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인구에서 인간으로 -1부- '선택' 출연 후기
고민 가득 다큐 출연 계기
아니, 주제가 저출생이라구요?
지난 2022년 초여름, 나의 브런치 동거 기록을 보신 EBS <다큐프라임> 작가님으로부터 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받았다. 저출생을 주제로 다큐를 기획 중인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중 비혼 동거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하셨다. '공개적인 곳에 동거 기록을 연재 중이긴 한데 공중파까지 나와서 동거한다는 사실을 밝히라고? 그런데 심지어 다큐의 큰 주제가 저출생이라고?!' 저출생의 원인으로 동거가 낙인 찍히는 꺼림칙한 장면이 바로 떠올랐다. 매우 사적이고 무척 복잡한 우리 두 사람의 선택을 이기적이라느니 무책임하다느니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매도질을 감당할 만큼 방송 출연을 굳이 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님께는 일단 생각을 더 해보겠다고 말하고 출연 확정을 보류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사는 건 아니니까
생각할수록 방송 출연이 썩 내키지 않았다. 결혼과 육아를 선택하지 않는 합리적인 근거 1번으로 방송에 나와 설혹 기존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설득시킨다 해도 절대적인 내 삶의 가치가 올라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도 어쩌다보니 긴가민가 하면서도 이렇게 살고있는거지 이런 형태의 삶을 100% 지지하고 타인에게 인정 받기 위해 살고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운이 좋아서 서로 취향에 맞는 집을 찾아 예쁘게 꾸미고 재밌게 살아가는거지, 둘의 노력만으로 이뤄낸 결실은 아니었다. 양가 부모님 모두 동거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줄 확률은 또 얼마나 희박한가? 그런 내가 과연 비혼 동거인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역시 방송 출연은 무리였다.
네... 출연할게요...
하지만 사전 인터뷰를 한다고 손해볼 건 없으니까! 그렇게 두 번의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통화를 마치니까 얼마나 떠들었는지 폰이 뜨끈뜨끈해져 있었다. 나 동거에 대해 할 말이 참 많구나! 그러니까 40여 편의 글까지 썼겠지? 피디님과 작가님이 집에 찾아오셔서 사전 인터뷰를 촬영하는 날까지도 출연 확정을 드리지 않았는데 카메라가 돌아가는 와중에도 나는 설쌤과 주거니받거니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어쩌면 남들에게 동거의 건강한 면에 대해서 알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알차고 행복하게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동거에 대해 새롭게 봐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던 거려나. 그렇게 조잘조잘 떠들다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납득시켜버렸다. 그래, 남들이 뭐라건 내가 사랑하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이잖아. 방송에 출연하자! 그리고 솔직히 피디님이 찍어주신 우리 두 사람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우리 생활을 남이 기록해주는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오겠어?
다큐에서 나눈 이야기, 못다한 이야기
이틀에 걸친 촬영 끝 나온 분량은 8분 가량. 사전 인터뷰까지 포함하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취지에 맞는 부분만 콤팩트하게 잘 편집해주셨다. 방송에 나온 내용과 (이미 했지만) 못다한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동거의 단점이 있나요?
동거의 단점은 아무래도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어렵다는 점. 여자에게 손해라던가, 문란할 것 같다던가, 불효라던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까 말을 꺼내기 전 조심부터 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남녀의 동거가 아직 하나의 생활 형태로 자리잡지 못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동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결국엔 법적으로 보호 받기 위해서 결혼은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보탠다. 동거 형태에 맞게 동거인을 보호해주는 법이 제정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는 아직 너무 낯선 솔루션이다.
같이 살면서 아이를 낳고 싶은가요?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 만큼 값진 경험은 없다고들 말한다. 아마 그럴 것 같다. 하지만 그 기쁨이 궁금하다고 해서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번복할 수가 없지 않은가. 타고난 육아 욕망도 없거니와 아직은 보장된 기쁨이 있는 취미 생활과 자기계발에 시간과 노력을 쏟고 싶다. 아직은 그렇다는 말이다! 언젠가 마음이 바뀌어 나의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서 이 글을 본다면… 오해 없길 바래.
결혼에 대한 계획은?
2023년 설 연휴 기간인 지금, 나는 반달집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아직은 새로운 가족을 더 알아가기보다 나만의 시간을 더 누리고 싶다. 이렇듯 동거의 가장 좋은 점은 반려자와의 정서적인 안정감을 누리는 동시에 내가 감당하지 못할 부분은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넓게 보면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특징 같기도 하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만 책임지는 소극적이지만 확실한 책임감 '소확책'으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결혼 생각은 정말 없는 것인지?
뭐야~ 이거 혹시 프러포즈였나?푸학학 (넝~~담) 이 질문보다 "이제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어보셨을 때 우리 둘 다 서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방송후 사람들의 왈가왈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우리의 인터뷰 클립이 올라왔고 우려하던 대로 다양한(?) 댓글들이 달렸다. 8분이 채 안되는 인터뷰 영상을 전부 시청하고 단 댓글인지 '혼전동거, 그렇게 이상한가요?'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만 보고 댓글을 단 건지 모르겠지만 상상도 못한 내용의 비난이 많아 깜짝 놀랐다. 사람들의 다채로운 비난을 함께 톺아보자!
1. 말장난 유형
2. 동거 이기주의
3. 동거 반복 & 반품 반대
4. 동거 기록 오픈 의무
5. 인터뷰와 비슷한 결의 의견들
일단 '혼전 동거' 라는 단어를 쓴 EBS 계정 관리자에게 '비혼 동거'라는 단어를 썼으면 오해가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지적을 하고싶다.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하면서 간보기를 하는 중이 아니라, 동거 자체를 도착 지점으로 삼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중이니까. 나의 철학과는 달라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책임감이 없다'는 말엔 발끈 화가 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남들이 다 하니까, 감당할 수 없는 약속까지 덜컥 이행하는 것보다 내가 준비될 때까지 결정을 보류하고 당장 감당할 수 있는 것까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게 훨씬 책임감 있는 행위 아닐까. 물론 나 자신을 직면함에 있어 더 자신감있는 행위라고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촬영 비하인드 컷들
다큐멘터리 촬영이라 있는 그대로 찍으면 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촬영이라는 게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드는 일이란 걸 제대로 체험했다. 카메라 앞에서 눈앞이 캄캄해져 말도 잘 안 나오고,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는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져 후회되고, 방송 후 댓글들 보니 억울함이 밀려오고~! 방송국 좋은 일만 해준 것 같아 속이 쓰라리지만 고생하신 스태프 분들 떠올리면 또 참을 만하다 ㅠㅠ 최근에 또 동거 관련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왔는데 단칼에 거절했다! 방송 출연은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 더 고려해보고 나가는 걸로~ 이 경험 덕분에 글쓰기가 더 좋아진 건 장점이다. 한 사람의 생의 일부분을 드러내고 들여다보는 데 글 만큼 정직한 수단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