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친구가 놀러 오면서 샤인머스캣 한 박스를 사 왔다. 자두맛사탕 크기의 푸른 알이 달린 샤인머스캣('포도'라 부르면 안 되는 존재)이 세 송이나 들어 있었다.
큰딸이 '그거 강아지 주면 안 돼!'하고 소리쳤다. 물론 이 비싼 샤인머스캣을 나눠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주면 안 된다는 외침이 절박해서 놀랐다.
개에게는 포도를 주면 안 된다. 나도 알고 있다. 애들이 귀에 박히게 말했으니까.
그런데 개에게 주면 안 된다는 것이 너무 많다. 사람 먹는 우유도 주면 안 된다, 치즈도 주면 안 된다, 간이 밴 음식도 주면 안 된다, 초콜릿도 주면 안 된다......
머리로 알고는 있는데 공감은 잘 안 된다.
개도 알레르기 체질이 있을 테니 그런 이유라면 이해가 가지만 '개 전용 식품'이 아닌 것을 주면 안 된다는 말은 나도 견주의 한 사람이지만 좀 오바 같다.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말은 완전히 이해하는데 '개도 못 먹는 것을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건 살짝 언짢다.
그래도 딸들이 그렇다고 하니 고분고분 따른다. 새로운 것을 개와 나눠먹고 싶을 때는 일단 검색을 한다. 역시 십중팔구는, 절대 주지 말라, 하나라도 먹였을 때는 당장 수의사에게 달려가라, 급성 중독과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문장이 살벌하게 뜬다.
'옛날 개들은 먹고 남은 밥 모아 줬어. 남은 밥이 모자라면 라면도 끓여 줬는데'라고 하면 애들은 기겁을 한다.
우리 집 마당에 묶여 있던 개들은 사람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찌그러진 양은그릇에 먹고 남은 밥과 반찬을 모아서 주면 꼬리를 흔들며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옛날에 개들 수명이 짧았던 거래. 그때 개들이 몇 년이나 살았어?
사실 개들이 몇 년까지 살았나 알기 어렵다. 그때 개들은 온 동네를 쏘다니다 어느 집에서 놓은 쥐약을 먹고 죽든지, 알 수 없는 병이 들어 죽든지, 새끼를 낳다가 죽었다. 할머니가 우리 몰래 개장수에게 팔거나 스스로 종적을 감추는 일도 있어서 자연스러운 노화로 죽는 경우가 적었다. 우리 집에서도 쥐약을 먹고 죽은 개가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 약을 놓은 집을 수소문해서 그 집 아줌마를 단단히 혼내고 오셨다.
-동네 개들이 주워 먹고 죽으면 어쩌라고 쥐약을 그렇게 함부로 놓나, 그 여편네가 동네 개들 다 죽이려고 환장을 한 거지.
쥐약을 놓는 에티켓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주장이 이웃의 공감을 많이 얻은 걸로 보아, 먹으면 안 되는 쥐약을 뒤져 먹은 개보다 쥐약을 놓은 사람에게 더 잘못이 있던 게 맞는 것 같다.
작은딸이 반쪽 먹고 엄마 먹으라고 반쪽 남겨 준 샌드위치를 늦은 아침으로 먹는데 노견이 아련하게 바라본다. 아사삭하는 상추 씹는 소리에 눈빛이 빛나고 쫀쫀한 햄 냄새에 까만 코를 움찔거린다.
나는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안 묻은 빵 끝을 조금 잘라 개에게 주었다. 당연히 씹지 않고 삼켜버린다. 그리고 다시 아련한 눈빛......
-그렇게 원하는 빵 한 조각 먹고 하루 일찍 가라. 인생 뭐 있니.
딸들이 매섭게 지켜보지 않을 때 나는 이런 짓을 종종 한다. 금지된 음식 한 입에 수명 하루씩을 차감한다면 한 160일쯤 차감됐으려나.
우리 개가 지금 열네 살인데 요즘 반려견들은 열여덟 살, 스무 살까지도 산다고 한다. 대형견보다 소형견이 오래 살고 개도 수컷보다 암컷이 더 오래 산다. 우리 개는 소형견 수컷이니 만약 열여덟 살이 못 되어 떠나면 주지 말라는 음식을 몰래몰래 준 내 책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