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중 한 명인 나의 상간녀에게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아이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으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슨 의미지?
아내가 여행을 가는 것에 의심이라도 해야 한다는건가?
왜?
저 맹랑한 녀석이 요즘 뭘 보고 다니는거야?
- 이봐, 내 얘기에 집중하라고. 듣고 싶지 않아?
아, 그렇지. 양말.
- 여자와 남자가 만난 곳은 어느 다리 밑의
포장마차였어.
요즘도 그런 곳에서 데이트를 하나 싶었지만,
뭐 두 사람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야.
아무튼 둘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어.
시가 어쩌고 소설이 어쩌고 인문학이 어쩌고.
나는 하품을 하다가 졸았나봐.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
손에 들린 채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어.
조금 후에 남자의 눈에 어린 안도감의 정체를 알았지.
아내가 있더라고.
나를 아내에게 넘기면서 이렇게 말했어.
[선물 받았어. 이번에 내 칼럼이 좋았다나? 모임에
갔더니 주더라.]
남자의 아내는 경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어.
명품을 처음 보는 건지 나를 받아온 남편이
자랑스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거기까지 들었을 때 갑자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양말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욕실로 갔다.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그저 망상이길 바랬다.
다시 거실로 돌아왔을 때 양말이 비아냥 거리면서 말했다.
-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데?
밤에 그것도 자유로 한복판에서 왜 네 눈에 내가
보였고 왜 너만 내 목소리를 들었을까?
뭐, 네가 예상하는 바와 같아. 그 남자의 아내도
너만큼이나 눈치가 빠르더라고.
처음 날 봤을 때는 자기 남편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가득했는데, 그 이후로는 나를 볼 때마다 괴로워했어.
"그런데 왜 자유로에 버려져 있었던거야?"
- 그 남자의 아내가 버렸어. 그 아내는 종종 술취한
남편을 데릴러 가곤 했는데, 그날 본거야.
너의 아내와 그 남자가 포옹하고 있던 모습을.
인내심이 굉장한 여자였어.
그 자리에서 아주 차갑도록 이성적으로 너의 아내를
대하더라.
(네 아내는 어쩔줄 몰라하면서 아무말도 못했어.)
그리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취해 잠든 남편의
양말인 나를 벗겨서 창 밖으로 던져버린거야.
하하하하하. 진짜 대단하지?
"그래서 내 눈에 네가 보인거라고?"
- 이봐, 모른척 하지마. 네 아내가 왜 혼자 여행을 자주
갔겠어? 그것도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읽지도 않던 인문학이며 시집을 사들이고 자주 소포를
받았고 열심히 수영을 다녔잖아.
밤마다 누군가와 카톡을 주고받고 아이와 너에게
소홀해졌다는 것을 눈치챘으면서.
그리고 나는 그 남자의 아내가 보낸 염원이기도 해.
너도 알길 바라는 마음 말야.
그 아내는 아마 용서했을 거야.
어린 아이가 둘이나 있거든. 자신만 참으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 테니 그 쪽을 선택했을 거야.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그런 선택을 하니까. 물론,
내색하지 않아야 할 테니 속으론 병들지도 모르겠다.
이제 너는 어쩔 거야? 아마 너의 아이도 눈치 챈 것
같은데?
나는 마른 세수를 했고 조용히 일어나 지체없이 양말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 올렸다.
깨끗하게 세탁이 되었지만 세상 무엇보다 불결한 물건인 양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집안의 모든 쓰레기를 (이미 아내가 청소를 한 뒤라 거의 없었지만)
양말 위에 차곡차곡 쌓은 뒤 입구를 묶었다.
“유민아, 쓰레기 버리고 올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채 지하 1층 버튼을 누른다.
차에 시동을 걸고 쓰레기봉투를 트렁크에 넣은 뒤 종량제 봉투를 버릴 수 있는
내가 사는 도시의 구역 끝에 있는 쓰레기장을 찾아 운전을 했다.
- 너는 이런 선택을 했구나? 괜찮겠어?
양말의 도발에 대답하지 않은 대신 쓰레기장에 봉투를 던져버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에게 할 말을 나지막히 읊조린다
“아빠는 엄마를 믿어. 아니, 믿어야해. 믿고 싶어. 믿게 해줘.”
그리고 도쿄에 있는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다음 주에 중요한 바이어 미팅이 있어.
돌아올 때 명품샵에서 넥타이 하나 사다줘. H사 제품은 사절이야. 이유는 당신이 더 잘 알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