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반 전체를 이끌고는 근교로 소풍을 떠났다. 아마 차이나타운이나 롯데월드 그런 곳이었을 거다. 사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언제, 어디로 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런 곳을 갈 때마다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는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것은 바로 김밥. 점심시간이 되면 선생님들은 야외를 한참 돌아다니던 우리를 인적이 드문 잔디밭으로 데려와서는 돗자리를 깔고 각자 챙겨 온 도시락을 꺼내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햇살이 반사되는 은박 돗자리 위에 친구들 대여섯 명과 옹기종기 앉아있다가 곧 가지고 온 점심을 내놓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노란 고무줄이 둘러져있는 하얀색 사각 스티로폼 상자를 꺼냈다. 엄마의 가게인 행운분식의 것이었다. 거기에는 김밥·만두라는 글씨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뚜껑을 열면 노오란 지단이 겉면에 둘러져있는 계란 김밥, 밥알이 고슬고슬 바깥으로 뭉쳐진 누드김밥, 그리고 그 당시에는 흔히 찾아볼 수 없었으며 아주 획기적이기까지 했던 치즈김밥과 김치김밥 총 네 줄이 저들끼리 열을 맞춘 채 형형색색의 자태로 담겨있었다.
도시락 주인인 나는 이런 경험이 여러 번이라 꽤나 무감각했는데, 이런 나와 달리 주위에 앉은 친구들은 나의 도시락만 보면 보석상자가 열린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우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은주야, 나 이거 하나만 먹어봐도 돼?라고 물어보았다. 그럼 나는 너에게 이 김밥 한 알을 하사하는 것이 무엇이 대수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사이에 친구들은 엑스자로 겹쳐진 나무젓가락을 내 도시락으로 마구 꽂아대었다. 그리고 김밥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친구들을 거의 주고 나면 내 뱃속에는 한 열 알 정도 들어갔으려나. 사실, 그래도 배가 불렀다. 왜냐하면 김밥집 막내 딸내미로 자란 나는 살면서 김밥을 종류별로 10,254줄 정도 원 없이 먹었던 것 같고, 그래서 조금은 그 맛에 물렸으며, 안 그래도 입이 좀 짧은 탓이었다. 오히려 나는 친구들이 보온도시락통에 싸온 동그랑땡이라든가 소시지 등이 더 탐난다는 듯이 바라보았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행운분식에서 손님을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밥을 지어서 보온통에 눌러 넣고 이것저것 몇 가지 반찬을 해서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행운분식의 산물, 김밥을 참 많이 먹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소소한 반전이 있다. 그 김밥은 사실 엄마가 아니라 나보다 8살이 많은 큰언니가 만 것이었다. 큰언니는 엄마만큼이나 김밥을 잘 말았다. 왜냐하면 언니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엄마는 장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손님이 많아 한참 바쁘다든지 아니면 그녀가 너무 피곤해서 단 몇십 분이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든지의 상황이 되면 언니는 기꺼이 가게에 가서 엄마를 도왔기 때문이다.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큰언니는 늘 나에게 은근한 기대를 담은 말을 걸었다.
은주야, 김밥 맛있었어?
응, 맛있었어.
뭐가 제일 맛있었어?
음.... 계란김밥.
그랬구나, 그거 언니가 아침에 만 거 알지?
응.
그럼 은주야, 돈 줄테니까 슈퍼에서 짜파게티랑 신라면 하나만 사와. 언니가 물 끓이고 있을게.
언니, 나 너무 힘든데.
잔돈은 너 가져.
알았어, 언니. 금방 갔다 올게.
잔돈으로 산 스크류바와 새콤달콤이 담긴 검은 봉지를 이리저리 돌리며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물은 다 끓고 있었다. 언니가 보글보글 끓는 물에 라면사리를 퐁당 넣었다. 그때, 식탁에 앉아 그 뒷모습만 쳐다보던 내가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언제부터 그렇게 김밥을 잘 말았어?”
후레이크 봉투를 두 손가락으로 집고 완벽한 스냅으로 쳐대던 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제 인생이 담긴 김밥의 첫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뒤, 그 역사의 시작을 기억해 낸 언니는 처음부터 자신이 김밥을 잘 만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첫째야, 엄마가 조금 아픈데 잠시 눈 좀 붙일 테니 가게 손님이 올 때까지만 좀 봐주고, 손님이 오면 엄마를 깨워줘.
그날 밤, 집에 있던 중학생의 언니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안된 아버지와 함께 그 자리에서 가게로 출발했다. 그렇게 아프면 오늘 하루 가게문을 닫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엄마는 왜인지 모르지만 24시 연중무휴라는 행운분식의 방침을 너무나도 철저히 지켰으니까.
엄마의 고집은 꺾을 수 없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가게 가운데에서 엄마 대신 아버지와 함께 서있기만 하면 되겠지, 뭐가 어렵겠어라고 마냥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엄마는 아픈 몸을 이끌고 가게 안 작은 방에 들어가 몸을 뉘일 수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지키는 가게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분식집을 둘러싼 공기는 두 사람의 걱정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동생들을 위해 끓여줬던 라면뿐이었고, 특히 김밥 같은 건 어떻게 마는지도 모르는데 손님이 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제 몸보다 더 편찮아서 서있기도 힘에 부치는 아버지에게 무엇을 바랄 수도 없었다. 엄마는 손님이 오면 부르라고 했지만 시름시름 앓는 그녀를 다시 김밥을 말라고 자리를 내어주기도 싫었고 차라리 손님이 오지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러나 그 무렵, 기어코 원망스러운 손님 한 명이 찾아왔다.
김밥 한 줄만 주세요.
한 중학생의 마음에 심한 내적 갈등이 찾아왔다. 엄마를 깨워야 하나, 손님을 내보내야 하나. 엄마가 너무 아픈데…. 언니는 엄마가 자고 있는 가게에 마련된 조그만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미닫이문을 열었다. 엄마는 앞치마도 벗지 않고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아, 어떡하지.
그리고 어느새 정신을 퍼뜩 차려보니, 언니는 자신도 모르게 도마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김밥을 말고 있었다고. 얼마 전, 어깨너머로 엄마가 김밥 마는 모습을 몇 번 본 것이 다였는데 말이다. 결과물은 예상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으며, 김밥이 아니라 기음바읍 정도 되었을 거다. 그나마 겉모습은 자신이 보기에 조금 멀쩡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접시에 한 줄을 고이 담아 조심스럽게 손님에게 건넸다.
손님은 끊임없이 말소리가 흘러나오는 티브이 앞에 앉아 숟가락을 꺼냈다. 그리고는 같이 나온 우동국물을 먼저 떠먹었다. 그다음은 젓가락을 들었다. 언니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손님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그 몇 초가 언니에게는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김밥으로 향한 손님의 젓가락질이 이내 멈춰졌다. 그 이유인 즉슨 손님이 김밥을 하나 집어 공중으로 들었을 뿐인데 그다음으로 줄줄이 소시지처럼 김밥 세네 알이 풀리며 똘똘똘 따라온 탓이었다. 기어코 그의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이게 뭐여.
망했다. 아아, 역시나 엄마를 깨웠어야 했나. 언니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어서려는 언니의 앞에 아버지가 나타나 손님 앞에서 두 손을 모으며 이렇게 말했다.
손님, 죄송해요. 우리 아내가 오늘 너무 아픈데, 그래서 우리 중학생 딸이 말았어요. 에휴, 처음이라 아마 맛은 없을 텐데 우리가 돈은 안 받을게요. 죄송해요.
손님은 아버지가 말을 끝내자 다시 언니가 만 기음바읍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괜찮다고 말하며 김밥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산도 하고 나갔다. 그 후부터였을 거다. 언니가 엄마를 도와 행운분식에서 김밥을 만 것이. 언니는 참 열심히 연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비슷할 정도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대한민국에서 아니 적어도 인천에서 가장 김밥을 다채롭게, 예쁘게, 맛있게 마는 중학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막내로만 자란 나는 장녀로서 자란 언니가 그 날, 어떤 마음을 가지고 도마 앞에 섰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막연하게나마 언니는 나보다 훨씬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건 알 수 있다. 난 아마도 평생 언니의 발끝의 때만큼도 못 따라갈지도.
그러니까 8살이나 차이나는 동생이 소풍 가는데 기죽지 말라고 아침부터 계란김밥이니 누드김밥이니 만들어서 예쁘게 포장을 해주었겠지. 그런 속도 모르고 나는 남의 소시지나 동그랑땡 들을 부러워했으니 얼마나 부족한 동생이었나. 가끔 그립다. 보석상자에 담겨 찬란히 빛났던 큰언니의 김밥 네 줄. 잔디밭 위에서 먹으면 진짜 자랑스러운 그 맛.
<작가의 말>
큰언니, 사랑해.
구입처 http://5kmbooks.com/product/detail.html?product_no=2077&cate_no=1&display_grou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