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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Nov 25. 2019

엄마가 운전을 하고싶었던 이유

가끔 엄마를 보면 놀라곤 한다. 엄마 또래의 비슷한 동년배들보다 습득력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상황이다. 아버지와 엄마에게 동시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방법을 알려주면, 아버지는 몇 번을 버벅대다 이내 포기를 해버린다. 반면 엄마는 그까짓 것 뭐, 하면 되지!라고 말하고는 안경을 머리 위로 스르륵 올리며 준비자세를 취한다. 그리고는 핸드폰이 터질 것처럼 쏘아보는데 놀라운 건 시도한 지 두세 번 만에 그것을 기어코 해낸다. 그 후, 그녀는 마치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스윙스같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은주야, 나는 너네 아부지보다 훨씬 똑똑해. 너네 아부지는 바보야. 바보! 하하하핫!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마치 전쟁에서 진 장수마냥 고개를 푹 숙이시지만 아닌 말이 아니라 엄마는 정말 아부지보다 훨씬 똑똑하다. 프로필 사진 바꾸기 뿐일까? 음식도 잘하고, 계산도 정확하고, 눈치도 빠르니 계산동의 행운분식을 이십여 년 동안 끌고 왔을 테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일듯한 습자지 같은 그녀에게도 유일하게 어려운 도전이 있었다. 그게 바로 운전이었다. 





엄마가 운전을 하고 싶은 이유는 사실 딱 하나였다. 그건 바로 황당하게도 은퇴 후 고속도로 안의 밀리는 차들 사이에서 뻥튀기를 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의 이유도 황당하다. 가게를 완전히 정리하고 백수가 돼서 누워 잠만 자면 심심하기만 하다나, 그래서 용돈벌이로 선택한 게 고속도로 뻥튀기 장사고 그러려면 트럭 정도는 몰 줄 아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댄다. 


아무튼 엄마는 꽤 진지했다. 그리고 오십에 설정한 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 불도저 같은 실행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자동차학원을 등록하고, 운전면허 필기 문제집을 분식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김밥 속에 들어가는 계란지단을 자르면서 도마 옆에 문제집을 펼쳐놓은 채 중얼거렸다.


‘정차란, 운전자가 오분을 초과하지 아니하고 차를 정지시키는 것….’

‘정차란, 운전자가 오분을 초과하지 아니하고 차를 정지시키는 것….’


밤낮 안 가리고 문제집을 들여다본 그 정성에 계란의 신도 감동해서였을까, 엄마는 필기시험에 한 번에 합격했다. 하기사 택시기사 아내로서 조수석 경력만 삼십 년이 넘는데 시험을 합격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아마도 그녀가 남편 옆에 앉아 왔다갔다한 통일로 길이만 합쳐도 500키로는 넘을거다. 아, 그러고보니 이럴 때 이런 말을 쓰는 건가.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엄마의 얼굴에 그럼, 그렇지라는 스윙스의 표정이 다시 한번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아버지는 그런 엄마에게 매우 놀라워하고 있었다. 머리가 좋은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무려 국가가 인정해주는 자격증씩이나 딸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아버지가 놀라는 걸 넘어서 목숨을 위협받는 시간들이 더 남아있다는 것을. 어디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아버지 : 자기야, 출발 - .

엄마 : 어어…? 어어…? 이거 왜 안가?

아버지 : 자기야,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엄마 : 어어…? 자기야…, 사이드…. 사이드가 이건가?

아버지 : 자, 요고를 위로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고 악세레이다를 밟…, 으으으아아아! 스도오옵! 스돕! 

엄마 : 오메! 난 몰라! 이거 왜 이렇게 빨리 출발해?!

아버지 : 천천히 밟아야지, 천천히! 아니, 이보게. 운전이 그렇게 쉬운게 아니에요…!


그까짓 것 뭐,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운전은 녹록지 않았다. 대체 남편은 이걸로 어떻게 그동안 벌어먹고 산 건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시절, 그런 답답한 마음을 행운분식에까지 가지고 갔으니 당연히 엄마 눈에는 동그란 우동그릇과 핸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겹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팔팔 끓는 물에 면을 넣으며 생각했다. 에휴, 운전도 물에 넣으면 자동으로 푹 삶아지는 면같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그녀는 그런 답답한 생각이 나면 에어컨 앞에 있는 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동그란 플라스틱 우동그릇을 잡은 채 팔을 뻗고, 오른 손에는 리모컨을 쥐었다. 길쭉한 건 사이드 브레이크고, 동그란 건 핸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달 후, 엄마의 결과는 합.격! 아버지와 학원 선생님을 한 번씩 돌아가며 요단강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던 엄마는 전광판에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보자마자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놀란 건 엄마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연수라는 명목으로 엄마의 조수석을 거쳐간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거센 기립박수를 치며 축하의 함박미소를 지었다. 그건 오십이 넘은 여자의 도전과 노력에 대한 존경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래서 엄마가 미래에 뻥튀기 장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파가 되었나요’를 물어본다면…, 음…, 나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사실은…, 혼자 아버지의 바지춤에 있는 차키를 들고나간 지 3분 만에 그 복잡한 도로 한복판도 아니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사고를 냈는데 하필이면 그게 경찰서장의 차였다고, 아니 사실은…. 운전대를 잡으면 아무도 없는 인도 위를 스스로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데 문제는 내려오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아니 사실은…, 에휴…, 더 이상 묻지 말길 바란다. 나도 우리 엄마를 지키고 싶으니. 


어쨌든 결론은 새드엔딩. 하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가 - 어디까지나 취미라고 말했지만 – 지겨운 행운분식을 정리하고 난 후에도 왜 그놈의 뻥튀기 장사를 또 하고 싶어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은퇴 후, 손자 손에 까까 하나를 더 쥐어주기 위해서 혹은 자식에게 민폐 끼치며 살기 싫어서 일거다. 정말...., 우리엄마는 너무 엄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엄마 마음 안에 있는 것들…, 싹싹 긁어서 이미 자식에게 다 내어주었으니 이제는 그런 장래희망은 가지지 마시라고. 우리는 엄마가 고속도로 위 뻥튀기 가득한 트럭 앞에 서있는 것보다 우리와 함께 차 뒷좌석에서 수다나 떨며 어디론가 향해가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고.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결론은 해피헨딩이라고. 알았지요, 우리 김여사? :) 




<공지>

1. 24시 연중무휴 행운분식 이야기는 브런치북과 브런치매거진 이렇게 둘로 나누어 연재됩니다. 그 곳에서 더 많은 에피소드를 볼 수 있어요. 언제나 시간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팟캐스트에서 에피소드를 낭독하고 비하인드 스토리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함께해요. 

http://www.podbbang.com/ch/177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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