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했다. 창문을 열면 자동차 바퀴가 보이는 집이었다. 돈을 벌어야 하니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았다. 사장님은 상냥하셨고 면접은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취업난이 실감되었다.
신림에 있는 한 편의점이었다. 사건사고로 떠들썩하기 이전이다. 여기서 3년을 일했는데,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중 몇 명만 소개해보려 한다.
•낙서 아저씨
그는 얼굴이 검붉고 거북목이 심한 50대 남자였다. 경상도 사투리를 썼는데, 말은 두서없고 자주 끊겼다. 옷차림은 늘 후줄근한 양복차림이었다.
그는 늘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는 문소리만 들어도 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로 종이와 펜, 담배 ‘라일락’을 자주 사갔는데, 늘 처음에 말했던 단어를 말 끝에 반복했다.
라일락 하나 주세요, 라일락
라일락을 건네주면 동전과 지폐를 책상 위에 탁하고 내려놓고 나간다. 그리고는 담배를 꼬나물고 편의점 바로 앞 전봇대에 종이를 붙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쩔 때는 설치미술같이 보이기도 했다. 한 장만 붙이는 것이 아니라 전봇대 기둥을 빙 둘러 전봇대처럼 보이지 않게 종이를 붙였다. 담벼락까지 덮을 때도 있었다.
종이에는 한이 많아 보였다. 잠깐 바람 쐬러 나올 때마다 종이를 읽어보면 그는 고문을 당했고, 사기를 당했고, 미행을 당하고 있었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내가 오기 전부터 있었다고 했다. 아마 지금도 있을 것이다.
•막걸리 아저씨
그는 항상 복대와 공사장에서 많이 보이는 조끼를 입고 취한 상태로 들어와서는 막걸리 한 병을 사갔다. 때로는 안주를 사갈 때도 있었는데, 하루는 데워먹어야 하는 것을 그냥 밖에서 먹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아이 같은 사람이었다. 일단 아기처럼 머리숱이 많이 없었고, 늘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말투는 9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올 법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정희 시대 때! 특공대를 했었던-
2500원이요~
아-네! (경례 자세를 하며) 수고하십시오!
이러고는 과장된 팔자걸음으로 나가는 그였다.
하루는 평일에 대타를 맡게 되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막걸리 아저씨가 보였다. 수건을 목에다 건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사람들과 같이 삽질을 하고 계셨다. 이 날 미간이 찌푸려진 그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지함과 삶에 대한 어떤 것으로 차 있었다.
•외상 아줌마
그녀는 딱 한 번 왔다 갔다. 손님이 적당히 있는 밤 10시쯤이었는데, 몸이 많이 무거워 보였고, 얼굴은 잿빛이었다. 머리는 기름져있고 고개를 내리깐 채 사람을 올려다보아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녀는 손님을 응대하는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음식 매대로 갔다. 이 때는 2년 차라 바로 위화감을 느껴 계산하면서도 그녀를 주시했다.
그녀는 도시락, 삼각김밥, 샌드위치 한가득, 큰 오렌지 주스 한 통을 챙겼다. 바구니로 부족하여 팔로도 한아름 받치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를 지나쳐 출입문으로 갔다. 걸음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저기요! 계산하셔야 돼요.
그녀는 밖이 보이는 통창에 설치된 자리에 앉아 나를 쳐다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나는 카운터에서 나와 그녀가 있는 쪽으로 가서 그녀가 가지고 온 모든 것들을 들고는 카운터 안쪽에 두었다. 그녀는 앉은자리에서 카운터 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외상 하면 되잖아요!
나는 계산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계속해서 손님들을 응대했다. 한 번씩 그녀를 보면 나를 매섭게 째려보고 있었다.
너 사는 곳 찾아가서 다 죽여버릴 거야! 니 가족도 다 칼로 찔러버릴 거야!
그녀는 별안간 저렇게 소리쳤다. 나는 약간의 욕설을 섞어 그러라고 말했다. 찔러보라고. 아, 나의 객기에 대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의 상황은 이랬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며 생긴 인간 혐오, 상경해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나에 대한 혐오 등]
그녀는 씩씩거리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안에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칼을 들고 오면 어쩌나 했지만 그녀는 편의점 입구로 통하는 3단짜리 계단에 앉았다. 한 10분이 지났나, 나는 휴대폰을 들고 그녀 근처에 섰다.
아 경찰서죠? 안녕하세요. 여기 저를 칼로 죽인다는 사람이 있어서요.
너무 차분하게 말했나 싶었지만 와주신다고 했다. 그녀는 갑자기 육중한 몸을 일으키더니 뛰기 시작했다. 잡아두어야 하나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경찰분들이 오셨고 나는 상황설명을 드렸다. 누군지 아시는 것 같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주로 다른 데서 활동하다가 여긴 처음이신 거였다.
새벽은 길었고, 그날 나는 그녀가 다시 올 경우를 대비한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외에도 참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사건이 있었다. 3년째 어느 날, 아침에 퇴근하는데 눈앞이 희미해지며 잠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나는 바로 퇴사했다.
이상한 건, 늘 제정신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심각하게,
심각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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