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아침에 뉴스에 나온 인물이 은주엄마 아니여? 보다가 깜짝 놀랐당께?]
이른 아침, 전화벨이 공기를 때렸다. 한 어르신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아이고, 제대로 보셨네. 맞아요. 은주 엄마예요.라고 대답하며 이마를 짚은 채 도리질을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러쿵저러쿵 ‘그 일’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며 분식집 운영에 대한 고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일’이 일어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그날도 엄마는 밤을 새우고 아침해가 뜨도록 김밥을 말았다. 김밥만 말았나, 가스불 앞에서 우동면도 삶고 콩국수에 들어갈 콩도 손수 갈았으며 무려 우리 행운분식의 칼국수 이름이 하필이면 (나름 핸드메이드를 강조한) 바지락 ‘손’ 칼국수인 탓에 그날도 손반죽과 칼질을 얼마나 하였는지 팔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내가 만지는 것이 반죽인지 아니면 내가 반죽이 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몸이 힘들고 졸리기까지 하면 엄마는 프랑스 카페에서는 절대로 팔지 않을 것 같은 프렌치카페 커피믹스를 종이컵에 톡, 뜨거운 물을 쪼로록, 하고 넣어 에어컨 앞 의자에 앉아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그때.
“아이고! 사장님! 이게 뭐예요! 아유, 아파라…. 아이고 내 입!”
난데없는 남자 손님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잠시 만끽한 평화는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깜짝 놀란 엄마는 순간적으로 일어나 제 입을 붙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손님에게 다가갔는데 그의 입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아이고, 손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라고 말하니 그는 제대로 입을 열지도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바지락 껍데기에 살이 긁혔네! 아이고 아파.”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먹고 있던 된장찌개에 정말 바지락이 들어있었다. 15년 동안 장사를 해온 김여사다. 바지락 해감은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었고, 특히나 입이 다물어져 안 벌려지거나 깨진 바지락은 신경 써서 골라내곤 했는데 이런 사달이 나다니. 엄마의 마음속에서 손님을 향한 미안함이 우산이 펼쳐지듯 한 순간에 자리잡았다.
그 날, 엄마는 손님에게 치료비 명목으로 얼마를 주게 되었고 된장찌개 값은 받지 못했다. 한 푼이라도 벌려고 시작한 장사였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정말 허망했다. 더불어 자신은 동네장사를 하는 사람이다. 혹시라도 오늘의 일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 손님이 한분이라도 줄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마침 길 건너 맞은편에도 24시 음식점이 생겨서 늘 신경이 곤두서던 차였다. 엄마는 그 날, 몸도 멘탈도 다 부서졌다.
기어코 앓아누웠다. 손님에 대한 미안함과 아침 장사를 말아먹은 것에 대한 허무함이 동시에 몸 밖으로 발현된 탓이다. 그 옆에서 아버지는 가만히 아픈 엄마의 하소연을 듣고 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은주 엄마, 아무래도 이상해. 씨씨티비를 돌려봐야겠어.”
간호하던 아버지의 입에서 뜻밖에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의 주장인즉슨, 행운분식을 15년이 넘게 운영하면서 깨진 바지락에 입을 벤 사람이 없었고, 해감의 장인인 당신이 실수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뿐더러 결정적으로 어제 꿈자리가 약간 사나워서 느낌이 쎄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난 게 정말 이상하다는 아주 근거 없고 약간은 샤머니즘틱한 의견이 나왔다. (아버지는 엄마의 음식 실력과 꿈자리에 기반한 샤머니즘을 굉장히 신봉한다.)
아버지의 의견이 있어빌리티 해보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래,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부부는 행운분식에서 씨씨티비를 설치한 이래로 처음 그것을 돌려보기로 한다. 손님에 대한 미안함이 누군가의 촉 하나만으로 일말의 의심으로 변한다는 게 그리 편한 일은 아니어서 엄마는 넘어가자고 그를 만류하기도 하였지만 자신은 아파도 내 여자 아픈 것은 못 본다는 남편을 말리는 건 헛수고였다. 그리고 마침내.
“은주엄마! 은주엄마! 이거 봐! 내가 말했잖아! 저...! 면도칼 주머니에서 꺼내는 거 봐!”
손님이 손놈으로 변하는 순간. 엄마의 눈은 커졌고, 아버지는 치를 떨었다. 아버지가 몇 번이나 돌려본 그 장면에는 정말로 된장찌개를 먹다 눈치를 슬쩍슬쩍 보던 손놈이 있었다. 그리고 기어이 엄마가 업소용 냉장고 문을 열기 위해 자리를 비우자 면도칼을 꺼내 자신의 입 속으로 슬쩍 가져다 대었고, 피가 나는지 안 나는지 확인까지 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얼굴이 익은 낙지처럼 벌겋게 변했다. 아침 장사 망한 값. 된장찌개 못 받은 값. 치료비를 물어준 값. 김여사가 앓아누워 나간 병원 값. 약 값. 그 값을 모두 다 합치면 김밥이 몇백 줄은 될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여자를 아프게 한 저 사람을 콩국수 믹서기에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았다.
“저놈의 자식을!”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경찰에 신고했고, 얼마 뒤 방문한 그들에게 CCTV 자료를 넘겼다. 그러나 화질도 워낙에 좋지 않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흔한 동네 분식가게에서 일어난 된장찌개 값 떼어먹은 사건일 뿐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 시간은 기약 없이 흘러갔고 어느새 그 일은 우리 가족에게도 조금씩 잊혀 가는 듯했다. 단 한 사람, 아버지만 빼고.
아버지는 마치 옆집 소녀 소미를 납치한 일당을 어떻게든 응징하려는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그 일'에 집착했다. 원빈은 옆집 소녀 소미였지만 김여사는 내 집, 내 마음의 소녀아닌가. 행운분식 된장찌개 사기사건이 장기미제로 흘러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그 사람이 경찰에 잡혀서 콩밥을 못 먹을 거라면 스스로 두려워하고 괴로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선택한 일은 바로 뉴스 제보. 그 날부터 지상파 3사와 연합뉴스 그리고 YTN 등등 대한민국 안에 있는 모든 미디어들에게 우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참 열심히도 제보했다. (그게 뭐라고)
승산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럴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냐고? 결국 아버지는 승리했다. 새벽 6시 뉴스에 행운분식의 작은 CCTV 자료는 전파를 타게 되었다. 화면 안에서는 나름 TV에 나온다고 웜톤의 립스틱을 바른 그리고 쿨톤의 분홍색 손수건을 목에 두른 행운분식의 사장님이 억울함과 속상함을 격하게 토로하는 장면이 나왔다. 비록, 그 날 새벽 뉴스 1회 방영으로만 만족해야 했지만, 아버지는 그것으로 그 손놈에게 복수를 한 거라고 나름의 심심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넸다.
#그날_엄마의 인터뷰
아니, 우리 같은 자영업자한테 정말 너무하잖아요. 나는 정말 너무 당황하고, 무서웠어요. 정말 음식점 하는 사람들 조심해야 돼요. 다들!
이상 GBS 뉴스였습니다.
<작가의 말>
음식점을 하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을 겪기 마련이죠. 이건 해프닝일 뿐이었어요. 대부분의 손님들은 정말 친절하시고, 맛있게 드셔주셔서 저희는 너무 감사하답니다.
[24시 연중무휴 행운분식을 독립출판 서적으로 만나보세요]
구입처 http://5kmbooks.com/product/detail.html?product_no=2077&cate_no=1&display_grou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