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시는 분은 대접을 원한다

by 까막

휴가를 보내고 부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백마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광장엔 하얀색이 많았다. 바닥도, 뭔지 알 수 없는 구조물도 다 희었다.


안녕하세요.


안경과 긴머리가 다가왔다. 안경은 짧은 머리에 백팩을 멘 남자였고, 긴머리는 하늘하늘한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구부정한 안경과 꼿꼿한 긴머리가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들은 나에게 눈빛이 선하다고 했다. 기운이 좋다고 했다. 목이 마르다고 했다. 대접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부대 복귀까지는 시간이 남았고, 내심 궁금했던 터라 대접해 드리겠다고 대답했다. 카페베네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킬 줄 알았으나 안경은 카라멜 마끼야또를 시켰다. 긴머리는 무얼 시켰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얻어먹는 주제에, 싶었지만 내가 대접한다고 했으니 아까워할 순 없었다.


카페베네 2층. 안경은 가방을 벗고는 그 안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긴머리는 옆에서 꼿꼿하게 앉아 나를 보며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좋은 기운을 가지고 계세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근데 최근에 안 좋은 일들이 많지 않았나요.

네.


실은 아니다. 긴머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게 왜냐하면 조상님 중 한 분이 선생님의 앞길을 막으셔서 그래요.

아, 그렇구나.


나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군복에 빤히 적혀있지만 한 번 더 불러주었다. 안경은 내 이름을 종이에 크게 적더니 획수를 세기 시작했다. 긴머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경은 나에게 나쁜 기운을 물리쳐야 한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더니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성의 표시를 해주시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실 거라고 했다. 그렇구나. 얼마 정도 내야 하냐는 물음에 안경은 성의만 표시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얼마요? 안경은 성의 정도만 보여주시면, 이라고 답했다. 긴머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거듭되는 나의 질문에 안경은 30만 원이라고 답했다. 그 정도까지는 낼 수 없다고 했더니 안경은 15만 원을 불렀다. 10만 원까지 떨어졌다. 긴머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장소를 물었다. 장소는 사당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 지리를 몰랐기 때문에 백마역에서 사당역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는 몰랐다. 다만 애초에 안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만 일어나겠다고 했다.


안경은 나를 계속 말렸고 긴머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점점 화가 났고,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커피도 사고 디저트도 사드렸는데 이러시면 안 되죠. 정말 가보겠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계단으로 내려가려는데,


지-금-가-시면-안-된다-구요-!


목이 쉰 소프라노가 내지르는 듯한 소리였다. 뒤돌아보니 긴머리가 꼿꼿이 앉은 채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미소는 없었다. 처음으로 보는 일그러진 얼굴에 공포심이 들었다. 찡그릴 수 있는 얼굴 근육은 전부 쓴 것 같았다. 눈동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긴머리의 뒤에서 나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와서 보니 2층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부대로 가자고 말했다. 도를 아십니까에 대한 호기심은 완전히 충족되었다. 그 후로는 얘기 좀 하자고 2인조가 다가오면 대접은커녕 아예 바람처럼 지나가 버린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심각하게,

심각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씁니다.

가볍게 구독해주시면 저는 진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