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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May 02. 2023

5월에 보는 4월 모의고사

없던 병이 막 생기는 고3 맘과 수험생 맘들에게

 2024 수능대비 4월 모의고사를 5월10일에 본다는 인터넷 뉴스를 봤다. 항상 4월 초순에 보던 모의고사를 5월에 본다니 무슨 말인가 싶어 기사를 읽어보았다.

 

 '수미잡'이란 입시계 은어가 있다. 수능 아닌 모든 모의고사는 잡다한 것들이라 소용없다는 의미이다. 수능 전 모의고사들을 잘 보는 것은 오히려 수능을 망치는 독이 되기도 한다. 4월 모의고사는 시험 범위도 한정적이고 수능 출제처인 교육과정평가원이 아닌 교육청에서 출제하는 시험이라 기나긴 수능 레이스에서 그 역할은 크지 않다.


 그러나 머리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 행동은 그렇지 못하기 마련이다. 아이가 고3이 되자마자 정신도 차리기 전에 이미 3월 모의고사를 보았다. 4월 모의고사는 그래도 비교군인 3월 모의고사보다는 잘 봐야 한다는 생각이 아이나 엄마에게 똑같이 든다.


 



 아이가 고3이 되면 지난 11년 간의 학부모 경력이 가볍게 무시되면서 다시 초보운전 딱지가 붙는 기분이 든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고3 자녀를 케어해서 지 나름대로 열심히 모아 온 아이템들을 잘 쓸어 담꾸려 대학교 원서를 쓴다는 일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때로는 내가 고3이 되는 게 낫겠다 할 것이다.  

 

 고3 엄마  여기저기자잘하게 아프기도 하다. 나는 힘을 더 많이 쓰는 오른팔은 멀쩡한데 왼팔이 쿡쿡 쑤시고 저려서 초음파 검사까지 하러 갔다. 의사 선생님도 원인을 모르는 눈치였지만 진통제를 처방해 줘서 먹었다.

 다음은 구내염의 습격이었다. 많게는 한 번에 일곱 개의 혓바늘과 구내염이 생긴 적도 있다. 입병 때문에 주사를 맞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먹은 것도 없이 소화불량이 되고 장염이 오는 건 다반사였다.

 산전수전 겪어서 이제 반야매의사가 됐다는 동네 언니들이 '고3엄마병'이라고 진단했다.

 당연히 그 해 겨울 수능이 끝나고 아이가 대학에 합격하니 모든 병이 씻은 듯 나았다.


 시험 볼 애들만 여기저기 아픈 게 아니다.


 



 수험생 엄마는 느티나무처럼 사계절을 버텨야 한다.

 수험생 본인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때로는 조삼모사의 야비한 협상도 필요하고 오십보백보라며 흔들리지 않는 심리전도 벌여야 한다.

 밤 열 시면 학원가를 둘러싸고 아이를 기다리는 자동차의 운전석에는 대부분 엄마들이 앉아 있다.

 아이를 케어하면서 입시 소식도 틈틈이 팔로우한다. 학교, 학과, 전형별로 입시 요강은 왜 이리 제각각인지, 뭐가 우리 아이에게 유리할까를 궁리한다. 때로는 유명 입시 컨설턴트들이나 진학 담당 교사들이 제시하는 대안들보다 내 자식 하나를 위해 집중해서 찾은 엄마의 전략이 적중하기도 한다.   


 '우리 애는 내가 아무 신경도 안 썼는데 대학에 잘만 갔다'라는 사람도 있다.

 일단은 축하드린다.

 그러나 그 애가 내 애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학원 라이딩에 간식 준비에 수험생 기분 맞추기에 입시 정보 수집까지 무척이나 바쁘게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절도 좋았었다고 하는 걸 보니 내 성향과 맞았었나 보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무조건 위로와 칭찬부터 해 주자.

 그다음에 과목별 분석을 함께 하고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격려로 마무리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모진 말을 하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위로와 칭찬을 먼저 하지 못 하고 분석과 격려를 열심히 했던 엄마였다.

 다시 고3 맘이 된다면,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 시험을 보느라 힘들었을 아이를 순수하게 위로하고 너는 수험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줄 것이다. 성적 분석을 좀 나중에 한다고 이미 받은 성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 후회스럽다.


 돌아보면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희비가 교차하고 승패가 바뀌는 사건의 연속이다.

 조카가 우리 애보다 빨리 걸어서 비교당하고, 초등 때는 받아쓰기 백 점을 못 받아서 속상하고, 중2병이 안 걸려 줘서 고맙다가도, 모의고사 성적이 기대만큼 안 나오면 절망하는 것이다.

 친구 딸이 우리 애보다 좋은 대학을 가서 질투가 났다가, 몇 년 후 우리 애가 더 취업을 잘해서 뿌듯해지는 게 인생이다.

 이러다간 이웃집 사위와 우리 집 사위가 비교되고 친구네 손주와 내 손주가 경쟁을 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빈 살만 왕세자조차 분명히 어떤 점에서는 남과 겨루며 괴로워할 것이다.   

            

 수능과 수시, 정시 입시의 내비게이션을 시작한 모든 수험생 엄마들이 올 한 해 동안 소중한 경험들을 기꺼이 해 내기를 응원한다.

 

 너무 떨지 마라. 고3 엄마 시절조차도 지나고 나면 그리워진다.  

 

보살님 같기도 하고 성모마리아 같기도 한,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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