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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Oct 29. 2019

나이키 운동화와 구두 사이,  그 어딘가쯤.

1.   나이키 운동화


고등학교 때 내 짝의 별명은 소상이었다. 그 별명은 우리 3학년 5반의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지어주셨다. 당시 선생님은 일본어 교과를 맡고 있어서 성씨에다가 상을 붙이는 일본식 호명으로 이름을 대신하여 우리 모두를 부르곤 했고, 그래서 소씨였던 나의 짝은 소상이 되었다.


소상은 지금 말로 굉장한 힙스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야자(야간자율학습이라고 불리는 사실상의 야간강제학습)가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7교시가 끝날 무렵부터 그 친구는 서둘러 아르바이트 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녀 앞에 조금 덩치가 큰 친구가 앉아있었던 터라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더페이스샵에서 산 가장 밝은 호수의 비비크림을 갸루상마냥 얼굴 전체에 발랐고, 그 끝의 마무리는 언제나 베네피트 틴트로 끝났다.


그다음은 가장 중요한 머리였다. 당시 내 머릿속의 지우개 개봉 이후 중고등학생 사이에서는 손예진의 똥머리가 엄청나게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맵시짱이었던 소상 역시 그 완벽한 똥모양을 재현해내기 위해 약 2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머리를 풀었다 말았다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끝나면 노스페이스 검정색 바람막이와 가짜 루이뷔통 백팩-누구나 부평 지하상가에서 산 당연한 가짜 명품백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지만 그것 또한 우리 세대에서는 간지템이었음-을 걸쳤다.


아아, 빠진 것이 있다. 패션의 완성은 이것이라 하지 않나. 그녀는 하얀 양말에 나이키 덩크 하이 블랙 컬러를 신고 손에는 일주일 전 중고나라에서 산 사피아노 재질의 분홍색 엠씨엠 중지갑을 손에 쥐었다. 그러면 그녀가 바로 이 구역 방축동 예일고의 반윤희였고 도회지였다.


소상뿐이었을까, 그 교실 안에는 내가 눈여겨보았던 또 다른 동창 A가 있었다. 당시 옷을 꽤 잘 입었던 동창 A는 야간자율학습 시작 전 항상 교실 안에 있는 공용 PC를 켜고 신발 쇼핑몰을 즐겨보았다. 대부분 그녀가 눈여겨보았던 신발은 역시나 소상과 같은 나이키였고 예쁜 디자인이 정말 많았다. 소상도 동창 A도 신어서 그랬던 걸까, 나는 나이키 신발이 그렇게 갖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힙한 걸로.


인터넷과 책 읽기에만 몰두했던 내가 다른 어떤 것에 슬슬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사춘기가 왔다.’고 했다.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 특히 친구들과 약속이 생기면 고만고만한 티셔츠를 벗었다가 입었다가, 신발도 마찬가지로 벗었다가, 신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 열 번에 세 번쯤은 답답한 마음에 결국 작은언니의 옷장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대학생이 돼버린 다섯 살이나 많은 작은언니의 옷과 신발이 10대 후반인 나의 취향과 맞을 리가 없었다. 나는 괜스레 마음속으로 소상 스타일을 갈구하기도 했고, 인터넷으로 동창 A가 들린 쇼핑몰을 검색해 그 신발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다른 건 몰라도 나이키…. 그게 자꾸 아른거렸다. 그러나 10만 원이 훌쩍 넘은 가격이었다.


그깟 나이키, 사면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게 영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브랜드라는 이유로 운동화를 10만 원 넘게 주고 산다는 것 자체가 우리 부모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 내내 줄곧 저렴한 컨버스만 신고 다녔다.


 왜냐하면 그 운동화야말로 우리 부모님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가격대일뿐더러, 내 주변의 10대 친구들이 용인할 수 있는 힙스러움 그 어딘가와 닿아있는 유일한 브랜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창 A는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석식을 먹고 야자가 시작되기 전 나이키 운동화를 쇼핑했으며, 소상은 내 옆에서 덩크를 갈아신었다. 날이 갈수록 예쁜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나이키 신발을 사고 싶다고 용기 내어 말했다. 아니, 사실 그전부터 구두쇠 아버지의 예상 질문을 몇 가지 뽑아내어 답변을 줄줄 외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이 왔다. 역시나 아버지의 질문이 마구 쏟아졌다. 얼마냐는 물음에는 아직 모른다고 답했고, 어디서 사느냐는 물음에는 부평에 있는 어느 소문난 멀티숍이 있는데 그곳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고 말하며 최대한 대답을 회피했다. 오케이, 딱딱 떨어지는 질문에 연습한 대답이 술술 나왔고,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버지의 반응을 살피었다.


그런데 그때, 잠시 고민하던 아버지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나에게….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옆에서 묵묵히 우리의 대화만 듣고 있던 작은언니에게 카드를 주며 은주와 같이 그 운동화를 파는 곳에 가보라고 했다. 헐, 놀라웠다.


놀라움의 그 첫 번째 이유는 구두쇠 아버지가 절대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카드를 내밀어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작은언니와의 동행이 그리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싫었다! 작은언니는 나의 선택에 뭐라도 태클을 걸게 불 보듯 뻔했다. 신이시여, 저에게 나이키를 주려면 시원하게 주시지 왜 이런 조건을 다시는 겁니까, 하고 나는 믿지도 않는 신을 원망했다.


작은언니와 나는 그 길로 부평에 있는 멀티숍으로 향했다. 솔직히 작은언니의 존재가 걱정은 되었지만 운동화 따위를 사는데 태클을 걸게 뭐가 있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않기로, 나는 우리 나이키님을 사기 위해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게에 들어가 이것저것 둘러보던 나는 분홍색 나이키 블레이저 모델을 가리켰다. 아직도 그려보라고 하면 그릴 수 있는 발목까지 오는 분홍색 운동화. 다른 것보다 유독 굵은 하얀색 끈이 귀여웠던 그것. 나는 수줍게 말했다.



사장님, 저 이거 신어보고 싶은데요.



내가 두근대는 마음으로 오른손을 들어 그것을 집으려던 찰나, 갑자기 커터칼 같이 서늘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거, 안돼.




'이런…. 개…, 아니 계이름. 도를 지나 미치게 만드는 하….'

나는 원망의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건 너무 밝아서 금세 더러워져. 그리고 재질이 천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지, 나는 하얀색 컨버스를 몇 년째 너무나도 잘 신고 있는데…. 나는 그녀가 말한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았고 꽤 억울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사장님의 시선은 생각도 하지 않고 약 한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처음에는 설득, 두 번째는 짜증, 세 번째는 분노, 네 번째는 포기, 다섯 번째는 그녀를 다시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내가 그 멀티숍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소상의 나이키 덩크 하이, 블랙 컬러였다.


작은언니는 그건 괜찮다고 했다. 컬러는 때가 타지 않는 블랙이고, 재질은 가죽이기 때문에. 하지만 정작 나는 싫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틀 후 나는 자발적으로 그 신발을 다시 반품시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내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첫째, 그 신발은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한 나이키 블레이져가 아니었고 둘째, 운동화치고 굽이 너무 높아서 안 그래도 큰 키가 더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날, 너무나 속상했다.






2.    구두


나는 왼쪽 발이 기형인 채로, 오른쪽 발은 심한 평발인 채로 태어났다. 다행히 기형이었던 왼쪽 발은 아버지가 의사를 수소문한 끝에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정상인과 비슷한 수준의 발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워낙 발이 불편하게 태어난 탓에 첫 신발을 신는 순간부터 줄곧 운동화만 신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을뿐더러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모든 학생들이 운동화를 신고 똑같이 등교했으니까. 그런데 스무 살이 넘으니 기어코 이 발 때문에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구두였다.


스무 살 때에는 과잠바에 운동화만 신던 같은 학번 여자 동기들은 2학년이 되자 화장을 하고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맘 잡고 그녀들이 예쁜 힐을 신으니 몸매도 참 좋아 보이고 그 날 입은 옷도 더 예뻐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녀들에게 구두 예쁘네, 부럽네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은 은주 너는 왜 맨날 운동화만 신냐고 물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의도치 않게 침묵으로 일관하면 아, 은주는 키가 커서 힐을 안 신는구나,라고 단정하는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응, 맞아라고 대답했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어떤 날은 나 스스로가 지원도 해보지 않고 포기한 적도 있었다. 높은 시급의 단기 행사장 아르바이트였는데 여자는 머리망을 반드시 해야 하고 앞코가 막힌 구두를 꼭 신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나는 그런 조건이 있는 영화관 아르바이트라든지 인포메이션 아르바이트들의 공고를 나중에는 보지도 않고 걸렀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다 열거하려면 사실 너무 긴 시간이 걸릴 테다. 나는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며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욱하기도 했으며, 체념하기도 했고, 원망하기도 하다 그냥 내 자리가 아니라고 포기해버리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 거실에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얇은 커튼이 바람에 슬쩍슬쩍 날리던 초여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천장만을 진득이 바라보았다. 그때, 방에서 통화를 마친 작은언니가 슬슬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러더니 대뜸 나를 발로 툭치며 일어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보통 이런 경우, 내가 뭐라도 한마디 하면 작은언니와 나 사이에 좋은 결말이 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잠자코 일어났다.


곧이어, 작은언니가 컴퓨터 옆 프린트 밑에서 A4용지 한 장을 가져오며 바닥에 깔았다. 작은언니는 갑자기 내 앞으로 쭈그리고 앉더니 내 발목을 그대로 끌고 와 용지 위에 두었다. 나는 작은언니에게 뭐 하는 거냐고 말할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중심이 무너진 탓에 넘어질까 봐 작은언니의 어깨에 손을 댈 뿐이었다. 작은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네임펜을 들었다. 그대로 내 오른쪽 발 테두리를 용지 위에 그렸다.



발을 떼니 그곳에는 내가 아는 사람의 발바닥 모양은 없었다. 평발이라 아치가 없는 탓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은 뼈가 돌출되어 세로축이 긴 평행사변형의 도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게 뭐냐고, 짜증을 내었다. 



내가 곧 캐나다를 가잖아. 캐나다 사람들은 너같이 발이 큰 사람이 많아. 그리고 가죽도 유연한 게 많아서 발이 조금 불편해도 여러 번 신으면 네 발에 맞춰질 거란 말이지. 가서 너 구두 한번 알아보려고.



뭐지, 왜 이렇게 생각해주고 난리지. 낯설고 어색한 그러나 고마움이 밀려드는 형언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마구 밀려왔다. 사실, 내 안에는 구두와 관련한 사소한 욕구가 겹겹이 쌓여 이미 어느 정도의 불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준 것만으로 작은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사실, 뭐 우리 관계가 관계인지라 그런 게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작은언니와 깊은 대화나 농담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니 그저 할 말을 어떡해야 하나라고 머릿속으로만 헤아리고 있을 뿐.


그때였다. 방에 있던 엄마와 아버지가 거실로 나왔다. 부모님은 하얀 종이를 보며 이게 무어냐고 물었고, 이내 작은언니의 설명을 듣더니 아직 구두에 대해선 알아보지도 않았는데 마치 오래된 숙원사업이 이루어졌다는 듯 나보다 더 뛸 듯이 기뻐하기 시작했다. 이게 이렇게 부모님이 좋아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던 그 순간, 작은언니가 불쑥 일어났다. 나는 그저 종이를 든 채 묵묵히 방으로 사라지는 작은언니의 뒷모습만 말없이 쳐다보았다. 며칠 후, 작은언니는 캐리어에 나의 왼쪽과 오른쪽의 평행사변형 발바닥 모양이 그려진 종이를 챙기고 캐나다로 떠났다.


그리고 몇 달 뒤 내 눈앞에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편한 착화감을 가진 구두가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검은 구두였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양가죽이었고, 아주 기본형이었다. 굽도 적당해서 남들보다 큰 키를 가진 나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높이였다. 나는 그녀 앞에서 이게 진짜 내 것인가 싶어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고, 그냥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발을 집어넣었다. 왠지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언니 앞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언니도 그랬다. 작은언니는 무심하게 사이즈 잘 맞아, 편해,라고 물어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고마워.



나는 속으로 잘 나오지 않는 말을 어렵고 담담하게 꺼냈다. 작은언니는 별 반응을 보이지않았다. 그냥 거울에 비친 나의 발을 보며, 잘 맞네,라고 대답해주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그 구두는 나의 면접 자리에서, 회사에서, 경조사에서 많은 시간 동안 늘 함께였다.





3.    나의 작은언니


작은언니의 성정은 나와 운명적으로 맞지 않게 설계되어왔다고 단언해왔고, 지금도 그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솔직히 열 번의 기억이 있다면 일곱 번은 작은언니가 무지 밉고, 세 번은 작은언니가 살짝 고맙다. 그런데 그 몇 개 없는 세 번의 고마움이 미국에 있는 작은언니의 인스타를 굳이 들어가게 만들고, 좋아요를 누르게 만들고, 안부를 묻게 만든다. 내 인생 첫 나이키 운동화를 떠나가게 만든 장본인이자 내 인생 첫 구두를 선사해준 작은언니. 우리의 관계는 딱 그런 것 같다. 진짜 나랑은 안 맞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사람. 내 가족. 나의 작은언니.








<작가의 말>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니. 


<공지>

1. 24시 연중무휴 행운분식 이야기는 브런치북과 브런치매거진 이렇게 둘로 나누어 연재됩니다. 그 곳에서 더 많은 에피소드를 볼 수 있어요. 언제나 시간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팟캐스트에서 에피소드를 낭독하고 비하인드 스토리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함께해요. 

http://www.podbbang.com/ch/177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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