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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ul 10. 2023

오늘 개가 왜 이렇게 짖을까

 개는 귀신을 본다는데-노령견의 잦은 짖음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열네 살 우리 개는 작은누나 없는 작은누나 방 침대 아래 숨어서 거실 쪽을 향해 짖고 있다.

 왈. 왈. 왈. 왈 스타카토로 2초에 한 번씩 짖는다.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이쪽으로 발사된다.  저런 지 15분은 족히 된 거 같다.


 도무지 왜 짖기 시작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개는 제 집 앞 방바닥에서 늘어지게 잘 자고 일어났다. 내가 소설책 반 권을 읽을 동안 내내 잤으니 50분쯤은 잤나 보다.

 아일랜드 식탁 아래의 과자 바구니를 정리하던 나에게 다가와서 뭔가 줄 게 있냐고 관심을 보였다. 바구니 안에는 개에게 줄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애교를 무시하고 티백과 과자, 커피 등을 정리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빌려온 옛날 영화 씨디를 노트북에 연결해서 보느라 꺼냈던 씨디플레이어를 비닐에 넣어 고무줄로 감았다.

 원래 씨디플레이어는 비닐에 담겨 있지 않았는데 마침 바구니를 정리하다가 깨끗하고 튼튼한 과자 비닐이 생겼고 usb 연결선과 함께 두면 편리할 것 같아 씨디플레이어와 연결선을 봉지에 같이 넣고 고무줄을 찾아와 봉했다.   

 그랬다가 사진으로 남겨 두려고 다시 꺼내 씨디타이틀과 나란히 놓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씨디플레이어를 비닐에 다시 집어넣고 거실장 서랍을 열고 보관했다.


그 순간 개가 짖기 시작했다.


 


 

1. 간식을 주지 않아서 화가 났다

 

 개는 후각이 뛰어나니까 간식 바구니를 들썩일 때 맛있는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 바구니 옆이 바로 개 간식 서랍이라 개는 내가 아일랜드 식탁 근처로만 가도 늘 기대한다.

 정리 중인 바구니 안에 줄 만한 게 없다 해도 손을 조금만 뻗어 서랍을 열면 간식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바쁜 척만 했다.

 그래서 나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며 설마, 설마 하던 개가 화가 나서 짖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작은누나 방 침대 아래로 숨으며 짖지는 않을 것이다. 너 때문에 화가 났다는 표현으로 나를 향해 요구성 짖기를 했겠지.




2. 과자 비닐과 고무줄이 만드는 낯선 소음에 두려움을 느꼈다


 과자 비닐은 소음이 나는 재질은 아니었지만 그걸 자르고 씨디플레이어를 넣었다 뺐다 하고 고무줄도 감았다 뺐다 또 감았다 할 때 개가 평소에 듣지 못하는 소음이 발생했을지 모른다. 그 소리가 개를 순간적으로 위협한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방으로 숨었고 거기에서도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가 소음을 향해 계속 짖었다.



봉투와 고무줄 소음에?


3. 그 시간은 타이밍일 뿐 우리 집 외부 소음 때문이다


 우리 집 주변은 다 공사 중이다. 발코니 맞은편은 2년 후가 완공인 아파트 재건축 중이라 하루하루 건물의 높이가 올라간다. 원래는 우리 아파트 밖이 지역 재개발로 텅 비어 있었고 우리 집은 수령이 많은 나무들로 둘러싼 '놀이터 뷰'였는데 지금은 '재건축 뷰'가 돼 버렸다. 오르내리는 육중한 철강 재료들 소리, 콘크리트 같은 것을 붓는 소리가 들린다. 집 뒤쪽으로도 길 건너에 지식산업센터를 짓고 있다.

 요즘은 앞뒤 창을 다 열어놓으니 개에게는 사람보다 그 소음이 더 크고 무섭게 들릴 수 있다. 잘 때는 모르고 잘 잤는데 그 소음을 의식하는 순간 그게 싫고 이상해서 짖는다.



집앞 뒤가 다 공사중이라?

   

4. 노령견이라 망상 혹은 환청이 있다


 원래 밤에는 짖지 않고 잘 자던 개가 며칠 전 한밤중에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개는 중문을 쳐다보고 짖고 있었다. 알고 보니 거실 벽의 인터폰에 기본으로 켜져 있는 빨간색 비상 버튼이 유리에 비치는 것을 보고 짖는 것이었다. 자다가 깨서 그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놀랐나 보다.

 그래서 공기청정기며 보일러 조절기며 어둠 속에서 보일만한 불빛은 전부 두꺼운 종이를 붙여 가렸다. 그 후론 밤에 자다가 짖지 않는다.  

 14세인 개의 나이가 사람으로는 일흔, 여든이라니 인지장애의 일종으로 망상이나 환청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불빛을 다 가렸다



5. 이건 진짜 아녔으면 좋겠지만, 귀신이 보여서 짖는다


 사실 우리 집 안 어딘가에 사람에겐 안 보이고 개의 눈에만 보이거나 개에게만 느껴지는 귀신이 산다. 그 귀신이 조금 아까 갑자기 거실에 등장하였다. 그걸 본 개가 깜짝 놀라 작은방 깊숙한 곳으로 숨으며 멍청히 딴짓을 하는 나에게 계속 경고를 한다.

 

-야, 귀신이 저기 있잖아. 빨리 이리 와. 피해, 얼른! 왁, 왁


 그런데 만약 집에 귀신이 있다면 무슨 목적으로 여름 한낮에 개의 눈에만 보이게 나오는 걸까. 한밤중에 아저씨 눈에 어른대면 침대 옆에 항상 세워두는 목검에 맞을까 봐 그러나?

 





 바깥 이중창까지 창문을 다 닫고 암막커튼도 치고 개를 지켜보았다. 달라진 분위기를 잠시 살피는가 싶더니 역계속 짖는다. 이젠 중간중간 낑낑 소리도 낸다.

 

 도저히 내가 더워서 안 되겠다. 여름이라 밖도 덥다지만 창을 닫고 있는 것보다는 열어두는 게 훨씬 다. 나는 개를 야단치고 달래고 얼렀다.

 그러다가 진짜, 도대체 어쩌라고 짖는 거냐, 이제 짖든 말든 니 맘대로 해라, 난 모르겠다 등등 혼잣말을 하며 닫았던 커튼과 창문을 다 열고 다녔다.

 돌아보니 개가 거실에 나와서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본다. 속지 마라, 슬퍼서 그러는 게 아니라 개도 늙으면 사람과 똑같이 평소 눈물이 많이 생긴다.

 그러고 보니 짖기를 멈췄다.



자꾸 부르니 마지못해 나오는 노견

 


 유튜브에서 노령견 짖음에 대해 찾아보았다. 예상대로 많은 사례와 대책이 나왔다.

 노령견은 후각, 시각이 둔해지는 만큼 신경이 예민해지고 불안감도 높아진다. 상황이나 소음에 대한 판단력은 떨어져서 자극이 느껴질 때 전보다 더 많이 짖는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오토바이 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외부 소음에 무신경했더라도 나이가 들면 민감해질 수 있다.  

 우리의 노령견이 예전보다 자주 짖을 수 있음을 일단 인정해야 한다.


 오늘 우리 개가 급발진하듯 짖은 데에는 내가 생각한 원인들이 (귀신 빼고는) 다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내가 조용히 잘 자고 착하게 있는데도 아줌마가 간식도 안 주고 놀아주지도 않고 딴짓만 해서 기분 나쁜 차에 밖은 또 엄청 시끄럽고 어쩐지 몸은 맘 같지 않게 무겁고 에잇 스트레스 짱 난다, 왁 왁 왁.

  

 맨몸보다 개의 몸에 잘 맞는 옷을 입히면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최근에 등의 탈모가 심해져서 허전할까 봐 입혀 놓았던 내의를 벗겼는데 오늘 다시 입혔다. 다행히 내가 입고 싶을 만큼 보드랍고 얇은 여름용 쿨러닝이 있다.

 오비이락인지 보드라운 옷을 입혀 놓고 쓰다듬어 주니 제 딴에도 짖느라 힘들었는지 여전한 외부 소음 속에서 늘어져 잔다.


 덥고 힘든 낮이 지났다. 

 

유난히 늙어뵈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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