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는 마음

지구의 날과 등화관제

by 이명선

매년 4월 '지구의 날'에는 저녁 8시부터 10분 동안 일제히 전등을 끄자는 소등 행사를 한다.

평소의 전기절약도 중요하겠지만 일 년에 한 번 하는 단체행동에 동참하는 것도 뜻 있다.

그러나 8시는 저녁 먹고 치우는 시간이다 보니 번번이 지나고 나서 앗차 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알람을 맞춰 놓았다.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 하자며 늘어놨는데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맞다, 오늘 지구의 날이라 10분간 집안 불 다 꺼야 돼!


후다닥 불을 끄고 오니 남편이 맥주잔 위에 휴대폰 손전등을 켜서 엎어놨다.

나도 어둠 속이지만 맥주를 계속 마시고 싶어 조그만 전기랜턴을 켜 보았다.


-지구의 날이니 소등하자는 것도 난 몰랐네

-예전에도 교육청 공문이 오곤 했으니 학교 다니는 애들 있는 집은 알 걸?

-몇 집이나 불 껐나 볼까?

-이렇게 10분만 불을 꺼도 환경 보호에 큰 효과가 있대.


여린 불빛에 의지해 맥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들이다.


집에 있는데 불을 다 끄니 이상함




-등화관제 하던 생각나네.


남편의 말에 나도 옛날 생각이 났다.

'등화관제'가 금시초문인 세대를 위해 덧붙이자면, 전쟁 중 야간에 적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도시나 지역 전체의 조명을 강제로 끄는 것을 말한다.

어릴 적에 민방위 훈련과 함께 자주 했었다. 불을 다 끄고 깜깜한데 온 가족이 마루에 모여 시시덕거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방범대원들이 불빛 새 나오는 집이 있나 보느라 순찰을 도는 인기척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함께 하는 술래잡기 같아서 두근두근했다.


좀 더 컸을 때는 더 이상 마루에 모이지 않고 각자의 방에서 등화관제를 했는데 숙제나 시험공부라도 하는 중에 불을 빨리 끄라 하면 짜증이 났다.


한 번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살짝 스탠드를 켰었는데 방범대원이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불 끄세요! 불!


사방이 아주 깜깜하면 내 방의 솜이불 속 작은 불빛도 밖에서 엿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는데 요즘은 귀신이 없는 게 아니고 밤에도 너무 밝아서 귀신이 안 보이는 거란다. 귀신은 온통 빛으로 만들어져서 주변이 깜깜해야 보이는 거라나.

귀신이 보인다는 건 어느 쪽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 나쁜 일이니 밤이 밝아진 것이 무척 다행이지만 밤낮으로 이 세상에 빛이 너무 많아서 지구가 힘겹다는 것은 불행이다.


혼자 있어도 온 집안 전등과 티브이까지 켜 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은 불을 참 잘 끄고 다니신다. 평생의 절약 습관이 배어서 그러신 듯하다.


형광등을 자주 껐다 켰다 하면 전기요금이 더 많이 나온다는 말도 옛날에나 맞지 요즘 흔한 삼파장 전구나 엘이디 전구는 안 쓸 때 끄고 쓸 때마다 켜면 절약이 된다니 우리도 전등을 쓸 때만 켜기로 하자.






지구의 날에 불을 끄는 마음과 등화관제로 불을 껐던 마음은 같지 않만 결국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라는 마지막 목적으로 보면 같다.


내년 지구의 날에도 주변의 불을 꺼서 지구를 더 환히 밝혀주고 싶다.



KakaoTalk_20230428_164100032.jpg 이웃 동네 카페의 램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잠이 오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