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 여름은 푸드덕 흔들렸다

by 까막

윤?


하얀색 슬라이드 폰에 진동이 울리며 일은 시작되었다. 남학생 윤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문자는 여름방학 토요일 자습시간에 도착했다.


누구?


답장을 보내는 윤은 A형이었다. 혈액형별 성격이 미신으로 치부되기 전이여도 그렇지, A형을 여실히 증명하듯 소심했다. 덩치는 A보단 a형에 가까웠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윤은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나 B 남친


여학생 B는 윤의 여자친구이다. 몇 달 전, 영어교습소에서 마주친 B를 보고 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로부터 며칠 후, 윤은 아이스크림을 B에게 건넸고, B는 바들바들 떨리는 윤의 손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친인데?


윤이 용기 내어 적은 ‘내가 남친인데?’는 건식의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했다. 타학교 학생인 건식은 B와 1년 가까이 만났다. 그 1년 동안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했고, 이번 이별도 당연히 과정 중의 해프닝이라 생각했던 건식이었다. 건식은 이를 악물고 자판을 두드렸다.


만나자. 오늘 18시. 수 도서관으로.


윤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B를 처음 보았을 때의 설레는 두근거림과 다른 종류였다. 괜스레 B가 원망스러웠다. 정리했다고 했잖아. 건식을 만날 때 당구를 종종 쳤다는 B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윤의 상상 속 건식은 교복을 입은 구릿빛 피부의 건장한 남자였다.


내가 왜?


지지 않겠다는 듯 뻗대어 보았지만, 곧이어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윤과 윤의 여동생이 웃고 있는 사진]


윤은 저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린 적이 있었다. 이 사진을 어떻게 찾았지? 뒷조사를 다 한 건가? 이건 무슨 협박이지? 온갖 걱정이 다 들기 시작했다.



그래- 라는 답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학교 일진에게 건식이라는 사람이 잘 나가느냐 물어보고, 머릿속 건식을 몇 번이나 제압하고 나서야 윤은 답장을 보낼 수 있었다.




수 도서관은 언덕에 있었다. 그 해는 매우 더웠고 윤은 서늘함을 느끼며 언덕을 올라갔다. 윤은 휴대폰을 꺼냈다.


어디?

벤치


도서관 뒷마당 벤치로 가보니 건식이 있었다. 교복을 입은 구릿빛 피부까지는 맞았으나, 건장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직 마음 놓긴 일러, 이 당시 일진은 덩치로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왔냐?


건식이 일어서니 키가 꽤 컸다. 윤은 어- 라고 대답했지만 아마 ㅇ-으로 들렸으리라. 건식은 피식 웃고는 분위기를 풀어주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야 나 B 만난 지 오래됐어~

헤어졌다고 들었어.

우리 늘 헤어졌다 만나고 그래 임마

어쨌든 지금은 나랑 만나잖아.

결국에 나랑 다시 만날 거라니까?


대화는 진전이 없었고, 건식은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얼굴에서 나온 한 마디,


한따까리 할까?


윤은 온몸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제자리에서 경직되기를 택했다. 왜냐하면 윤은 인터넷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이대로 도망간다면 쿠엑-!!! @ㅁ@ 하며 사라지는 엑스트라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윤도 공포감에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래.


건식은 자세를 잡더니 규칙을 설명했다.


첫 번째, 손은 쓰지 말 것.

두 번째, 얼굴은 때리지 말 것.


윤은 예상외의 규칙들에 안심했다. 이것이 일진들의 싸움 방식인가? 예전에 봤던 친구들은 이렇진 않던데. 건식의 관대함에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서로가 태권도 겨루기 자세를 유지하며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푸드덕! 푸드덕! 퍽!

푸드덕! 퍽! 푸드덕!


타이슨의 머리를 단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처럼 표정은 비장하지만 어설프게 스텝을 밟다 몇 합이 오고 갔다. 흙먼지가 조금 날리려 할 때, 건식은 싸움을 멈추었다.


그만하자. 좀 치네.




윤과 건식은 벤치에 앉아있다. 싸움이 끝난 지 10분. 윤은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를 보내주지 않는 거지? 건식은 윤을 봐주고 있다는 표정을 유지한 채 본인의 얘기, B와 본인의 연애 얘기를 들려주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건식은 말했다.


코노 갈래?


윤은 정말 가기 싫었다. 발차기도 내가 더 맞춘 것 같은데. 그렇지만 건식의 기세에 눌려서 고개를 끄덕였다.


코인노래방에 왔다. 건식은 자신 있게 노래를 예약했다. 락발라드였던 것 같다. 건들건들 부르는 모습과 달리 노래는 조금 잘 불렀던 것 같다. 중간중간 삑사리도 났지만 그 특유의 봐준다는 표정으로 잘 넘어가는 건식이었다. 윤도 분위기에 못 이겨 마이크를 잡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거리로 나왔다.


간다 헤어져라

싫다고 했어.

하, 새끼


못 이기는 듯 건식은 어디론가 떠났다. 윤은 멀어져 가는 건식을 보며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엔딩 크레딧]

윤 윤

건식 건식

B B


*위 이름은 가명입니다.


[쿠키 영상]

B는 이 사건 이후 건식과 완전히 헤어졌고, 윤과 B는 대학교 1학년까지 만난다. 21살, 윤이 군대를 가고, B는 윤이 입대한 지 3주 차 때 이별의 편지를 보낸다. 윤은 건식과 B가 다시 만난다는 소문을 듣는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심각하게,

심각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씁니다.

가볍게 구독해주시면 저는 진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