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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Oct 31. 2022

반달집 동거 기록을 마치며

갈월동 반달집 동거 기록 #에필로그

치밀하게 계획해서 시작한 게 아니었던 남자친구와의 적산가옥에서 동거 생활. 인생은 하루 아침에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고 일상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로 넘쳐나게 됐습니다. 즐겁고 당황스럽고 감사하고 괴로운 와중에 마음 속으로 끝을 생각해왔습니다. 특별함이 보통의 일상이 되고 뜻밖의 결과도 필히 그렇게 되었어야 할 당연한 결론으로 여겨지게 되는 시간이 주는 선물이자 형벌과도 같은 마음의 상태를 아주 오래 전부터 예상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기만 했던 반달집의 군데군데 생활의 때가 묻었습니다. 복작복작 귀엽기만 하던 수납장과 부엌 선반들이 미어터질 것 같은 생필품 무더기로 종종 스트레스를 줍니다. 설거지는 왜이리 빨리 쌓이고 쓰레기통을 비워야 할 타이밍은 어쩜 이리 자주 찾아올까요? 조금 더 큰 냉장고가 있었으면, 조금 더 넓은 침대가 있었으면, 여건이 더 좋은 집을 찾을 수 있다면...  


너무 특별한 반달집에서의 시간이지만 2인 가정이 살아가는 16평 남짓의 셋방이라는 물질적 존재 가치가 제 머릿속에 점점 더 크게 자리잡아가는 지금. 딱 이 시점에 이르기 전까지 많은 글을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와 설쌤의 관계가 단단해지기까지 반달집의 역할을 먼 훗날 이것이도 되었고 저것이도 되었다는 식으로 갈아치워도 될 작은 변수로 남겨두긴 싫었습니다. 다행히 그 특별함이 가시기 전, 골든타임을 잘 지켜낸 것 같습니다. 그것만으로 저에게 동거 기록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설쌤과 외출할 때마다 찍는 사진이 있습니다. 마당으로 이어지는 계단 끝 하얀 시멘트 턱 위에서 제가 설쌤을 향해 돌아보면 계단 위의 설쌤이 셔터를 누릅니다. 그냥 한번 찍어본 사진이 어느새 우리 둘만의 외출 루틴이 됐습니다. 그간 시멘트 턱 위에서 찍은 사진들을 전부 모아놓고 설쌤과 함께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모아놓고 보니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따분할 만큼 익숙한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낸 생경한 전체의 풍경. 의심 많은 내가 성큼 앞서 걸을 수 있고, 자유분방한 당신이 꾸준히 바라봐주는 한 지점이 있다는 것. 관계는 우리가 만들어낸 가장 멋진 작품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을 붓고 시간을 들여 지켜내고싶은 인생의 걸작 하나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글을 처음 쓸 때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좋아하는 걸 좇으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좋은 사람과 어울리다보면 좋은 일을 도모하게 된다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믿음은 더 굳건해졌습니다. 글 덕분에 소중한 인연을 정말 많이 얻게 됐거든요. 하나하나 다시 톺아보아도 신기하지 않고 반갑지 않은 인연이 하나 없습니다. 덕분에 여러모로 감사한 마음으로 벅차오릅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굳이 글로 쓰고 이야기로 만드는 행위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내 스스로 정의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세상에 대한 가장 단단한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모아놓고 보니 반달집은 저에게 있어 언제든 돌아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당신과 지금 여기에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곳. 우리가 사는 우리집이었습니다. 기꺼이 반달집으로의 초대에 응해주신 독자분들 마음에는 반달집이 어떻게 남아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합니다. 


저의 일상 기록은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갈월동 반달집이라는 타이틀은 이제 끝내려고 합니다. 일상의 당연한 전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또 다른 타이틀을 찾아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살면서 꼭 마무리 짓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 주머니들이 있거든요. 그 기록 여행에도 함께 해주길 바라며, 지금까지 반달집 동거 기록과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반달집 동거 기록은 <갈월동 반달집 비혼 동거 기록> 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북으로 엮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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