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
아니, 은주씨. 이런 건 기본 아니야? 다시 해서 줘.
앞에 서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결재판을 획 하고 신경질적으로 넘겨주는 부장을 보며, 어제 네가 그렇게 하라면서요.라는 말을 목구멍 안으로 꾸역꾸역 삼켰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괜스레 마우스를 잡고 목적지도 없는 화살표 모양을 이리저리 화면 안에서 돌려대며 크게 한숨만 쉬었다. 역시 나는 이 피라미드 구조의 단상인 직장문화와 절대 절대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한탄하면서. 아 짜증 나, 똑같은 피라미드라면 다단계나 할 걸 그랬다. 그럼 옥장판이라도 남아 있었겠지.
담배라도 필 수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한 갑을 전부 다 피고도 남았을 것이며, 술이라도 잘 마셨다면 당장 편의점에 가서 맥주 한 캔은 싹 비우고 올 타이밍인데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나서 그 흔한 술 담배도 못하는 걸까.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업무와 관련된 그 어떤 것에도 손길은커녕 눈길도 주기 싫었다.
그 순간, 불현듯 나의 머리에 무언가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을 취한다 생각하니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 나는 슬며시 주변 눈치를 보며 주머니에 지갑을 쏙 챙겼다. 다행히 그 계절은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끓었던 여름이었던 덕분에 외투나 목도리 따위를 챙기면서 사무실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저 지금 땡땡이치러 바깥으로 나가는 중입니다, 라며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은 2시 50분. 사무실에서 공석이 허용된 암묵적 합의 시간은 단 20분. 편의점까지는 왕복 4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16분. 끓는 시간 3분을 빼면 13분. 충분하다 충분해. 그것을 두 개나 먹고도 남을 시간이야. 나는 연신 주변을 돌아보며 유유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의점 내 사각지대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설마, 직원들이 담배를 사러 이 곳까지 오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창문에 흘깃 시선을 던졌지만, 긴장된 눈빛과는 달리 손은 컵라면의 뚜껑을 여유 있게 집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한숨을 쉬며 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던 과거는 어디 간 걸까, 나는 지금 이 순간 라면의 자태에 감탄만 할 뿐이었다. 아, 이 강렬한 레드에 휩싸인 붓글씨를 보라. 오리엔탈 스멜 가득한 ‘매울 신’ 자. 저걸 까 뒤집으면 고춧가루 섞인 나트륨내가 강렬하게 내 코 점막에 안착하겠지. 상상만으로 손끝이 저릿저릿하였고, 이 순간 부장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이미 그녀는 나의 세계가 아니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의 초침이 딱, 딱, 딱 움직였다. 그리고 정확히 12를 지나는 순간 나는 재빨리 뚜껑을 열고 젓가락을 쑤셔 넣어 휘휘 저었다. 그러다 잠시 멈칫. 불과 일주일 전 헬스 트레이너가 죄책감이라고는 일도 없었던 나의 뱃살을 쳐다보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앞으로 면은 드시면 안 됩니다, 특히, 밀가루.
눈앞에서 세상이 망가지는 소리를 듣던 내가 되물었다.
그럼 쌀국수는 되나요.
당면은요?
냉면은요?
메밀면은요?
감자면은요?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망에 절은 나는 역시나 다시 되물었다.
그럼 역시…, 라면도 안 되겠죠?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눈빛을 쏘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덧붙여, 라면은 일 순위로 배제해야 한다는 굳이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는건 무어람.
그러나 그의 말이 지금 무슨 소용일까. 라면은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인데.
나는 헬스 트레이너의 말 따위는 벌써 잊어버리고, 면 한 젓가락을 북 떠서 입안에 가득 넣었다. 그리고 목구멍 안으로 넘기기 전 국물을 한번 들이켜 입 안에서 면과 황금 배율을 맞춘 뒤 그 맛을 음미했다. 미간이 절로 좁혀혀졌고, 나도 모르는 웃음이 퍼졌다. 아아, 나트륨의 짠내가 혈관 끝까지 전해지는 느낌…. 나는 멜로가 체질이 아니라 라면이 체질이라는 느낌…. 오 마이갓, 지저스 크라이스트. 오 디어. 유 아 마 데스티니. 라면을 인종으로 비유한다면 그것은 혼혈. 이것의 국적은 한. 국. 과. 천. 국.
후루룩 후룩. 이제 내 머릿속에는 결재판이고 부장이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의 느낌을 굳이 표현한다면 안정감이라고 하고 싶다. 하얀 바닥이 보일 때까지 모든 것을 흡입한 나는 세상에서 모든 임무를 끝낸 사람처럼 젓가락을 턱 놓았다. 그리고 곧 의자에 푹 기댄 채 편의점 천장을 바라보았다.
와…. 행복해.
근데 나, 왜 이렇게 라면을 좋아하지?
2. 라면은 사랑
어렸을 적부터 키만 전봇대같이 크고 깡말랐던 나의 별명은 젓가락, 갈비뼈, 멀대 등이었으며 친구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긴 막대기 형태의 사물들로 나를 부르곤 했다. 나는 이런 별명들이 정말 싫었지만 친구들이 뼈다귀!라고 부르면 용케 나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돌리곤 했고, 그 후에는 큰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였다.
아니 그래도, 어떻게 사람에게 뼈다귀라고 할 수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당시에 나는 충분히 그렇게 불릴만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티브이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기아체험 24시라는 기획 프로그램을 했었다. 그 프로그램의 목적은 아프리카나 동티모르와 같은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심각한 아사를 겪고 있으니, 방청객들 역시 24시간 동안 배고픔을 체험해보며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함께 나누어 보자 같은 것이었다.
프로그램 중간에 수많은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자료화면으로 나왔고 이를 보며 많은 시청자들은 집전화를 들어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우리 가족도 역시나 그때 한참 티브이에 빠져있었는데,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갈비뼈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 배고픔에 울부짖는 아이를 보며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고, 소파에 앉은 가족들을 향해 저 아이 너무 마르지 않았냐며, 우리도 전화로 기부를 해야 하지 않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
은주야. 이미 우리 집에 저렇게 생긴 친구가 살고 있는데, 그 친구만 모르는 것 같아.
우리는 지금도 기부 중이야.
뭐 아무튼, 이렇듯 내가 동티모르 친구들과 동지애를 느끼며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생겨먹어서 아버지는 늘 걱정하고는 했는데 당신의 유일한 바람은 제발 막내가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 사람처럼만 보였으면 좋겠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침밥을 다 먹지 않으면 등굣길에 내보내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면 나는 항상 식탁 앞에서 울상을 지었다. 왜냐하면 내 앞에는 항상 엄청난 양의 삼겹살이나, 엄청난 양의 고봉밥 등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에 정말 그것을 한 톨도 남겨놓지 않고 다 먹었다. 물론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그 영양소가 모두 키 크는데 쓰였지만.
아버지가 해주시는 아침메뉴는 항상 비슷했다. 삼겹살, 참치김치찌개, 그리고 라면. 그것들은 며칠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우리의 식탁을 차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40년 동안 경제적 가장으로 살다가 한순간에 전업주부가 된 아버지에게는 어쩌면 당연하고도 당연한 최선의 메뉴 선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요리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꼽으라면 단연코 라면이겠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라면은, 그 라면은, 아아 이경규가 울고 갈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아버지는 매번 라면을 해주시는 건 아니었고, 그 날의 음식재료가 마땅치 않거나 시간이 없으면 라면봉지를 뜯고는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나 좋아서 끓이기도 전부터 입맛을 다셨다. 어느 날은 라면의 맛에 심취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라면 전문점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고, 그는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는 그렇게 맛있어? 얼른 먹어, 우리 딸.이라고 말하며 김치 하나를 집어 내 그릇 위로 살며시 올려주시곤 했다.
지각의 위기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밥은 먹고 학교를 가야 한다고 우겼고, 나는 심하게 짜증을 내며 식탁에 앉았다. 어린 마음에 인상을 쓰며 라면을 끓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도 급하신지 평소답지 않게 움직임이 매우 빨랐다. 가스레인지 위 라면 물이 끓어오르고 김이 나기 시작할 즈음, 아버지는 싱크대에 큰 대야를 놓고 냉수를 받았다. 그리고는 그곳에 얼음을 쏟아내었고 손으로 휘휘 저으며 녹이기 시작했다. 이내 라면이 다 끓자 냄비를 집고서는 대야에 넣고 슬슬 돌렸다. 그와 함께 입으로도 호호 불며 라면을 식히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아버지는 내 앞에 냄비를 턱 하니 놔주었다. 그러면 나는 불과 5분 전 화를 냈던 스스로를 망각한 채 맛있는 라면을 또 입천장 하나 대지 않고 후루룩 후룩 넘겼다.
이제와 생각하면 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나의 아침에 집착을 하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누구 말마따나 아이를 낳아봐야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뭐 사실, 이해를 하건 하지 못하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중요한 건….
그 라면 안에 우리 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들어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을 먹고 자랐다는 것.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라면을 볼 때마다 우리 아버지가 생각날 거라는 것. 그것이다.
3. 행복
편의점에서 일어나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장에게 받은 미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 자리는 우리 아버지의 사랑으로 채워졌다.
와…. 행복해.
<작가의 말>
라면없이는 못살아, 정말 못살아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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