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이야기 .5

아내의 손에 들려진 것

by 유경

도쿄로 여행간다는 아내를 배웅하기 위해 집에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손에 그 명품 양말을 들고 당혹스러워하는 아내의 표정이 보였다.


“이게 뭐야?”


며칠만에 보는 사람에게 첫 질문이 고작 양말이 뭐냐니?

그래도 배웅하겠다고 가까스로 일을 해결하고 들어온 사람에게 겨우 한다는 말이?

“뭐긴 뭐야, 양말이지. 그게 왜?”


“..어?....아냐. 그냥 물어봤어. 그런데 이 시간에 어떻게 온거야?”

아내를 배웅해주려던 마음이 싹 가셨다.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이제야 알아챘는지, 아내는 가방을 꾸리다말고 야채와 과일을 갈아서 내게 건넸다.

“설마, 나 배웅해주려고 온거야?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고마워.

그런데 언니가 콜택시 예약해뒀대.

며칠 못 들어온 거 보니까 일하느라 바빴나본데, 잘 다녀올테니까 푹 쉬어.”


며칠 못 본 사이에 아내는 헬쓱해진 듯 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이니 다녀오면 나아지겠지 뭐.

아내를 보내고 소파에 앉는 순간 양말이 말을 걸어왔다.


- 바쁘게 사는구나?



건방진 자식. 계속 반말이다.



- 그 여자를 만난게 처음은 아니야. 명품샵의 고인물이 되면 한눈에 알 수 있어.

가방을 살건지 악세사리를 살건지 말이지. 처음 봤을 땐 가방을 사러 온거라 생각했어.

눈빛과 걸음걸이가 당당했고 그 당시 가장 핫한 가방 앞으로 직진했으니까.

가격을 듣고 좀 고민하는 눈치더니 한참을 보다가 단념하고 나가더라고.



뜬금없는 이야기의 시작에 당황스러웠지만, 양말은 기다렸다는 듯이 떠들어댔다.

명품샵에 당당히 들어가는 여성은 어떤 모습일까. 옆 팀의 가팀장이 떠오른다.

그녀라면 명품샵에 아주 어울릴만한 사람이다.

어디서나 세련되고 당당한데다 40대 초반임에도 관리를 잘해서 30대로 보인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런건가?



- 한참 후에 다시 나타났을 땐, 처음과 달랐어.

당당함이 사라진 모습으로 들어오더니 가방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악세사리로 향하더라.

지갑, 벨트, 키링 순으로 보던 여자의 눈빛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어.

나 같은 양말은 단독으로 구매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아니, 단 한명도 못 봤어.

대부분 나는 메인디쉬에 제공되는 디저트 개념이니까.

그런데 그 여자가 내 코너까지 와서 들여다보더니

단독으로 나를 구매했어. 핫핫.

굴욕적이면서도 기분은 좋더라, 나를 단독으로

지목하다니!!



명품은 잘 모를뿐더러, 거의 가 본 적도 없다.

해외출장을 다닐 때에도 면세점에 들를 시간이 있을리 만무했으며,

아내 역시도 명품엔 거의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명품 양말을 단독으로 사는게 이상하게 보이는 세상도 있구나_하며 양말의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 곱게 포장된 나는 그녀의 손을 거쳐 어떤 남자에게

전해졌어.

남자는 그 여자와 나를 번갈아보면서 당혹스러워했지.

처음엔 내가 양말인 줄 몰랐던 것 같아.

정말로 당혹스러워했으니까. 포장지를 벗기고 나의

실체를 확인한 남자의 눈 속에는 실망감과 안도감이

서렸어. 보통 선물을 받으면 좋아해야 하는거 아냐?

심지어 명품인데??

양말이라고 무시한건가 싶어서 기분은 나빴지만,

안도감이 의아했어.

곧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말야.



“다녀왔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딸 아이가 들어왔다.


“엄마는 결국 여행갔어? 이번엔 가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가버렸네. 나 방학하면 같이 가자니까. 칫”

중학생이나 되었는데 여전히 아기 같구나 싶으면서도 이럴 때 동조를 하는 건 유치한 짓 인거 같았다.

“엄마도 엄마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유민아”

냉장고에서 스스로 간식을 챙기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아이가 물었다.


“아빠는 엄마를 믿어?”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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