀 오는 외로움과 공허함마저 외부에서 채우려 했었다.


삶에는 이런 공부도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배웠다. 사회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사회가 요구하던 삶, 내가 요구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내지 않았었다.


그렇게 살아봐서 아는 것일까? 그 요구에 응할 수 없는 내 상황으로 아는 것일까? 뭐든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고, 자꾸 나와 진정한 연결이 되기 위해 말을 걸고 시간을 갖는다.’


때론 당장 이해되지 않는 느낌도 있다. 그조차 다시 내 안에서 정리되어 연결 짓고서 알려주는 때가 있다. 그래서 알아지는 것에 대해 먼저 수긍하고 지나간다. 그러면 나의 물음이 멈추지 않고 그대로일 때 어느 순간 그다음 알아차릴 답을 주었다. 단계단계 나의 앎과 질문에 의해 답을 내어주었다.




불현듯 내 안에서 말을 걸어오고, 답을 내어준다. 그럴 때면 ‘아~~’ 하고 기쁜 깨달음을 표현하며 통찰이 되는 순간을 만끽하곤 한다. 살면서 외부에서 찾고자 열망한 것들이 내가 살아내며 겪은 것으로 답을 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살아낸 훈장으로, 보상으로, 상을 받듯 왔다. 그 여정 속에 반복되는 힘겨움, 고통, 인내, 상처, 지금보다 나아지려는 열망, 노력 등이 인생을 그려냈고, 그에 따른 부산물처럼 겸허하게 내 앞에 스리슬쩍 내밀었다.


언제 내어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내어주기에 내 안에서 답이 들려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덩달아 나와의 시간이 무척 즐겁고, 만족스러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사소한 것부터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되는 문제까지 내 안에서 나온 답은 빠르게 감정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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