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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Nov 10. 2023

너네 엄마는 제일 잘하는 요리가 뭐야?

꼭 알아야 되겠니

 큰애를 가졌을 때다. 친정엄마가 담아주는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었다. 그때는 친정집에서 고속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내 말에 엄마는 오이소박이를 한 통 담아서 가져다주셨다.

 오이소박이는 딱 맛있는 때가 있다. 생오이가 적당히 익어 오이의 시원한 맛과 매콤달콤한 양념의 밸런스가 최고조로 잘 어울 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오이 향보다 양념의 신맛이 강해지고 오이는 아삭함을 잃고 물컹해진다.

  

 친정엄마의 음식만큼이나 오래 얻어먹는 시어머니의 음식도 맛있는 게 정말 많다. 특히 나는 명절에 해 주시는 소갈비찜 아하는데 그걸 먹고 있으면 추석, 설날들며느리에게 줄 수밖에 없 모든 단점이 상쇄된다. 두툼한 소갈비가 어떻게 그렇게 보드라운지, 갈비에 스며들어 고기와 일체가 된 양념은 어떻게 그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들에게 레시피를 물어보지는 않는다. 어차피 손맛이 다르고 재료 본연의 맛 달라서 따라 하기가 어렵. 그냥 해 주실 때 열심히 먹는다.

 그리고 해 주시는 걸 먹는 게 제일 맛있다.

  

 한 번은 딸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이담에 너희는 엄마가 해 준 음식 중에 뭐가 먹고 싶어질 것 같아?'


 딸들이  생각하더, 솔직히 엄마 음식은 모르겠고 아빠가 해 준 음식이 먹고 싶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내 표정은 포커페이스였지만 마음은 살짝 상처를 받았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했던가. 남편은 요리하기를 즐기는 강한 자이다.


 좋아,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식을 딱 정해서 주입시켜야겠어.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내가 죽고 없을 때, 아, 엄마가 해 준 000이 너무 먹고 싶은데... 하며 눈물짓게 말이다.

 

내 폰에 있는 남편 요리 앨범 중에서

  


 

 나는 오징어볶음에 자신 있다. 대학 때 우리 학교 앞 오징어덮밥 맛집의 사장님에게 들은 비법이 있는데 두반장과 굴소스를 넣는 레시피다. 나의 오징어볶음을 식구들도 다 맛있다고 했다.

 그런데 징어볶음은 요리라기보다 반찬 쪽이라 그런지 아직도 오징어볶음! 하면 저절로 엄 떠올리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닭갈비도 잘한다. 고기도 닭다릿살과 닭안심 등 다양하게 준비하고 추가로 고구마 넣고 양배추 넣고 떡국 떡도 넣어서 푸짐하고 맛있게 볶는다. 닭갈비 정도면 요리로 볼 수 있지만 이제는 닭갈비라는 메뉴가 밀키트부터 춘천닭갈비 전문점까지 맛과 비주얼이 거의 평준화되어서 '우리 엄마의 요리'라는 고유 이미지 생성에 불리하다.


 지난번 큰딸 생일날에 정성껏 준비한 잡채를 만들면서 '잡채=우리 엄마'라는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했으나 마지막에 간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 결국 남편의 응급 마무리로 식탁에 오르게 된 지라 자신감에 치명상을 입었다.  

 어차피 잡채는 손이 너무 많이 가서 한번 하려면 마음먹 자체가 어려우니 패스다. 


 그렇다면 메인 요리 말고 디저트나 하이볼 같은 간단하지만 색다른 분야로 승부해 볼까.

 '아,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 칵테일이 먹고 싶어...'라는 대사는 아무래도 좀 아니 무스 케이크나 전통 한식 디저트 같은 건 어떨까?

 

 그러나 욕심과 달리 의욕이 따르지 않는다. 요리하는 것 자체가 재밌고 즐거워야 맛도 있고 감동도 주는 것이다.

 너희 어머니 시그니처 요리가 뭐냐고 물으면 아버지시그니처 요리로 대답하 해야 겠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우리에게 음식을 심히 해 줬고 그건 그냥 먹을 만했어'라는 회상으로 만족하겠다.





 딸들이 아주 어릴 때다. 할머니댁에 다들 모여 있던 낮에 애들 고모가 각 집의 여섯 꼬마들을 먹인다고 김밥을 쌌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작은딸이 나에게 와서 귓속말을 했다.


 - 엄마, 김밥도 집에서 만들 수 있는 거였어?


 예전에는 내가 김밥을 좋아하지 않았어서 집에서 김밥을 싼 적이 없다.

 소풍에는 김밥이 국룰이니까 큰애가 일곱살이 되어 병설유치원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현장체험학습날 새벽에 일어나 준한 게 첫 김밥이었다.

 때 김밥을 맛있게 해 주려고 동네에서 김밥을 맛있게 싼다고 인정받는 엄마들에게 방법을 물어보다. 넓은 팬에 기름두르지 않고 모든 재료를 따로따로 달달 볶아 놓는다, 밥에 양념을 잘한다가 공통된 팁이었다.

 

 갑자기 작은딸이 주말에 집에 오면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엄마가 만든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한다.

 나는 이게 웬일이래 하는 반가운 마음에, 이번에 김밥을 제대로 한번 싸 보리라 생각했다

 

- 엄마, 학교 다닐 때 소풍 가서 애들이랑 모여 앉아 도시락을 펼치면 말이야, 다른 애들 김밥은 화려하고 뚱뚱한데 엄마 김밥은 모양도 뭔가 부실하게 든 것 같고 젓가락으로 잡으면 속이 빠지고 그랬거든. 근데 그 김밥이 너무 맛있는 거야. 나 그 김밥이 먹고 싶어.


 좋은 거겠지? 그래도 맛있었다니.

 속이 부실하게 든 것처럼 보이고 젓가락으로 집으면 무너지기도 하지만 결국 너무나 맛있어서 스무 살이 넘어서도 기억에 남는 김밥이 바로 나의 김밥인 것이다.

 

 적고 보니 굉장히 뿌듯하다.

 그렇다면 김밥을 일부러 부실하게 싸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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