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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un 16. 2023

시어머니의 장독대 탐험

항아리의 온도

 

 붉은 벽돌로 튼튼하게 지은 2층짜리 단독주택인 시부모님의 집은 내가 결혼한 26년 전과 똑같다.

 연휴에 시댁에 갔다가 머니가 만든 된장을 받아려고 2층 테라스에 함께 올라갔다. 새삼스럽게 반질반질한 항아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태껏 어머니의 된장을 얻어먹었지만 시어머니의 장독대가 눈에 든 적은 없었다.

 저 크고 작은 예쁜 항아리들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어머니, 혹시 된장 많이 있어요? 


 우리 집 된장이 딱 떨어졌는데 그냥 달라고 했다가 혹시 어머니도 된장이 충분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내 물음에 어머니가 일어서시며 장독대로 가자고 하셨다.


 -이게 요즘 먹는 된장, 6,7년 묵은 거야.  


 -이건 올해 담은 거, 이건 3년쯤 된 거. 색깔이 다르지?


 어머니가 항아리 뚜껑을 하나씩 열고 보여주셨다. 누군가 우리를 본다면 한국인의 밥상 내지 한국 기행의 한 장면 같았을 것이다.

 항아리마다 차곡차곡 들어앉은 된장은 저마다 다른 색감과 질감이었다. 눈비를 오롯이 맞는 항아리 안에서 몇 년씩 묵어도 상하기는커녕 맛이 살아나는 된장이 신기했다.

 

 -이렇게 된장이 많으니까 물어보지 말고 갖다 먹어. 그러라고 보여주는 거야.


각각 올해, 3년 전, 6년 전에 만든 된장




  

 나는 어머니가 언제 된장을 담으시는지 모르고 도와드린 적도 없으면서 갖다만 먹는 며느리다.

 찾아보니 된장은 1월에 담는다고 한다.

 어찌 보면 내가 노동을 같이 하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 된장을 더 맛있게 얻어먹는지도 모른다. 하기 싫고 힘든 된장 담그기에 강제 동원되면 어머니의 된장 항아리가 지금처럼 예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장독대가 있는 2층 테라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초여름의 무성한 마당 끝에서  년 전에 아주버님과 남편이 함께 뜯어냈던 담쟁이가 또 덩굴을 이뤄 자라고 있다.



 어머니의 두 아들이 쓰던 방이 있고 이제는 아무도 머무르지 않는 2층은 전부 다 어머니의 팬트리가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식재료 말리기도 좋아하신다. 제철에 나는 나물을 오래 두고 먹으려고 말리는 건 자주 봤는데 사과는 왜 말리시는지 모르겠다.

 

 이것들을 보니 안 먹고 버려둔 사과에 검은 멍이 들고 푸석해졌다고 슬쩍 버린 나의 떠올라 뜨끔하다.


사과는 말려서 뭐에 쓰실까?



  20대인 우리 딸들은 된장찌개나 나물무침 같은 음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할머니가 만든 된장찌개는 잘 안 먹으면서 가끔 어느 고깃집 후식 된장찌개가 맛있다는 소리를 한다.

 나도 딸들에게 집된장을 담가줄 능력이 없으니 피차 잘 되었다.

 

 시아버님은 아침 운동을 가시고 시어머니와 남편이 화분을 사러 간 사이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느긋하게 돌아보니 은 지 40년 넘다는 집이 정겹게 느껴진다.

 두어 해만 더 지나면 이 집 막내며느리가 된 세월이 내가 이 집을 모르고 자라온 세월보다 길어진다.

 

 그러니 그럴 만도 하다.


몇 살이나 됐니, 너는





 어머니 댁 마당에서 예쁜 식물 두 개를 얻어왔다. 밤에 향기가 나서 이름이 '야래향'이라는 화초와 꼭 말미잘 같이 생긴 '은엽아지랑이'다. 아지랑이라는 이름과 걸맞은 야들야들한 촉감이 신기하다.


 야래향은 화분을 새로 사서 심어 왔고 은엽아지랑이는 토분째 들고 왔는데 토분에 금이 가 있어서 테이프로 붙이고 집에 있는 종이 완충지로 감싸 주었다. 예쁜 실을 둘러 모양도 냈다.


낯선 집에 와서 서로 기대고 있는 은엽아지랑이와 야래향

  

 

 어린 시절 우리 집 대문 옆에도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은 장독대가 있었다.

 그 위에서 항아리를 닦던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장독대는 집 전체에서 제법 큰 면적을 차지하는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은 당연히 관심이 없었다. 숨바꼭질을 할 때 커다란 항아리 사이에 숨기 좋아서 올라가 본 게 다이다.


 그때의 항아리 안에 소복하게 들어 있었을 된장, 고추장, 소금 같은 것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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