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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Oct 17. 2019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엄마가 있냐고 물었다.


와, 우리가 벌써 졸업이라니. 진짜 시간 빠르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나는 친구들 여러 명과 교정을 걷다가 사회과학관 1층 편의점으로 향했다. 우리의 테이블 위에는 건국우유, 그리고 참치마요맛 삼각김밥이 널브러져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대학 동기 은비와 인생 자유주의자 아람이 그리고 학점 따위 개나 줘 버린 채 연애의 역사를 매 순간 다시 쓰는 서희와 함께였다. 이들은 대학 4년 내내 인공위성처럼 내 주위에 있었던 친구들이었고, 행정학과를 함께 나온 동기들이기도 했다.


그때 한참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시답잖은 이야기를 했을 거다. 가령 백번 정도 떨어진 대기업 서류 광탈 이야기를 꺼내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기우를 했을 거고, 또 서로의 남자 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결국엔 야한 이야기로 맥을 이어가기도 했겠지. 얼마나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대화 소재가 서서히 고갈될 즈음 다시 졸업 이야기를 꺼낸 건 은비였다.



졸업식에 남자 친구도 와?



순간, 저 계집애가 지금 나랑 싸우고 싶은 건가라는 생각이 훅 들어왔다. 대학교 내내 남자복이 없던 나의 과거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나는 참치마요를 으깨듯 씹으며 말했다.



없는 남자 친구는 미래에서 걸어오니? 아마 아부지랑 어머니가 오시겠지.



나는 친구들의 물음에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고는 때마침 도착한 핸드폰 문자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거 기분 탓인가, 뭐랄까…. 주변 분위기가 아주 고요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친구들을 돌아가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은비가 입을 떼었다.



너..., 엄마 있었어?



엥.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나는 멍하니 있다가 몇 초 뒤에야 그녀가 하는 실없는 농담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우리 은비, 나를 당황시키는 게 목적이었다면 아주 큰 성공이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다시 눈을 마주친 그녀는 꽤나 진지했다. 아, 이 분위기는 뭘까, 나는 하도 당황을 해서 먹던 삼각김밥을 삼키지도 못했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 웃기네. 지가 뭔데 나를 천애고아로 만들고 멀쩡한 행운 분식 김여사를 하루아침에 요단강으로 보내냐 이 말이다. 아직 환갑도 안된 어여쁜 우리 사장님을! 나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되물었고, 그녀는 쭈뼛쭈뼛한 채로 대답했다.



나는 네가 4년 내내 아버지 이야기밖에 안 해서 어머니 안 계신 줄 알았어. 야,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니, 내가 단 한 번도 이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나는 지난 과거를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흠…, 나는 의문을 품은 채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미간을 찌푸렸는데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정말로 우리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안 했을 수도 있겠다, 라는.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남들에게 우리 아부지 이야기밖에 안 했던 거다. 의도치 않게.





여섯 살 때, 엄마가 행운 분식을 개업했다. 당시 손님의 대부분이 야간 택시 기사님들이어서 낮보다는 밤이 바빴고, 엄마는 스스로의 새벽을 모두 행운 분식에 부어버렸다. 그리고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행운 분식의 밤을 지키고 있다. 엄마는 밤 여덟 시에 출근하면 다음 날 아침 열한 시에 들어왔다. 꼬박 열다섯 시간의 노동이다. 그래서 내가 자는 시간에 엄마는 일을 했었고, 내가 깨어있던 시간에 엄마는 잠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엄마를 생각하면 깨어있음이 아닌 자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릴 적의 내가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면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은 꽤나 어두워서 적막의 기운이 감돌 정도였다. 그리고 안방 문은 늘 굳게 닫혀있었다. 거기서 엄마는 낮잠을 청했다. 저 문만 열면 엄마를 볼 수 있는데 아버지, 첫째 언니, 둘째 언니 모두 다 문을 열면 안 된다고 했으며 나만 보면 검지 손가락을 입 앞으로 갖다 댄 채 쉿, 과 같은 방울뱀 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하는 대신 놀이터에 가서 모래놀이를 하고 책방에 가서 책을 보는 등 혼자 할 수 있는 놀이거리를 찾아다녔다.



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엄마 대신 갓 전업주부가 된 아버지가 내 아침을 챙겨주었다. 보통 삼겹살을 구워주거나 라면을 해주거나 그런 식이 었다. 와, 아침에 삼겹살을 먹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정말 가끔씩 보통의 가정식이 우리 식탁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간혹 새로 업데이트되는 마른반찬들. 예를 들면 콩자반이라든지 멸치볶음 따위의 것들은 엄마가 가게 부엌에서 조리해 아버지의 손에 쥐어주고 집으로 갖다 달라는 부탁의 결과물이었다. 뭐 그런 식으로 식탁에서 종종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을 그저 맛있게 냠, 먹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챙겨준 건 나의 아침뿐만이 아니었다. 보통의 아이들과 달리 약한 체력을 가지고 있던 나를 아버지는 기꺼이 자신의 차로 거의 매일 등교시켜주었다. 그 뿐인가, 각종 운동회와 졸업식 등 각종 학내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는 엄마 대신 그 자리를 빛내주었고, 채워주었고,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새 나에게는 엄마보다 아버지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오늘 아빠가 아침부터 삼겹살 해줬어, 너네 아침부터 삼겹살 먹어봤냐? 진짜 웃기지?

와, 나 오늘 아빠 아니면 진짜 지각할뻔했다!

오늘은 아빠랑 운전연수하러 인천공항까지 갔다가 죽을 뻔했어.

얘들아, 그거 알아, 오늘 아빠랑 싸웠는데 왜 싸웠는지 알아?

나 오늘 아빠랑,

아빠랑,

아빠랑….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으로 막내딸을 챙겨준 아버지에게 감사하기는 하나 어린 날의 나는 이따금씩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곤 했다. 가령 학교가 끝나고 12층에 사는 윤지네 집에 놀러가면 항상 윤지네 엄마는 우리에게 음식을 해주고는 했는데 나는 환한 대낮에 엄마라는 존재가 집을 지키고 있는 윤지네가 정상인지 아니면 우리가 정상인지 알 길이 없었다. 사실은 정상이고 비정상이고 그런 건 누가 정할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왜 이런 요리를 해주지않는건지, 왜 집에서 잠만 자는지, 그리고 왜 운동회에 오지않는건지, 그리고 왜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정문 앞으로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건지. 


그러다 결국, 그건 아마도 계산동을 24시간 내내 밝히는 저 행운 분식이 우리 엄마의 영혼을 가져간 것이 아닐까, 엄마는 행운 분식에서 나올 때 마다 영혼 스위치를 끄고 집에 와서 쿨쿨 자다가 다시 밤에 행운 분식으로 스스로도 모르게 이끌려 영혼 스위치를 턱 켠 채 손님들에게 미소를 짓는 건 아닐까라고 결론을 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행운 분식을 내심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도 저렇게 한낮에 행운 분식처럼 불이 좀 켜져있었으면 하고 바라와서…. 어쩌면 나는 엄마와 마주 보며 함께 웃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 친구들이 나를 일순간 천애고아로 만들어버리고 멀쩡히 살아있는 엄마를 요단강으로 보냈을 리는 없었을 텐데.




그래도 엄마,

크니까 이해가 돼. 어둡지만 지친 몸을 뉘일 수 있었던 집이 엄마의 안식처였다는 거. 주위의 다른 가게들이 하나둘씩 셔터를 내리는 동안 엄마만 이 계산동의 새벽을 밝히면서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들었을까. 엄마의 손가락에 쌓여가는 상처들 그리고 허벅지와 종아리에 시퍼런 하지정맥들은 지금까지 내가했던 생각과는 거리가 먼 행운분식의 또 다른 모습이겠지. 앞으로는 말이야, 우리 엄마 참 자랑스럽다고 이야기 많이 할게. 내 친구들에게 말이야.


사랑해. 고생 많았어.






<작가의 말>

오늘은 글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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