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불행 씨.
어딘가에서 여전히 잘 지내고 있지요?
우리가 만난 지 벌써 30년이 흘렀네요.
불행 씨를 처음 봤던 때가 기억납니다. 내가 처음으로 불행하다고 느낀 날이었죠. 지하철에서 내 옆에 서 있던 불행 씨를 처음 알아봤고 나는 더 이상 불행을 보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됐어요.
그날 이후 불행은 불쑥 보였다 사라졌고 이런 상황을 언제쯤이면 무덤덤하게 대할 수 있을까 늘 두려웠어요.
내가 태어나는 순간에 나만의 불행도 같이 태어나서 쭉 함께 있었다는 말을 듣고도 믿을 수 없었어요. 내가 불행 씨를 본 건 열아홉 살 겨울 그날이었으니까요.
그 이후로 원하지 않아도 가끔 나를 보러 왔죠. 그때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행이 너무 미웠는데 이제는 나도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일까요.
그런 만남들이 나를 더 힘차게 살게 해 준 동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편지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자기 곁의 불행을 처음 알아보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죠. 나는 대학입시에 떨어진 날 불행 씨를 발견했어요. 그전까지는 '불행하다'라고 느낀 적이 없던 것 같아요.
그냥, 이번에 운이 없네, 나는 지금 많이 슬퍼, 내 맘대로 안돼, 정도의 기분이었는데 너무나 가고 싶던 대학의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지 못한 순간 '나는 불행하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 당신이 보였어요.
한번 불행의 존재를 알고 나니 굉장히 거슬렸어요. 불행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나타날지, 설마 사라지지 않고 내 옆에 그대로 머무는 건 아닌지 하구요.
나의 불행은 다행히 친절한 타입이었어요. 불행을 받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안 된다는 비밀들도 말해 주곤 했죠. 그래도 '불행' 자체가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서 나는 당신에게 그닥 상냥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내가 물어봤었죠.
-왜 행복은 나와 함께 태어나지 않고 불행만 함께 태어난 거야?
그때의 대답이 기억납니다.
-사람 자체가 행복이라서 그래. 따로 필요한 행복 같은 건 없어.
그리고 자꾸 생각하거나 바라보지 않는다면 불행은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 사라진다고 했죠.
그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나에게 달라붙어 나를 아프게 하는 불행을 무시하기는 너무 어려워요.
- 지금 내가 너무 불행한데 어떻게 불행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있어?
- 쉬워. 배가 고플 때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는 대신 뭘 먹을까 생각하면 되잖아.
맞아요. 불행이 닥쳤을 때 '나는 지금 불행해'라고 한탄하는 대신 '그럼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되지?'를 고민하면 되는 거였죠.
나타났구나 싶으면 어느새 사라지고, 어느새 사라졌구나 싶으면 또 나타나는 불행도 내가 죽을 때까지 같이 하는 친구라고 생각하니 좀 나아요.
나는 평범한 여자로 그때그때를 살기에 바빴지만 멘탈만은 남부럽지 않게 긍정적인 타입이었던 거 알죠?
- 나만 불행한 건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불행해.
- 지금 좀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내일의 걱정 때문에 오늘을 망치지 말자.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여요.
이제는 친구로 여겨지는 불행 씨.
언제가 되든지 당신은 또 나를 찾아오겠죠. 그게 당신의 역할이고 사람의 인생이니까요.
불행의 방문이 내 여정에 몇 번이나 남았나 알 수 없으니까 궁금해하지 않을 거예요.
혹시 큰 불행이 오는 건 아닐까 미리 걱정하지도 않으려구요. 내게 큰 불행이 올 지, 큰 행복이 올 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나에게 늘 잊지 말라고 했던 그 주문, '불행 중 다행이야!'를 다시 소리 내어 말해 봅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날도 부디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주기를 부탁합니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당신의 친구,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