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선 Apr 21. 2023

잠이 오질 않네요

오늘은 잘 자게 해 주세요

 나는 원래 잠이 많은 사람이다.

 두 살 터울 딸들을 키울 때 시어머니가, 애들 잘 때 이것저것 치우고, 라고 하셨을 때 곧바로 말씀드렸다.


 -아우, 애들 잘 때 저도 자야죠. 그런 기회가 어딨다고.


 늙으니 아침잠이 없어져서 새벽부터 집안일을 한다는 친구들은 나에게 넌 아직 젊다, 잠을 그렇게 잘 자는 걸 보니, 라고 했었다.

 

 그랬던 내가.


 



 요 며칠 새벽 두세 시쯤 잠이 스르르 깨는데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남편과 둘이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면 아홉 시도 안 되어 연거푸 하품이 난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숙면을 돕기 위해 천생 올빼미형인 나도 평일엔 열 시 반쯤 눕기로 약속했는데, 그때 잠을 자면 새벽 두 시나 세 시에 깬다.

 남편의 숨소리와 노견의 숨소리를 집중해 듣고 있자면 정신이 점점 말짱해진다.

 잠이 더 안 오면 차라리 일어나 무언가를 할까도 싶지만 칸칸이 붙어사는 아파트 이웃들도 곤히 자는 한밤중이고 내가 아무리 살살 부스럭거려도 우리 개는 참견하려고 일어날 테고 그러다 보면 다섯 시 반에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의 단잠을 깰까 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 자리에 누워서 어둠 속에 눈만 깜빡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소리 없이 온 세상과 시간을 날아다닐 수 있으니 머릿속으로 옛날 일, 어제 일, 이번 주말의 계획 등을 랜덤으로 떠올리고 되새기며 잠을 청한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혼잣말을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아이쿠, 갱년기시네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꾸 옛날이야기를 하게 되는 걸까, 매일 밤 잘 못 자고 옛날 일만 뒤적거리고 있어서?

 

 딸들이 초등학교 때의 장면들이 떠올랐다가 더 과거로 가서 내가 학교 다닐 때 일들, 연애할 때의 단상들이 마구잡이로 믹스매치한다.

 그리고 엄마 생각도 많이 난다. 엄마는 하나 있는 딸이 결혼하던 날 얼마나 서운했을까 이제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저, 귀찮은 결혼식을 빨리 끝내고 신혼여행을 떠날 생각에 엄마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나이 가까이 차곡차곡 올라가는 딸을 가진 지금에서야, 젊었던 엄마의 심정이 더듬어져 무척 쓸쓸해지는 밤도 있다.


 

저녁이 오는 하늘





 불면의 밤을 이겨낸 아침에는 남편을 배웅하고 바로 꿀잠에 든다.

 그렇게 보충 잠을 한껏 자고 난 후에는 이미 거실로 쏟아져 쌓인 햇빛과 함께 느지막이 시작한 일상이 분주하게 흘러간다.

  

 나처럼 불면의 밤을 보낼 나의 갱년기 동지들이나 걱정거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 오늘밤은 잘 자자고, 그리고 불면의 밤을 지나치게 걱정하지는 말자고 말해주고 싶다.

 

 어린아이처럼 밤새 잘 자는 사람들보다 각자만의 이유로 제대로 잠 못 이루는 어른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늘 밤은 숙면을 기대하며 와인 한 잔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쁜 나이 스물다섯 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