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우리 노령견에게 뜻밖에 심장판막증 진단이 떨어졌다. 최근 몇 년은 일 년에 두 번 노령견 검진을 했고 초고령이 된 올해부터는 3개월마다 검진을 받던 터였다. 한 달 전 검진에서도 심장 청진을 한 수의사선생님이 '잡음은 좀 들리는데 괜찮다'라고 했었다.
심장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에 '잡음'이란 게 뭔지, 심장병이 어떻게 왜 발병하고 어떤 증상이 있는지 몰랐다.
예전에도 산책 직전이나 간식 앞에서 신나게 뛰다가 컥컥거리는 소리를 냈는데 병원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기관지 협착이 와서 그렇다고 했다. 살이 찌고 흥분하면 심해지니 먹을 것을 줄이고 가급적 흥분시키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얘는 기관지 협착이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랬는데 불과 한 달 새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며칠 전부터 숨을 좀 빨리 쉬고 기운이 없어 보였는데 노화는 서서히가 아니고 계단식으로 온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했다. 개들의 시간은 사람의 몇 배 속도로 지나니까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진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잘 먹고 잘 자고 산책도 잘 다녔으니까 다른 염려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개는 거실에 있는 제 집에서 혼자 자기 때문에 설령 밤사이 끙끙 앓았다 해도 내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고 있는 개의 호흡이 가쁘면서 힘겨워한다는 것을 눈치챈 작은딸이 새벽에 일어나 동영상을 찍었다고 보여줬다. 우리는 바로 병원에 동영상을 보냈고 그날로 입원을 했다.
오롯이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입원 둘째 날에는 큰딸과 함께 하루 3회 면회 시간에 맞춰 세 번 찾아갔다. 그때마다 우리 개는 자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 반기는 얼굴을 기대했지만 그래도 호흡이 안정되고 잘 자는 모습에 안심했다.
개는 본능과 숙명 때문에 언제나 쪽잠을 잔다. 세상모르고 늘어져 자다가도 조그만 소리에도 반응을 하고 깬다. 얄밉게도,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자는 척 눈을 뜨지 않으면서 과자 봉지를 바스락 하면 벌떡 일어나기도 한다.
할아버지 개야, 병원 산소방에서라도 편하게 푹 자니 다행이다.
그래도 내일은 꼭 퇴원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왔다.
가져다준 최애 방석에서 최애 고기인형을 안고 잠든 노견
2박 3일간의 입원 후에 반려견을 집에 데리고 올 수 있었다.
퇴원에 맞춰 산소발생기를 사고 반려동물의 심박 수와 호흡 수를 관리하는 어플을 깔고 개집 앞에다 홈캠을 달아 놓았다. 호흡 수는 개가 잘 때 체크하는데 1분당 20회 대가 최적이고 30회 대는 주의 단계다. 이상 징후가 담긴 동영상을 찍었을 때는 1분당 호흡이 45회 이상이었으니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딸들이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이었을 때부터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함께 한 가족인 반려견의 건강 문제를 안은 우리는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번 폐수종이 왔으니 제2, 제3의 응급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미 열다섯 고령인 우리 개와 언제 이별의 순간을 맞닥뜨릴지 모른다. 그때가 언제이든 간에 해 줄 수 있는 것을 해 주고 많이 사랑해 주자.
퇴원 후 일주일은 새로 받은 심장약과 항생제를 먹이면서 예후를 보는 기간이다.
일주일 간 나는 운동 클럽과 건강관리 센터 출석을 일시 정지하고 이번 주에 잡힌 약속 두 개를 취소했다. 우리 노견에게 가장 중요한 일주일 동안 곁에 있으면서 제시간에 약을 먹이는 업무는 가족 중 나만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서 기쁘다.
앞으로 우리 반려견에게는 매월 정기적인 의료비 지출이 발생할 것이다.
지금까지 쭉 반려견의 병원비는 큰딸이 전담했다. 엄마아빠는 강아지와 함께 살고 돌보며 기타 비용을 지불하고 있고 동생은 아직 학생이니 병원비만큼은 본인이 내겠다고 고집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카드를 내면서 큰딸은, '내가 이러려고 돈을 버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견생 첫 산소방 입원과 각종 처치와 진단에 필요한 검사 비용은 상당했다.
직장에 다니는 자녀들이 반려견 통장에 돈을 모은다는 지인이 떠올랐다. 엄마가 가족의 반려견을 돌보는 업무를 고스란히 맡는 대신 소득이 있고 바쁜 성인 자녀들은 회비를 냄으로써 반려동물 부양의 의무를 공유하고 책임감과 권리까지 느끼게 된다고 했다.
나는 노견의 건강관리 통장을 만들어서 아직 첫 월급을 받기 전인 작은딸 포함 우리 집 근로소득자 세 명에게 안내 문자를 보냈다.
- 매월 25일, 10만 원씩 넣어 주세요
한 사람은 급여일이 21일이고 두 사람은 25일이라 25일로 정했다. 한 달에 30만 원이면 한 달 치 약값과 기본 진료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월 30만 원은 중고등생의 단과학원 한 과목 수강료쯤 된다. 완치의 기약이 없는 병원비라 생각하면 어쩐지 슬프니까, 고구마 훔쳐 먹는 잔머리를 사람으로 태어나 공부에 썼다면 서울대에 갔음직한 우리 개를 어디 학원에라도 등록시켰다 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