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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햄찌 Oct 28. 2018

어느 떠돌이 개의 서울혁신파크 적응기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지난 3월, 그 개를 처음 만났다

# 유기견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인을 잃어버리거나 구조된 반려견이 6만3600마리에 달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안락사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년 발생하는 유기견 문제의 원인으로 '의식 부족', '금전적 문제' 등 많은 원인이 거론되지만, 외모에 따른 반려견종 유행 현상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유행 지나서 버려요"…애완견, 유기견 되다, 머니투데이 2018년 10월 11일자]




1.

아직 공기가 차가웠던 지난 3월, 그 개를 처음 만났다. 회사가 서울혁신파크에 위치한 상상청 건물로 이사하고 얼마 후였다. 혁신파크는 상상청, 미래청 청년청 등 여러 건물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10년 질병관리본부가 충북 오송으로 이전했고 비어있던 10만㎡이 넘는 부지에 서울시는 혁신파크를 건립했다. 그중 상상청은 올해 초 오픈한 공유 오피스다. 

     

입주하고 며칠이 지났지만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완공됐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보다. 사람이 있는 사무실보다 비어있는 사무실이 더 많아 보였다. 실내 공기는 바깥공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손끝이 시려온다. 움직이자. 계단을 올라 사무실로 가다 창문 앞에 섰다. 햇볕이 따뜻했다. 창은 널따란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산비탈과 마주하고 있었다.  

    

산비탈을 훑던 시선이 덜컥 멈췄다. 하얀색 털과 쫑긋한 귀, 노란색 목줄. 뚜렷하지 않았지만, 분명 개였다. 개는 수풀에 몸을 파묻고 움츠린 채 창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까. 우리는 서로를 잠시 관찰했다. 

     

다가서자 개는 멀직이 도망쳤다

2. 

초여름 밤, 야근을 마친 퇴근 길. 건물 뒤편 어둠 속에서 묘한 움직임을 느꼈다. 뒷산에 살고 있던 개였다. 상상청 입주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세를 이미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산비탈에서 내려와 사람이 다니는 길까지 내려온 모습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한층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흡사 진돗개를 닮은 외모와 달리 짧은 다리가 눈에 띄었다.      


개는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살폈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혀갔다. 두서너걸음 다가서자 개는 멀찍이 도망쳤다. 그런 개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책상서랍을 뒤져 몇 주간 보관해둔 캔 사료를 찾았다. 애초 뒷산에 놓아둘 심산으로 구매했지만, 가파른 비탈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나와 개를 만났던 곳에 캔 사료를 두고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걸었다.           


개는 뜨거운 해를 피해 현관 바닥에 몸을 눕혔다


3. 

올 여름도 작년만큼 뜨거웠다. 아침마다 사료와 물을 챙겨 개가 다니는 길목에 놓아뒀다. 나름 밥그릇과 물그릇도 챙겨뒀다. 언제부턴가 개는 상상청 건물 주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누구는 그 개를 ‘상상이’라고 불렀고, 다른 이는 ‘흰둥이’라고 불렀다. 나는 ‘뒷산이’라 불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를 위한 밥그릇과 물그릇은 상상청을 중심으로 늘어났다. 누구는 안쓰러운 마음에, 다른 이는 개를 사랑하는 마음에 놓아뒀을 것이다. 한낮에 개는 뜨거운 해를 피해 상상청 현관 앞, 바닥에 몸을 눕혔다. 대리석 재질 바닥은 더위를 식혀 줄만큼 시원했다. 개가 찾아낸 나름의 피서 방법이었다. 밥그릇을 확인하러 갈 때 가끔 마주쳤지만 사료와 물만 먹을 뿐 곁을 주지는 않았다. 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 정도 거리감이 부담스럽지 않고 딱 좋았다.   


4.

가을 초입. 한번은 벌어질 사단이 터졌다. 누군가 개를 구청에 신고한 것.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개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사건 당일, 외근이 있던 탓에 다음날 회사 동료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동물보호소 같은 곳에서 사람이 나와 개를 뜰채 같은 거로 잡아갔다고. 뜰채 안에서 그 개는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고. 다행히 그간 보살펴온 또 다른 누군가가 당일 개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개는 며칠 구청에 머물며 새 주인을 기다리다, 동물보호소로 넘겨졌을 것이다.      


현재 개에게는 이름과 작은집이 생겼다


재미있는 일은 다음날 벌어졌다. 개의 신변을 결정하는 회의가 혁신파크에서 열렸다. 회의에는 10여명이 참석했다. 물론 개도 배석했다. 한 시간의 논의 끝에 개를 상상청에서 돌보기로 결정했다. 몇몇 사람이 돌아가며 산책을 시켜주고, 사료와 물을 챙겨주기로 했다. 개에게는 ‘혁신견’이라는 이름과 작은 집이 생겼다. 그리고 목줄에 묶여 사람들의 관리를 받는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 됐다.      


재미있는 일은 다음날 벌어졌다. 개의 신변을 결정하는 회의가 혁신파크에서 열렸다. 회의에는 10여명이 참석했다. 물론 개도 배석했다. 한 시간의 논의 끝에 상상청 입주사인 크리킨디센터 전환연구소에서 개를 돌보기로 했다. 개에게는 ‘혁신견’이라는 이름과 따뜻한 보금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목줄에 묶여 사람들의 관리를 받는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 됐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개와 공존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개는 반려동물 정식 등록절차를 마쳤고, 그간 앓던 지병을 치료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상상청에 개가 자리 잡게 된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개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안전과 자유 중 무엇을 선택했을까. 사람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고민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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