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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Dec 16. 2019

깻잎전이 뭐길래




남편과 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주욱 올라오는데 코끝에 고소한 전 냄새가 스쳤다. 역시나 계산대 앞에는 크레페나 만두와 같은 먹을거리를 파는 간이부스가 줄을 이루었고, 그 가운데에는 각종 전을 파는 가게도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빈 카트를 끌고 가다 그 앞에 잠깐 멈추어 섰다. 방금 부쳐서 겉면에 윤기가 가득한 호박전과 동그랑땡들이 쟁반 위에 놓여있는 것을 보니 저절로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갔다. 나도 모르게 시선은 각기 다른 전으로 차례차례 옮겨졌고 그 와중에  초록초록한 깻잎전이 확 눈에 띄었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내가 깻잎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 돼지고기와 채소로 이루어진 맛있는 속이 자칫하면 느끼해질 수도 있는데 깻잎 특유의 향이 그것을 센스 있게 싸악 감싸주어서 온 재료들의 풍미가 입안에서 골고루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좋아하는 깻잎전을 뒤로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가격이 예상보다 비쌌다. 한입에 쏙 넣으면 없어질 것 같은 크기, 그 하나의 가격은 무려 이천 원. 나는 쩝, 하고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뭐, 못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었고 또 엄청 먹고 싶었던 것도 아니어서 그냥 아쉬운 감정만 살짝 스쳐갔던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그러나 며칠 뒤, 나는 깻잎전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일요일 한낮, 엄마가 노란 봉투 안에 무언가를 잔뜩 바리바리 싸들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게 바로 깻잎전 재료였던 거다. 무려 3~4인은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아주 많은 양이었다.


엄마가 그 재료들을 사 온 이유는 전날 내가 아무 의미 없이 말했던 - 깻잎전이 먹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서 못 먹었다, 라는 2초도 안 되는 발언 – 통화내용 때문이었다. 그다음 날, 엄마는 일을 끝내자마자 병방시장으로 향했고 고기와 깻잎 그리고 밀가루를 사 왔다. 마침내 식탁에 그것들을 널어놓은 엄마는 맨손으로 고기와 야채를 섞은 속을 주물럭거렸다. 그리고 밀가루와 계란을 묻힌 깻잎 양면에 그것을 넣고는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엄마의 추진력에 꽤 놀란 나는 식탁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는 엄마에게 물었다.




이건, 왜 사 왔어.

내 새끼가 마트에서 깻잎전 하나를 못 먹었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니?

그거 그냥 비싸서 말한 거야, 엄마는 정말…. 무슨 말을 못 하게 해.

그냥 주면 먹어라. 먹고 싶으면 엄마한테 늘 말하고. 아아, 이 깻잎전 말이야, 이거 어려운 것도 아니더라. 엄마가 오늘 인터넷에서 레시피 보고 따라 해 본 건데 동그랑땡보다 훨씬 쉬워. 다음 명절부터는 이걸로 해야겠어. 이서방도 이거 좋아한다니? 그럼 넉넉히 할 테니까 집에도 가져가서 이서방 꼭 먹여라. 알았지?




집에 가는 길. 조수석에는 엄마가 준 깻잎전과 남편이 좋아하는 삼겹살 그리고 사과 몇 개가 들은 검은 봉투가 놓여있었다. 고기니 과일이니 하는 것들 또한 우리 부부가 여태까지 아무 생각 없이 엄마 앞에서 지나가듯 말한 것들이었다. 정말, 무슨 말을 못 하겠다. 이럴 때면 나는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못주어서 안달이 나는 병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다섯 살 때의 기억 어느 한 장면이 소환되었다. 식탁 위에는 케이크가 놓여있고 전업주부였던 젊은 엄마와 어린 작은언니가 귀여운 캐릭터 퍼즐을 나에게 주는 장면. 아마도 내 생일이었겠지. 하지만 가족들이 나의 생일 케이크를 챙겨준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다음 해부터 엄마가 장사를 시작한 탓이었다. 대신 생일이 돌아오면 엄마는 평소보다 많은 용돈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걸 고스란히 받아 주머니에 챙겼던 사춘기 시절의 나는 그게 참 좋기도 했는데 또 이상하게 헛헛한 마음이 들어 싫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나중에는 그걸 그냥 당연시 여겼고, 나 스스로도 이 방식이 참 편하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나는 성인이 되었고, 결혼이란 걸 했다. 그런데 친정을 찾아갈 때마다 엄마는 마치 그 날이 내 생일이라도 된 것처럼 양손에다 뭘 하나씩 쥐어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또 뭐라 표현할지 몰라서 그냥 다른 곳을 쳐다보며 넌지시 고맙다고, 식탁 위에 두면 갈 때 챙겨가겠다고만 한다. 나는 그게 참 어색하기도 하고, 또 좋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와 친정에서 가지고 온 엄마의 깻잎전을 봉투에서 꺼냈다. 아직 식지 않아서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참 이상하게도 엄마가 나를 위한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주는 것 같은 그런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엄마도 원래는 예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나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느라…, 그동안 너무나도 치열하게 사느라 어쩔 수없이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주셨던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들.


그 날, 남편과 나는 그 많은 깻잎전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맛있었다. 배가 불렀다. 너무 많이 불러서 배가 터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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