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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 연중무휴, 행운분식 이야기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의 연속이다.

by 이은

토요일 열두 시,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사거리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30분이 지나도록 올림픽대로에 진입도 하지 못한 채 압구정중학교 근처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다. 조금만 늦으면 차가 밀릴 거라며 아침부터 빨리오라는 아버지의 채근을 아무 생각 없이 무시한 것이 떠올랐다. 나는 부모님이 계시는 계산동에 갈 때마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고, 반추하고, 반성하곤 했는데 어차피 소용없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나. 이주 후에 또 여기 이 곳에 서서 똑같은 생각을 할 테다.


멍하니 신호등만 주시했다. ‘신호 무지하게 기네’라고 생각하면서. 토요일 강남의 도로들은 늘 아침 열한 시부터 곁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또 게으름을 피운 대가니 기다려야지. 핸들을 안고 괜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어느 육개장집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간판과 투명한 유리벽 위에 '24시 연중무휴'라는 말이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었다. 가만히 그 글자를 뚫어지게 보기만 하던 나는 이내 저곳의 사장님은 또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사시길래 삶의 쉼표를 포기하셨나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가만히 있으니 어느새 귀가 심심해진 나는 카오디오의 전원 버튼과 3번이라는 버튼을 연속적으로 눌렀다. 익숙한 전자음 오프닝 음악과 함께 김신영 씨가 진행하는 정오의 희망곡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의 라디오를 꽤 좋아하는 나는 웃음을 지으며 곧 초록불로 바뀐 신호를 받고 벌써 13살의 나이를 먹은 2005년식 SM5(일명 다복이)의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계양 IC를 타고 고속도로 출구로 빠지니 거대한 아파트촌이 보였다. 명절 전날이라서 그런지 도로는 꽤 한산했다. 라디오는 벌써 2부의 끝 곡을 알리고 있었고, 나는 익숙한 골목길로 들어서 아주 오래된 금은방 옆에 차를 세우고는 그 금은방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된 분식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 간판에는 아주 크게 김밥-짜장-우동, since 1995라고 적혀있었고 그 밑에는 유심히 보아야 겨우 알아볼 정도로 조그맣게 쓰인 행운 분식이라는 가게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

"오이~, 딸 왔어?"


엄마는 김밥을 동동동 썰며 나를 보고 방긋 웃어주었다. 엄마는 항상 갈 때마다 오이~,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나를 맞이하고는 했는데 어렸을 적부터 들어서인지 몰라도 그것을 듣고 나서야 나는 ‘아, 내가 여기 이 계산동, 이 행운 분식에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고, 이렇게 큰 딸이 있어요?"


모자를 쓴 50대 아저씨가 휴지로 연신 입을 닦으며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았다. 아마도 단골손님일 거다.


"우리 딸이에요~"

"아니, 엄마가 이렇게 째깐한데 딸이 이렇게 커?"

"아이고, 이 몸에서 다 나왔어요. 내 딸 맞아요."


맞다. 엄마의 키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150cm 정도 될 거다. 반대로 나는 175cm의 장신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도 거인이었다. 그래서인지 가게에 가서 나도 모르게 엄마라는 말로 입을 떼면 손님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항상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곤 했다. 마치, 이수근이 서장훈을 낳은 느낌이랄까.


얘만 있는 줄 알아요, 첫째도 있고 둘째도 있어요. 얘는 막내야!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익숙한 듯 웃음을 지으며 손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한 뒤 부엌으로 들어갔다. 접시에 김치와 단무지를 옮겨 담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하지 마, 앉아있어’라고 만류하면서도 동동 썰은 김밥과 우동국물을 쟁반에 탁 얹어주며 손가락으로 티브이 앞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것은 가만있으라는 말인가, 아니면 서빙을 하라는 말인가. 누군가 그랬다. 인간은 말보다 행동을 믿어야 한다고.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결론을 내버린 나는 쟁반을 들어 어느 손님에게 김밥 한 줄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돌아서며 생각했다. 아, 엄마가 김밥 한 줄은 김치랑 단무지 둘 중 하나만 나가야 한다고 했는데.... 아주머니는 참 운이 좋으시군요. 저희 집 단무지가 아삭아삭하니 달고, 김치는 또 얼마나 맛있게요.


한가운데 계양구청이라고 적힌 벽시계는 어느새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드문드문 출입문의 종소리가 쨍랑쨍랑 울리며 손님들이 올 때마다 엄마는 ‘재료가 떨어졌다, 우리 이제 명절 휴무라서 문을 닫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포장은 안돼요 사장님?’이라고 말하면 은근히 가게의 셔터를 내리기 싫어하는 엄마의 눈빛이 다시 반짝거리며 기어이 주문을 받고 나가는 손님의 손에 하얀 비닐봉지를 쥐어주었다. 이럴 때 보면 엄마는 정말 장사꾼이었다.


뒤이어 절뚝절뚝 걷는 아버지가 가게로 들어섰고 뚱뚱한 큰언니와 다부진 근육을 가진 작은언니가 나란히 가게로 들어섰다. 큰언니는 익숙하게 부엌으로 들어가 남은 재료와 냉장고 정리를 해주고, 아버지는 전기시설 점검을 했다. 작은언니와 나는 가만히 앉아 티브이에서 하는 전국 노래자랑 외국인 특별 편을 시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곧 모든 정리가 끝난 우리 가족은 마지막으로 유리문에 "명절 휴무 2.14~2.17'이라는 A4용지를 부착했다. 문을 열고 나서며 흘깃 본 가게는 매우 어두웠다. 우리 가게가 이렇게 어두웠나. 쉼 없이 돌아가던 가게가 이렇게 일시 정지될 수도 있다니 참, 어색했다. 우리는 돌아섰다. 그렇게 그날, 행운 분식 24시 연중무휴의 역사가 끝났다.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스물두 살에 전자기기 가게에서 일하는 아주 키가 큰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하자마자 첫째 딸을 낳았고, 그로부터 삼 년 뒤 둘째를 가졌다. 그리고 오 년 뒤 셋째 딸을 낳았다. 서로 투닥거리기는 했지만 여자아이들이 저들끼리 잘 노는 것이 꽤나 귀여웠다. 다른 집보다 자식 수가 많기는 했어도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이 아빠가 가게를 그만두고 서울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택시운전사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 벌이가 꽤나 괜찮았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녀는 가끔 머리띠나 핀에 천을 둘러 붙이거나 하는 것 따위로 부업을 하면서 소소한 경제활동에도 참여하고, 남편의 형네가 준 미싱기계로 이따금씩 커튼이나 피아노 덮개 같은 것을 만들거나 한자를 익히는 등의 취미생활을 이어갔다. 참 평화롭고 행복했던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그녀가 삼십 대 후반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나, 자꾸 심장이 두근거린다던 남편이 병원에 간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달갑지 않은 전화가 왔다. 그 날로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그가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아왔다고 했고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심장 부근에 있는 혈관이 터져 더 이상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가장이었다. 아이들의 아비였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꼬박 열 시간의 시간이 넘었고 수술실에서 누군가 나왔다. 남자는 목에서 배꼽까지 배가 갈려 동강동강 꿰매어진 채였다. 방광에는 오줌통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루 전 출근한다고 나간 자신이 아는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남편이 병원에서 지내려면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았다. 문을 여니 그녀의 앞에 세 딸이 서있었다. 중학생이 된 첫째 딸, 초등학생의 둘째 딸, 그리고 아직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약간의 장애를 가진 막내딸.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그때, 늘 마주치며 웃었던 고 귀여운 여섯 개의 눈동자가 어쩌면, 그녀에게 큰 지구 같은 책임감이라든가 공포감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결국, 엄마는 살기 위해 분식집을 열었다. 자신의 인생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그녀가 지은 가게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24시 연중무휴 행운 분식"이었다. 24시 연중무휴, 쉼표 없이 고단한 삶을 살기를 선택한 그녀는 대체 어떤 행운을 바라고 저런 이름을 지은 걸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말>

저희 가족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글은 그 첫번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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