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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Sep 27. 2021

바다 아이

당신은 조개를 기억할 수 있나요?

바다에 떠있는 배 한 척.

그 배 안에는 낚시를 하느라 분주한 아이 하나.


아이는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것을

가리지 않고 족족 배에다 실었다.


낚시가 아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양,

낚싯대에 걸려 올라오는 물건이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인 양,

아이는 필사적으로 낚시를 했다.

바다에서 떠올린 물건이

어느새 아이의 키만큼 쌓였다.

하지만 아이는 멈출 줄 몰랐다.


'배가 육지에 닿으면 낚시는 끝난다.'

아이는 그전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배에 실어야 했다.

아이는 눈이 뒤집혀라 열심히 낚시질을 했다.

하지만 아이의 눈이 뒤집히기 전에

먼저 뒤집힌 것은 배였다.


묵직한 무언가 낚싯대에 걸려 올라오면서

아이의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는가 싶더니

그 육중한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배까지 뒤집어버렸다.

꼬르륵 물에 잠기면서도

아이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물건으로 손을 뻗었다.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이는 그것을 끌어안았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품을 수 있는 건 모두 품었다.

물론 그 무게 때문에 아이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아래로 아래로 잠기고 있었다.


'어차피 이것들이 없으면 내 삶은 끝이야.'


하는 순간,

아이의 손깍지는 맥없이 풀려버리고

작은 품에 품었던 물건들은 빠르게 흩어져 가고 말았다.

아이는 직감했다.

끝을.


'어차피 저것들이 없으면 끝이었을 삶이야.'


가만히, 가만히 아이는 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중에 삶을 떠올려보려 했다.

배와 바다, 긜고 바다에서 건져낸 물건들.

물건들..

물건들..?

이상하다!


아이는 낚싯대와 낚싯줄이 머릿속에 그려졌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낚싯줄 끝에 무엇이 걸려 올라왔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낚싯대를 뒤로 젖혔다가 저 멀리 바다를 향해 뻗는

무한히 반복했던 그 행동은 몸에 새겨져 있는데,

그래서 무엇을 건졌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 마지막에 낚았던 물건조차.

아이는 드디어 슬퍼졌다.

배가 뒤집힐 때도 몰랐던 슬픔이

제때를 알고 찾아온 것이다.


눈물이 흘렀다.

차가운 바닷속이었지만

뜨거운 눈물이어서 알 수 있었다.

한 줄기 눈물은 흐느낌이 되고

아이는 곧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는 자신이 건져 올린 것들 중

딱 한 가지 물건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입을 꾹 다문 조개


'그 안에 진주가 들어있었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열어볼 걸.

딱 한 순간만 낚시를 멈추고

그 조개를 열어볼 걸.'


끅끅 터져 나오는 울음에

아이는 꾹 닫고 있던 입과 코를 열어버렸다.


'바닷물이 나를 더 빠른 속도로 죽일 거야!'

라고 생각한 순간,

아이의 열린 코와 입으로

공기가 훅 하고 들어왔다.


찌르르한 눈을 뜨고 아이는 주변을 살폈다.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

아이는 둥둥 떠있었다.


쿨럭쿨럭, 몇 번의 기침 끝에

아이는 정신을 차렸다.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화로웠다.

아이는 어쩌면 배가 뒤집히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있단 걸 확인하려는 듯

억지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살았구나...'


비록 배를 잃고 모든 재산을 잃었지만

아이의 살아있음을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딱딱한 무언가가 아이의 얼굴에

툭 하고 닿았을 뿐이다.


그건 아이가 그토록 속을 궁금해했던 조개

아이는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조개를 쩍, 갈라보았다.


하지만 조개껍질 안에는

하얀 조갯살만 가득했다.

그래도 아이는 실망하지 않았다.


'앞으로 수많은 조개를 만나겠지.

그러다 진주를 발견하면 진짜 기쁠 거야.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걸로 된 거야.'


그리고 아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한번도 이 바다를 가지지 않은 적이 없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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