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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Nov 18. 2019

엄마는 돈을 벌어도 쓸 줄을 모른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와중에 핸드폰 진동이 우악스럽게 울렸다. 흘깃 화면을 보니 아버지로부터 온 전화였다. 원래 이 시간에는 딸이 남의 돈을 벌고 있다는 이유로 연락을 잘하지 않는데 의외다 싶었다. 나는 눈치를 살피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받고 여보세요,라고 말하며 입가를 가린 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 날, 아버지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아빠 심장 재수술해야 한데.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이십여 년 전 공포스러웠던 그 순간이 떠올라서였는지 평소에는 다정하던 그의 목소리가 꽤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자식이 된 자로써 꽤나 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도리어 아버지를 위로했다. 아빠, 괜찮아. 요즘 의료기술이 좋아서 예전에 수술받을 때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아버지 병원 일원동이지? 내가 가깝잖아. 딸이 간호해줄 수 있어. 아버지, 걱정마요.


전화를 끊으니 종료된 통화시간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삼분남짓. 그러나 삼분 전과는 꽤 많은 감정들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병원 풍경이 눈 앞에 그려졌다. 피 묻은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던 아버지, 그 옆에 초조히 앉아있던 엄마, 그리고 그 주위를 천진난만히 뛰어놀던 어린 나. 





첫 번째 수술을 했던 그 해. 아버지는 고작 마흔 살, 나는 여섯 살이었다. 병실에서 아버지의 가슴에 큰 흉터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 이건 뭐야?라고 물었던 내가 이제 서른이 되어 예순이 넘은 아버지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상황이 꽤나 이상했다. 순간적으로 아버지가 아버지 같지 않았다. 그저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인간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며칠 후, 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간 후 우리 가족은 나란히 대기석에 앉아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대기실에는 우리 가족 말고도 수많은 환우들의 보호자 가족들이 앉아있었다. 개 중에는 두 손을 모으고 가만히 눈을 감고는 무언가를 비는 여자도 보였고, 훌쩍훌쩍 휴지로 눈가를 훔치는 어떤 이들도 보였다. 


나는 옆에 앉은 엄마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같은 수술을 두 번이나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힘든 내색을 하나도 내지 않았고 꽤나 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겁을 먹은 아버지와는 달리 그저 평소처럼 핸드폰을 바라보고, 이따금씩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다 가끔, 그녀 대신 의사 앞에서 수술과 관련하여 보호자 설명을 들은 나에게 ‘의사가 그렇게 큰 수술 아니라지?’, ‘괜찮다고 하지?’ 라며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엄마야말로 지금 괜찮은 건지 아닌지 묻고 싶었다. 


엄마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큰언니가 내 앞으로 믹스커피를 하나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며 정작 본인에게 하지 못한 질문을 엉뚱한 이에게 던졌다. 


엄마는 괜찮은 거야?


큰언니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 날, 그녀는 내가 여섯 살이었기 때문에 차마 알지도 듣지도 못했던 이십여 년 전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있잖아 은주야, 내가 기억하는 우리 아버지는 하루에 얼마 이상 못 벌면 택시의 시동을 절대 끄지 않는 사람이었어. 왜냐하면 그렇게 벌어야지만 아내하고 세 딸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으니까. 아버지가 그런 말도 예전해 해줬어. 그 많은 생활비 중에 월세로 나가는 돈이 너무 아까워서 전세금을 모으려고 죽을 둥 살 둥 일했다고. 결국 그 결심을 하고 육 개월 만에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데. 참 독하다, 그렇지?


그런데 그렇게 돈 모아서 아파트 사고 그러면 뭐해…. 아버지 마흔 살 때 심장 수술하면서 수술비만 수천만 원을 썼다더라. 그때는 건강보험 보장도 약하고, 보장성 보험도 들어놓은 것도 없었데. 그래서 아버지 드러눕자마자 엄마가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 수술비를 마련했다고 하더라.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그 와중에 엄마가 점쟁이를 찾아갔다는 거야. 의사 입에서 남편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그래서 뭘 어쩌긴 어째. 점쟁이한테 거액을 주고 그 앞에서 빌었지. 우리 남편 살려달라고. 참…. 그러고 보면 죽음 앞에서 인간들은 하나같이 다 나약해 빠졌어. 그치?


근데 말이지. 나는 그때의 우리 엄마가 불쌍한 게 아니라 지금이 더 불쌍해…, 그 후로부터 우리 엄마는 돈을 누가 억만금을 갖다 줘도 못쓰거든. 그건 우리 엄마한테 언제든지 남편 살려야만 하는 돈이라서. 그래서 지갑이 퉁퉁해도 그 돈 못써. 은주야. 나는 자식으로서 엄마가 참 불쌍하고 왜 저러고 사나 싶은데, 그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돼서 내가 결혼하고 자식 낳고 하며 나이 드는 게 참 싫어. 





나는 줄어들지 않은 종이컵의 믹스커피만을 처연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왜 갑자기 교복을 입고 행운분식 앞을 지나가던 십 대의 내가 생각났을까. 그건 정확히 말하면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어린 마음에 조금은 미워하던 마음이 있던 찰나였다.


그때의 나는 창밖에서 손님에게 분주히 서빙을 해주던 엄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줌마,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아줌마, 우리 김밥 언제 나와요, 하는 낯선 이들의 말에 예예, 대답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맘에 안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뒤돌아 주먹을 쥔 채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 날 오전, 나는 친구들이 아이비나 스마트 같은 비싼 교복을 자랑하는 사이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교실 뒷문을 빠져나갔다. 그러고 나서는 세면대 앞에 서서 집 앞 상가의 어느 이름 없는 교복집에서 맞춘 저렴한 교복 소맷자락을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친구들이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예쁜 운동화 이야기를 하면 그냥 입을 꾹 다물기도 했었다. 그때의 나는 우리 부모님을 다른 부모님과 비교했었고, 저렇게 손님이 가득 차서 우동을 많이 팔아도 비싼 교복과 운동화를 사주지 않는 엄마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우리 엄마도 역시나 시장에서 파는 옷들을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끝내는 돌아서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언니의 말처럼 엄마에게 돈은 있어도 못쓰는 존재였다. 그건 언제든지 수술대 위 남편을 살릴 수 있는 인간들에게 바치는 목숨 값, 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신에게 바치는 목숨 값, 그리고 우리 엄마의 희망 값이었다. 자식들에게 예기치 못한 순간 아버지라는 역할의 빈자리를 내어주는 것보다야 더 저렴한 교복과 운동화를 사입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만큼 엄마에게는 돈이 곧 삶의 보험이었고 언제든지 준비해야 할 재물이었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나는 먹먹함이 드는 동시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왜 그렇게 이기적이지 못하고 이타적으로만 살았는지. 왜 남편을 남편처럼 대하지 않고 그의 부모처럼 행동했는지. 엄마도 결국 나약해 빠진 인간 중에 하나면서, 왜 도망가지 않았는지. 아니, 왜 벌어놓은 돈을 그렇게 맘대로 쓰지 못했는지. 왜 엄마는 엄마 자신을 책임지고 돌보지 않았는지, 엄마는 왜 엄마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몰랐는지. 


문득,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마도 아버지는 의사에게 어떤 소견을 듣고 나서 아무 의자에나 걸터앉아 떨리는 손으로 나의 번호를 눌렀을 거다. 놀란 마음을 티 내지 않고 아버지를 위로하던 그 찰나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연쇄적으로 나도 모르게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이런 마음과는 견줄 수도 없이 큰 마음이었겠지.  


가끔 아버지와 엄마를 보면 부부라기보다는 부모의 관계 같을 때가 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남들과 다른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자라면서 수많은 가정을 보니 많은 생각이 교차하기도 했다. 우리 세 딸들은 가끔 이런 이상함에 대해 질문을 했고 그녀는 늘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아픈 게 불쌍하잖아, 그래도 내 남편이잖아. 




사실 조금은 허탈했다. 혈연도 아닌 부부의 연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가 싶어서. 그러나 나는 엄마의 대답을 들은 후, 더 이상 어떤 물음표도 품지 않기로 했다. 그저 세상에는 많은 부부의 형태가 존재하며, 우리 아버지와 엄마같이 일방이 온전하게 보살핌을 받는 부모 같은 관계도 있는 거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그것이 누군가는 나쁜 거라고, 몰염치하게 한 사람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냐고 손가락질할 수는 있겠지만 세상에는 설명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반드시 이해를 받아야만 하는 관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지는 게 분명해 보이는 전쟁에서도 꼭 챙기고 싶은 전우가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런 우정과 전우애가 있는 거라고.


다만, 그 전쟁을 그저 방관만 했던 자식이라는 나는 왜 그렇게 힘겹게 싸우셨는지, 왜 그렇게 곧 죽을 것처럼 버티셔야 했는지 그녀에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오래된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차근차근 알아갈 뿐이다. 





[공지] 팟캐스트에서 에피소드를 낭독하고 비하인드 스토리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함께해요. 

http://www.podbbang.com/ch/177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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