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선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7~8년 전 쯤일까. 사회적경제 전문지를 표방하는 언론사가 등장했다. 한곳 두곳 늘어나더니, 이제는 제법 유명세를 누리는 곳도 있다. 아쉽게도 태반은 독자나 시장 입장에서 존재 의미가 불문명한 언론사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2012년 미국 HBO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뉴스룸>. 이 드라마는 언론사와 언론인을 명확히 정의한다. 종군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뉴스 보도국 총괄 프로듀서로 복귀한 맥켄지 맥헤일은 새로운 뉴스팀을 꾸린다. 첫 미팅 자리, 그녀가 최우선으로 고른 주제는 무슨 이야기를 다룰지였다.
언론사들은 나름의 방향성을 갖고 있다. 각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회사소개’를 찾아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걔중에는 한번, 두번, 세번까지 읽어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소개문도 있다. 추상적이거나 두루뭉슬하다. 사회적경제 전문지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책임을 다하는 언론사” “모두가 행복할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같은 식이다.
반면 맥켄지는 팀원들에게 직관적인 규칙을 제시한다.
첫째, 이 정보가 투표할 때 도움이 되는 정보인가?
둘째, 이 방식이 가장 올바른 토론의 형태인가?
셋째, 이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 규칙들은 그들이 뉴스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어떤 이야기를 뉴스로 제작 할 지 말 지를 결정하는 기준인 셈이다. 명료한 기준을 정하는 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수 많은 착오를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다. 뉴스에 대한 뚜렷한 척도가 없다보니, 독자가 좋아할 이야기만 쫓게 된다. 혹은 광고주의 주문을 따르게 된다. 외신을 번역하거나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을 마냥 칭찬하는 기사들처럼 말이다.
사회적경제 전문지에서 날이 선 기사는 찾기 어렵다.
일단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고민부터 해보자. 착하고 예쁘거나, 있어 보이는 거시 담론보다는 “투자자의 구미를 당기게 할 사회적경제조직 발굴단” “합리적인 소비자에게 도움 될만한 사회적 경제지” 같이 좀 더 직관적이고 접근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