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선 Jun 29. 2023

우리 개 열네 살 생일날

개 나이로는 벌쓰데이 그랜드파

 이번에 새로 적용되는 만 나이 법에 따라 우리 개는 올해 열네 살 생일을 맞았다. 

 토요일이 우리 집 반려견의 생일이라고 공지했더니 두 누나가 려왔다. 큰누나는 평소 우리 개가 쓰는 거의 모든 지출을 담당한다. 결석 용해 처방사료부터 각종 영양제까지 요즘 말로 '지갑으로 키우는 내 새끼'를 가진 집사이다. 

 아직 학생이라  안 드는 방식으로 개를 사랑하는 작은누나가 삶은 고구마로 케이크를 만들었다. 당근 토핑에 개껌을 잘라 둘러붙여 모양을 내고, 개 얼굴, 뼈 모양으로 치즈를 오려서 디테일을 살렸다. 그러더니 치즈는 사람용이라 먹으면 안 된다며 사진만 찍고 바로 뗀다고 난리다.


 아빠가 맥주 한 잔 하면서 가끔 슬라이스 치즈도 나눠먹는다는 걸 모르니 다행이다.


이거 오늘 뭐냐?는 눈빛





 우리 개는 방광과 신장에 조그만 결석들이 있어 처방 사료를 먹은 지 두 달이 된다. 지난 검진에서 결석 사료 처방을 받아서 6개월간 급여하고 다시 체크하기로 했다.

 

 늘 가는 동네 동물병원에서 결석이나 결절들이 보인다며 전공의가 있는 병원에 가서 자세히 보기를 추천하다.

 영상의학과가 있는 병원에 예약을 하고 혈압측정,  혈액검사와 X레이검사, 초음파검사 등을 했다.

 큰 병원은 검사 중에는 보호자가 같이 있지 못한다며 개만 뺏어 안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겁쟁이 노견이 혼자서 얼마나 달달 떨까 걱정했는데 외외로 간호사 누나의 팔에 편하게 안겨 나왔다.

 다행히 큰 병은 없고 자연스러운 노화 증상만 있어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고 한다.

 수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지금까지 해 주신 것처럼만 케어해 주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들어 만족스러웠다.

 

 1년에 한 번 노령견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2,30만 원에 달하는 검사비가 든다. 혹시라도 영수증을 받은 엄마가 실눈을 하고 개를 쳐다볼까 봐 염려스러운지 큰딸이 늘 먼저 결제한다.


 원래부터 너무 잘 먹는 애라 어지는 소화 식탐을 못 다. 사람처럼 늙으면서 이도 한두 개씩 빠지는데 사료를 너무 급히 먹고 목이 막혀 켁켁거리는 일도 더 잦아졌다. 남편은 천연 소화제라며 정성껏 무를 다져 먹이고 배맛사지를 해 준다.

 하루 한 번은 짧은 거리의 산책을 하고 야외배변을 하는데 요즘은 낮에 뜨거워서 저녁시간에 나간다.

 



 개의 겨울 방석과 겨울 집을 접어두면서 '올겨울에 우리가 이걸 다시 쓰려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1년 새 등부터 엉덩이까지의 털이 빠지고 검버섯도 생겨서 우둘두둘한 피부가 보이는데 꼭 코끼리등 같다. 지난봄에는 그래도 30분 이상 산책을 했는데 요즘은 길어야 10분, 바람만 슬쩍 쐬면 바로 집으로 가자고 이끈다.

  

 노견은 하루종일 자는 시간이 많다. 내가 같이 있어도 저는 저대로 그냥 다. 깨어있을 때는 간식을 달라거나 자기를 좀 만져달라는 소소한 요구를 한다.

 아직은 놀자고 공을 물고 오는데 가까이에 던져줘도 두 번 이상 물어오지 못하고 스스로 놀이를 그만둔다.

 잘 때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어둑어둑한 게 분명하다.

 몇 개월짜리 강아지로 우리 집에 온 개가 나보다 먼저 늙어간다.  

 

 소형견은 열일곱, 열여덟까지 살기도 한단다.

 몇 살까지 사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접어 둔 겨울용품을 올겨울에 다시 꺼낸다면 좋겠고 지금 쓰는 여름용품을 내년 여름, 후년 여름에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 축하해, 할아버지 개!


자고 자고 또 잔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개가 왜 이렇게 짖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