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탄생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불행과 함께 태어난다

by 이명선

사람이 태어날 때 자기만의 불행이 함께 태어난다.

불행하게도 불행과 함께 태어나지 않는 사람은 없고 불행하게도 이겨내기 힘든 불행이 예견되는 생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제 그릇에 맞는 불행이 배정된다.

내게 짝지어진 불행은 좀 말이 많은 타입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함께 살다가는 불행이 있고, 사람마다 자기의 불행을 조우하는 시점과 처리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상모 쓴 호돌이와 올림픽으로 온 세상이 뜨거웠던 1988년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에 나는 대학 입시에서 낙방했다. '아, 너무 불행하다'라고 느낀 순간 나의 불행을 처음 보았다. 나와 비슷하게 자그만 체격에 무난한 인상이라 다행이었다.

자기를 처음 본 나의 반응을 살피던 불행에게 내가 '너라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라고 말했고 그 말은 우리의 은어가 되었다.


-나를 너무 늦게 알아봐서 서운해. 그래서 좀 오래 머물다 가려고.


대학에 떨어진 겨울부터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래도 악독한 불행은 아니어서 누가 죽거나 크게 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누구나 느낄 정도로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졌고 부모님은 매일 밤 싸웠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오는 엄마가 골목 끝에 보이기를 기다리는 게 나의 루틴이었다.

재수 기간동안 밖에서는 평온해 보이는 일상 안에 불행이 설치해 놓은 작은 부비트랩이 터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안 들었지만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는 가끔 생각했다.

-니가 불행하다는 생각을 많이 할수록 나는 커져.

불행은 저도 나를 괴롭히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어느 날 학원까지 가는 편도 한 시간의 버스 안에서 불행이 말했다.


-나는 뚱뚱해지기 싫어.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니네 학원 안에 행운이 하나 숨어 있어. 그걸 찾아봐.


불행하다는 생각 대신 행운을 찾으려는 생각을 하라는 꼼수인가 싶었다. 그러면서도 불행을 생각하는 대신 행운은 대체 어디 있는 건지 생각하게 됐다.




나는 재수 끝에 대학에 합격했지만 불행이 떠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몸집이 많이 커지지도 않았다.

집안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다. 엄마는 티를 안 내려했지만 나는 눈치가 빨랐다. 용돈이 없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돈을 더 달라고 하면 엄마가 괴로울 테니까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주는 용돈에다 틈틈이 과외도 하고 우리 과 성적 1등에게만 주는 장학금을 기대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용돈은 상대적이다. 1200원 하는 학식도 매번 못 사 먹어 건너뛰는 친구도 있고 매일 학교 근처 맛집과 카페를 다니고 쇼핑을 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두 그룹 사이에서 생각도 행동도 어중간한 줄타기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나의 장학금 라이벌은 아버지가 유명 정치인이라 꽤 잘 사는 애였는데 0점 몇 점 차이로 1등을 뺏겨 한 푼도 못 받는 학기에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쟤는 집이 부잔데 굳이 이걸 받으려고 기를 쓰냐. 학교는 왜 이 돈이 절실한 나한테 안 주고 등록금 걱정이 전혀 없는 애한테 주는 거지?

그냥 불공평했다. 갑자기 불쌍해진 나도, 집도 잘 살면서 공부까지 잘하는 동기도.


내가 좋아하는 노랫가사가 있다. 몇 년 전에 나온 노래라 당시에는 없었지만 내가 한창 불행을 가방에 넣고 다니던 시절에 들었다면 큰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순서가 조금 다른 것뿐.


몇 년 후에, 내 불행한 감정을 배가시키던 동기에 대해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마도 다시 몇 년 후에 동기는 더 행복해졌을 것이다. 내가 듣지는 못 했지만 그렇게 믿는다.

동기의 불행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냐고? 그건 아니다. 나는 동기를 원망하거나 걔가 잘 안 됐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단지 그녀가 부러웠을 뿐이다.

아이들의 방 안에도 개인 욕실이 구비돼 있던 삼층집이 부러웠고 집에서 긴 원피스를 입고 있던 우아한 어머니와 과일을 내 오는 아주머니가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을 뿐이다.

그때 내 눈에 그녀의 불행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20대 초반의 내가 짊어졌었다고 믿었던 불행은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집안이 어려워졌다고 했지만 니가 학교를 다니는 대신 돈을 벌어야 했던 것도 아니고 온 식구가 방 한 칸으로 옮겨야 했던 것도 아닌데 뭐 그리 불행하다고 징징거려!라 하면 안 된다.

그때의 나는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어서 불행했다. 재수씩이나 했으니 더 좋은 대학을 가고 싶었고 내 친구들처럼 예쁜 옷도 자주 사고 싶었다. 왕복 세 시간을 소비하며 학교를 다니는 대신 서울 시내 학교 근처에 살아서 사뿐사뿐 다니고 싶었다.

용돈 액수처럼 불행의 크기도 상대적이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면 불행한 것이다.

누군가는 과일을 깎아주는 아주머니가 한 명뿐이라 불행할 수도 있다. 내 친구네는 아주머니가 세 명이던데 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불행에는 각자의 근거가 있지만 우리가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살아있는 한 피할 수 없는 나만의 불행을 어떻게 하면 잘 목도하고 잘 구슬려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면 된다.


나의 불행이 아무리 커도 남에게 보이지 않고 남의 불행이 아무리 커도 나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밍크선인장은 보드라와 보이지만 촘촘한 가시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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