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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Aug 02. 2023

내 남자친구의 자전거

지금은 남편이 된,


 문구류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외장하드를 꺼냈다. 손바닥에 꽉 들 만큼 두껍고 묵직하다.

 네이버보다 먼저 블로그 시대를 열었던 '인티즌'과 최근 부활한 '싸이월드'가 인기였던 무렵 우리 가족의 사진과 소소한 기록들이 들어있을 터였다.

 

 문득 지난날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구형 케이블을 찾아 하드를 열어보았다.  

 아무리 내 딸들이라도, 솔직히 예다기보다는 잘 먹고 잘 웃어서 귀여웠던 어린 자매와 동갑내기 젊은 부부가 거기 있었다.



요즘도 쓰나, 외장하드

 

 

 이것은 16년 전에 블로그써서 인티즌 메인 화면에 올랐던 글이다.

 이제는 애들 아빠가 되어 자전거에 여자친구  딸들을 태우고 달리는 남편을 보며 연애시절의 에피소드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남편이 자전거 앞뒤에 두 딸을 태우고 공원길을 달린다. 딸들의 상쾌한 웃음소리 초가을 바람에 머리카락처럼 날린다.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남편의 상냥한 목소리도 들린다.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옛날 내 남자친구던 시절에 그가 타던 자전거가 생각난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남편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쓰던 자전거를 본가에서 가져다고 했다.

 우리는 동갑이라 내가 먼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회사를 쉬는 날은 가끔 남편의 학교로 놀러 가서 데이트를 했다.

 나는 조용한 복도에서 강의실 안을 넘겨다 보거, 시원한 바람 함께 잔디밭에 앉아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구경했다. 수업이 끝 남편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교정 곳곳을 달리곤 했다.

 그때 남편의 자전거 사람이 더 앉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  긴 바에 옆으로 걸터앉았는데 것은 그냥 두꺼운 쇠막대여서 조 있으 엉덩이가 아팠다. 엉덩이가 아프면 무게 중심을 옮겨서 허벅지로 텨보고, 허벅지가 아프면 요리조리  앉으면서도 못 타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서 께 자전거를  동네를 오래오래 돌아다니고 싶었다.
 
 어느 날, 남편이 자전거를 가지고 오는데 내가 앉는 그 자리에 두꺼운 스펀지가 둘둘 감겨 투명테이프로 꼼꼼히 붙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엉덩이가 아프고 불편할 것 같아 고민 끝에 나름 쿠션 있는 안장을 만들어 보았 했다.
 그 순간 나는, 진 차를 태워 주 못한다 하더라도 남자 결혼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 후 우리는 결혼했고 그 후에 남편의 자전거와 스펀지로 만든 안장도 잊어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이웃집 토토로'를 보다가 아빠가 타는 자전거에 시선이 갔다. 영화 속의 아빠가 작은딸 메이를 앉히는 자리가 예전에 내가 앉던 리였다.
 메이의 아빠는 옛날 남편 자전거와 비슷하게 도톰한 방석을 러 묶고 아이를 앉혔다. 자상한 아빠가 자전거 앞에는 작은딸을, 뒤에는 큰딸을 태우고 엄마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는 장면이었다.

 


메이 자매와 아빠의 자전거


 요즘 남편은 영화 속의 아빠처럼 자전거 앞에는 작은딸을, 뒤에는 큰딸을 태우고 다닌다. 

 이제는 남편이 급조한 안장 대신 자전거 가게에서 달아준 편안한 안장이 앞뒤에 붙어 있다. 안장은 아이들에게 맞춘 크기라 나는 앉을 수 없다.

 

우리 자매와 아빠의 자전거



 남편의 자전거에 타 본 지가 오래되었다.
 오늘 저녁에 퇴근해 집에 오면, 아쉬운 대로 한번 업어나 달라고 해야겠다.





 지금도 남편은 매일 출퇴근할 때 지하철역과 집 사이를 자전거로 이동한다.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다녀오거먼 동네까지 운동 삼아 갔다 온다.

 며칠 전에는 내가 혼잣말로 '먹태깡이 백만 봉이나 팔렸다는데 아직 못 먹어봤네.'라 했더니 이 무더운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더니 먹태깡을 구해왔다.

 꽤 먼 데까지 편의점 열 군데 쯤 돌았다고 했다.


 지금 타는 자전거도 5년 전 남편 생일선물로 인데 틈틈이 손 보면서 타고 있다.

 남편의 로망은 인디언스카우트바버라는 이름도 외우기 힘든 바이크라지만, 그건 나랑 같이 사는 이번 생에는 안될 말이다.

 

 다 커버린 딸들 대신 같이 늙어갈 마누라를 옛날처럼 뒷자리에 태우고 달릴 튼튼한 자전거는 또 사 줄 의향이 있다.



넌 못 먹는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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