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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May 24. 2023

당근하러 가는 길

 (그런데 왜 하필 당근일까?)

 설거지 비누를 살 때가 됐구나 싶었는데 당근! 하는 알람이 들다.

 내가 설정한 알림 키워드 중에 '친환경'이 있는데 마침 친환경 설거지 비누를 파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의 아파트까지 가지러 가기로 약속했다.


 2천원에 친환경 설거지 비누를 파는 판매자가 있는 당근의 세계가 아름다웠다.





 집을 나서니 날씨가 덥고 해가 뜨거워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기로 했다.

 이제는 해가 드는 방향의 자리를 피해서 앉게 되는 계절이다.


 나는 남의 동네 구경을 좋아한다. 같은 도시의 하늘이고 공기지만 어쩐지 우리 동네와 다른 느낌이 있다.

 요즘은 나무나 꽃, 하늘 이런 자연이 좋아서 신축 아파트의 위용보다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핀 들꽃 무리는 밟고 지나갈 수가 없다. 오히려 카메라를 들이댄다.

 얘들은 왜 힘겹게 길 한복판에 피었을까.

 그래도 멀찍이서 얘들을 보고 길을 피해 가는 자전거와 유모차 바퀴를 상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너희를 아무 생각 없이 밟고 가는 발도 있을까

 

 

 정신을 다른 데 팔았는지 108동과 109동을 잘못 보고 두 번 걸음 하여 설거지 비누를 얻었다.

 판매자는 아파트 현관문에 설거지 비누가 든 쇼핑백을 걸어 놓고 출근했다. 나는 쇼핑백은 다시 접어 문 앞에 놔두고 설거지 비누만 에코백에 넣었다.

 설거지 비누는 종이케이스 하나로만 최소 포장이 된 점도 마음에 든다. 상자를 실링한 스티커도 없고 비누를 담은 비닐도 없다.

 

 이렇게 쓰레기가 적은 상품을 사면 기분이 좋다.

 

단호박 맛.. 일까



 



 그런데 너무 덥다. 아무래도 시원한 것을 마시며 한번 쉬어야겠다.


 2천원짜리를 당근하러 버스를 타고 와서 3500원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상황이 재미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인근 오피스에서 나온 사람들로 카페가 활기차다. 회사에 다닐 때는 점심시간 한 시간이 어찌나 짧던지, 장범준 노래처럼 '그냥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기만이라도' 하면 좋겠다 싶었었다.  


 이제는 옆동네에 당근하러 왔다가 더워서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고 오후에도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없는 사람으로 앉아 그들을 보고 있다.

 여전히 일회용 컵이나 빨대, 슬리브가 엄청나게 쏟아지지만 지구 환경만큼이나 사람들의 편의도 중요하니 오염을 덜 만드는 제품 생산이 절실하지 않나 싶다. 소비자 개개인에게만 절제와 실천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 마신 유리컵을 반납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친한 언니한테서 커피 한 잔 할까, 연락이 와 있다.

 아들을 얼마 전에 군대에 보내고 온 마음이 허전할 언니를 만나러 방향을 바꾼다.


 딸만 있어서 군대에 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내가, 오늘은 아들 엄마에게 감사와 위로를 당근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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