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선 Sep 04. 2023

초저녁의 레몬맥주와 감바스알아히요

한 끼 저녁 대신

8 딱히 할 일이 없던 일요일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11시 안팎에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면 서너 시까지 배가 고프지 않다.

 집 안에서 뒹굴거리다가 소소한 일을 처리하고 나니 다섯 시쯤 슬슬 출출해졌다.

 오늘 아침을 남편이 했으니 저녁양심상 내가 해야 되지 않나 싶어서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나는 요리하기를 즐기는 타입이 아니고 배가 고파서 조리대에 서거나, 가족의 식사 준비를 해야 하니까 최선을 다 하는 편이다. 그래서 높지 않은 텐션으로 냉장고 안을 스캔했다. 지난 주말에 닭갈비에 넣어 먹고 남은 생우동면 한 팩과 샐러드 채소들이 눈에 띄었다. 어제 산 레몬향 캔맥주와도 눈이 마주쳤다.

 

 내가 침대에서 자는 동안 노견과 함께 낮잠을 잔 남편에게 저녁으로 우동샐러드를 만들어서 간단히 맥주나 마시고 끝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제안을 하면서도 좀 자신이 없 게, 1인분짜리 우동면으로 만든 샐러드를 둘이 먹기엔 부족해서다. 역시 뭔가를 더 하긴 해야 됐다.

 남편은 집에 냉동새우가 많으니 감바스 같이 해 먹자고 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감바스알아히요에 꼭 들어가야 할 재료는 이미 다 있다.

 남편이 바게트를 사 오겠다고 나간 사이 나는 샐러드 채소를 씻어 물기를 빼고 통마늘 넉넉히 꺼내 씻어 두었다.

 두 가지 음식으로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장을 봐 온 남편이 꺼내 놓 재료에 춘장과 돼지고기 있었다. 요리하는 김에 돼지고기춘장볶음을 같이 하겠단다.   

 (아, 그렇다면 저의 깜찍한 샐러드는 오늘도 까메오가 되겠지만 솔직히 저로선 무척 감사하죠.)

 

 올리브유 여기, 페페론치노 여기, 텐션이 살아난 나는 필요한 것들을 꺼내주고 남편은 주물팬을 꺼내 조리를 시작했다.

 그래, 요리가 취미라는데 주말에 취미생활 하게  자고.



띄어쓰기 최선인가요? 아스파, 라거스라니





 몇 년 전에 산 롯지 주물팬은 오늘같은 날 가끔 사용한다. 무쇠팬은 확실히 스테인리스팬이나 코팅팬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 감바스알아히요 같은 음식주물팬에 조리해서 바로 식탁으로 가져가더 맛있어 다.

 주물팬을 처음 샀을 때는 시즈닝을 하면 좋길래 인터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그 후로는 관리에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는다. 사용 후 바로 씻어 물기 없게 말린 다음 식용유를 골고루 발라 통풍이 잘 되는 다용도실 구석에 걸어 두는 게 다다.

 

 남편이 감바스와 돼지고기볶음을 하는 동안 나는 우동샐러드를 만들고 식탁을 차렸다.   

 두 개의 앞접시 위에 포크와 젓가락 그리고 맥주를 따라 마실 유리컵을 준비하고 방금 만든 세 가지 음식을 놓고 앉았다.

 노견 저녁밥 주는 시간인 여섯 시가 아직 안 된 초저녁이었다.


 바게트에 돼지고기볶음도 올려 먹고 샐러드도 올려 먹고, 레몬향맥주 한 모금  이렇게 먹다 보니 간단히는커녕 웬만한 저녁식사보다 배가 불렀다.



간단히 먹겠다고 시작했는데 거해진 느낌적 느낌





 나와 거의 20년을 알고 지내는 S는 모든 요리를 잘하는데 감바스알아히요를 특히 즐겨 만든다. 그녀의 집들이하던 날 메뉴에 있었고 우리들이 심심해서 갑자기 몰려 간 날에도 휘리릭 감바스를 해 줬다. 스페인 요리인 감바스알아히요는 대충 만들기는 쉽지만 각기 다른 재료들의 식감을 살리면서 적당한 간을 맞추기가 쉬운 음식 아니다.

 이국적이고 풍성한 느낌을 주며 와인이나 맥주와도 잘 어울려서 어쩐지 여성적인 취향에 잘 맞는다.

  

 남편의 감바스를 먹으며 S의 감바스를 생각했다. S의 감바스처럼 내 지인들이 으면서 나를 떠올리는 요리가 있을까?

 아마 아무에게도 그런 작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딸들조차 '여자는 임신하면 엄마가 해 준 음식이 먹고 싶다던데 우리는 아빠가 해 준 음식이 먹고 싶을 거야.'라 했었으니까.


 그래도 엄마 25년 차인데 좀 잘못인가 싶다가도, 내가 만들어 준 음식 대신 내가 잘 먹던 음식으로 기억해줘도 좋지 않을까 한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무료할 만큼 고요한 초저녁에 맥주를 마시다 문득 내 생각을 해 준다면.

 

 

 


지난 봄에 S가 차려줬던 여성취향 가득한 한 상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니의 덴뿌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