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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Sep 10. 2022

영문도 모른 채 괴로워하던 날들

나의 히스타민 증후군 해방기 #1

목에 닿는 바람이 간지럽고 따가웠다. 2017년 늦가을, 퇴근길이었다. 겨울에 가까운 가을이어도 그렇지, 바람이 따끔거릴 정도로 고통스러울 일인가 싶었다. 추위를 타는 체질도 아닌지라 그날 유난히 컨디션이 안 좋겠거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집에 가까워올수록 따가움은 더욱 심해졌고 목덜미뿐만 아니라 손목까지 고통이 느껴졌다. 작은 벌레들이 내 피부를 야금야금 맛보는 것 같은 자잘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괴로운 느낌이었다. 고통을 짓누르려 손목을 문지르다 우둘투둘한 이질적인 촉감에 깜짝 놀라 손목을 들여다봤다. 손목 여기저기가 모기에 물렸을 때처럼 핑크색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내 피부였지만 징그러워서 쳐다보고 있기가 역했다. 나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깥 바람으로부터 도망쳐 집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온 나는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이불 속으로 피신했다. '일시적인 현상일거야.'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아토피는 커녕 사춘기 때도 트러블 하나 없이 건강한 피부를 자랑하던 나 아닌가. 다행히 따뜻한 이불 아래에서 피부는 금방 제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것의 시작을 엿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두꺼운 이불보다 더 두텁게 가슴을 짓눌렀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날이 추워질수록 피부 트러블은 심해졌고 옷을 입고 벗을 때 살이 쓸리는 부위까지 시뻘겋게 부어 오르기 시작했다. 찬 바람을 쐬면 눈꺼풀과 코 안 쪽이 가려워 견딜 수 없었고 찬물에 손을 씻으면 무당벌레 같은 알러지가 손 전체를 뒤덮었다. 찬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면 두피가 가려워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벅벅 긁어대지 않을 수 없었다.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디디면 발가락이 땅땅하게 부풀어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한겨울에도 코트 하나로 날 정도로 추위에 강하던 나는 그해 겨울 온 몸을 꽁꽁 싸매고 잔뜩 움츠린 채 지냈다. 혹시라도 알러지가 돋을까 항상 긴장하며 다니다보니 조금만 온도가 낮아져도 몸 속 깊이 시린 기운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달리다 집에 오면 따뜻한 물로 피부를 진정시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이동할 때마다 한바탕 전신을 휩쓸고 가는 따가움 세례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괴로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하루 아침에 몸이 변해버린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욱 괴로웠다.


참으로 단순하게도 피부가 아픈 건 피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질병에 대해서 무식했기 때문이다. 피부에 좋다는 값비싼 수분 크림을 사서 발라보고 바디워시를 고급 오일 비누로도 바꿔보고, 피부에 부릴 수 있는 호사를 다 갖다바쳤다. 그러나 알러지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생경한 재료에 닿은 피부는 오히려 더 자주 트러블을 일으켰다. 헛돈을 썼다는 생각에 속상했지만 것보다 도무지 이런 상태로는 하루도 더 살 수 없을 것 같아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다 내가 겪은 증상들을 이리저리 검색해 뒤늦게 알아냈다. 내 몸에 콜린성두드러기와 한랭두드러기가 동시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차가운 곳에 따뜻한 곳으로,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몸이 정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과민 반응을 일으켜 알러지 증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이 주를 이뤘다. 뭣보다 나를 절망하게 만든 건 이 알러지는 '원인불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주로 땀이 잘 흘리지 않는, 말하자면 온도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체질의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병이라고 하는데 나는 소위 땀쟁이로 그런 체질에 해당하지 않아 더욱 막막해졌다. 그게 아니라면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데, 사실 그 시점의 나는 직장, 연애, 가족, 금전 모든 걸 따져봐도 그닥 스트레스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상했다. 꼭 마치 저주를 받아 하루 아침에 신세가 처량해진 애니메이션 속 악역이 된 심정이었다. 나는 허공에 대고 호소했다. 


'벌이라면 받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피부과에 갔다. 좀 뒤늦게서야 갔다. 병원을 잘 안 다녀버릇 하는 무식한 성격에, 알러지를 병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고집 같은 것도 있었던 탓이다. 그리고 나를 대하는 피부과 의사의 태도를 마주하고선 '아, 이게 진짜 내가 병원에 오고싶지 않았던 이유구나' 하며 개탄했다. 일단 대한민국엔 아픈 피부를 치료하는 피부과가 거의 없다. 못난 피부를 예쁘게 시술해주는 피부과는 많아도. 알러지 때문에 내원한 환자는 접수 카운터에서부터 간호사의 안타까운 표정을 마주해야 한다. 대기하는 시간 대비 내가 받을 수 있는 진료 서비스의 질이 얼마나 후진지 진작부터 아는 이의 표정인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나는 3, 40분을 기다려서 3분에 못 미치는 진료를 받았다. 의사에게 증상과 함께 한랭 두드러기나 콜린성 두드러기가 의심된다고 말하자, "아, 그렇다기 보다~" 로 시작하는 알아먹지도 못하겠는 의학 용어로 가득한 설명이 이어졌고 결론은, 원인도 딱히 알 수 없으며 치료를 하는 건 불가능하니 증상을 가라앉혀주는 약을 처방해주겠다는 거였다. 처음이었다. 항히스타민제의 존재를 알게된 건. 의사는 부작용으로 좀 졸릴 수도 있다는 말을 더했다. 그 말을 듣고 더럭 겁이 났지만 의사의 태도가 워낙 대수롭지 않아서 뭐라 말을 덧붙일 수가 없었다. 진료비는 삼천원 남짓. 별로 돈 안 되는 알러지 환자는 그렇게 항히스타민제 처방전과 함께 조속히 처리된 채 병원을 빠져나와 약국으로 향했다. 


반투명한 약봉지 안에 작은 알약 두 알이 들어있었다. 기다릴만큼 기다렸겠다, 나는 알약을 냅다 집어 삼켰다. 볼펜 지름만 한 하얀 알약 하나는 순식간에 나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찬 바람을 쐬어도 따갑지 않았고 가방끈 마찰에도 금방 부풀어오르던 팔뚝도 아무 이상 없었다. '이렇게 쉬울 일인가?' 너무 쉬우니까 너무 이상했다. 그간 고통을 꾹 참고 견뎌낸 날들이 너무 허무해서 간만에 주어진 피부의 편안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내게 평화란 늘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성취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조그마한 알약 하나가 내 몸 안에서 뭔 짓을 했길래 몸 전체를 감싼 거대한 겉 표면 전체를 쉬이 가라앉힐 수 있는 건지, 미지의 힘에 대한 막연함이 날 공포스럽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연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무탈함이 너무 달콤한 나머지, 공포심도 눈에 치이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확 줄어들었다. '그래 맞아, 피부는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나를 자극으로부터 막아주는 방패막이었지.' 이놈의 항히스타민제를 언제까지, 얼마나 먹어야할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당장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저나 왜이렇게 잠이 쏟아지는 거지? 입은 또 왜이렇게 쩍쩍 갈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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