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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ul 30. 2023

어떻게 취향이 변하니

나이 듦과 취향의 관계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날, 낮이 한풀 꺾인 시간에도 공기가 후끈했다.

 녁밥을 하려는데 도저히 뭔가를 끓이고 싶지 않았다. 집에 있는 재료로 단히 만들어 시원하게 수 있는 레시피를 찾아보았다.

 딱 맞는 메뉴가 '미역오이냉국'이었다.


 오이에 그것도 냉국숟가락도 대지 않았었는데 나는 그날 미역오이냉국을 만들었다.

 내가 이냉국을 만든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맛있게 먹어보기도 처음이었다.


내가 만든 게 왜 맛있지


 얼마 전에는 콩국수도 만들었다. 

 콩을 불려 갈아서 만들 만큼 성의는 없어서 마트에서 물을 사 왔다. 싱싱한 노각 하나 새콤달콤 무쳐서 반찬으로 곁들니 이것도 맛있었다.


콩국수에 반쪽씩 올리려고 방울토마토도 샀다

 

 나는 입맛이 없다는 게 무슨 인지 모를 만큼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리는 음식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제는 콩국수 팥칼국수 먹 수 있고 감자탕 냄비 안에서는 돼지고기 살점보다 푹 익은 감자와 시래기를 게 됐다.


 예전의 나라면 생각도 못 했을 일이다.

 나이 들며 취향이 변한 것일까?





 요즘은 꽃과 나무가 눈물 나게 다.

 얼마 전 유명 브랜드 향수와 꽃을 주제로 한 전시회에 갔었다. 꽃은 한 송이만으로 화려하면서도  여 있어도 아름다움이 과하지 않다.

 능소화, 개양귀비, 라벤더, 세이지, 이팝나무와 수국 그리고 외워놓고자꾸 이름을 까먹 야생화들도 참 예쁘다.


 K-아줌마의 프사는 꽃이고 K-아저씨의 프사는 산의 정상석이라 하던가. 아직은 프사에다 꽃을 올리진 않지만 까딱 정신을 놓으면 휴대폰 갤러리가 온통 꽃사진 판일 것이다.

 시큰둥하게 지나치던 꽃과 나무들을 이제는 한참 서서 바라보고 사진도 찍게 되니 역시 취향이 변했나 보다.


 또래들이 요즘은 방짜유기 얘기 한다. 렇다면 나도 곧 놋그릇이 좋아지려나!

 

 


서촌에서 만난 능소화, 꼭 교토 어딘가 같고

 



 친구네 동네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국수 맛집으로 유명한 노포인데 여름 계절메뉴인 콩국수를 먹으러 많은 손님들이 온단다. 나도 이제 콩국수를 즐기는 찐어른이한번 맛을 볼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주문을 하려는 순간, 일 년 중 지금 먹을 수 있다맛집의 콩국수보다 원래 좋아하 비빔국수가 먹고 싶었다.

 결국 비빔국수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운 좋게 콩국수 맛집에 자리를 잡았는데도 나는 콩국수를 고르지 않았다.

 

 역시 취향이 변한 게 아니라 너그러워진 거구나 싶었다.


나의 오랜 취향, 비빔국수

 

 취향은 극히 개인적이다. 사람의 선천적 성향을 기반으로 깔고, 그가 나고 자란 지역의 풍토와 집안 분위기 그리고 개인적 추억과 경험이 오랜 시간 겹쳐서 취향이 공고해진다.

 성향과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니 개인의 취향이 다르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평생 관심에 없던 것들이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갑자기 좋아질 확률은 낮다.

 나이가 들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상대적으로 많아서 예전에 관심이 없던 분야까지 눈에 드는 것 같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새로운 취향이 생겨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이다.

 




 반면에 오랫동안 기던  못 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맵고 짠맛 전만큼 몸이 받지를 않고 겨울에도 시던 아이스커피는 여름에도 이가 시려 마실 수가 없다.

 내 취향이, 나의 어감 때문에, 내 뜻과 달리, 하나둘 멀어다.

 

 몸이 마음을 못 따라가는 건 서글픈 일이다.

  

 나이가 들면 취향이 바뀐다기보다는 확장된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집에서 일터 사이를 시계만 보며 부지런히 오가던 시절을 지나고 이제는 매일이 한가롭다. 시속 3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걸으면서 우리 집 주변뿐 아니라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을 찬찬히 둘러보게 된다.     


 백 년이상 의 바람 속 지나며 울고 웃으며 살고 있다.

 중년 이후의 취향이 딱딱하고 편협해지는 대신 느슨하고 무던 사람이 되어야겠다.


700살도 넘은 느티나무-전북 진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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