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명선 Nov 02. 2023

그래서 우리는 딸이다

딸들의 마음

 20대 자녀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줄곧 만나는 엄마들과 점심을 먹었다. 지난 강릉 나들이에  못 한 언니까지 완전체 모임이었다.

 우리는 단풍과 낙엽이 번갈아 뿌려 가을햇볕 아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야외카페 잔디밭에는 뱀딸기가 레길을 이루고 있었다. 빨강과 초록의 보색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예뻤다.

 

뱀딸기는 바닥에 깔려 자란다


 날씨가 선선하게 니 실내보다 야외가 좋은데 이 가을은 다른 계절에 비해 점점  아쉽다.

 한 언니가 팔순이 막 지난 친정엄마가 건강하실 때 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다들 각자의 엄마를 떠올렸 것이다.

 모녀란 가장 친밀 서로 애틋하면서도 막말과 짜증도 쉽게 던지는 애증의 관계다.  

 내 친구의 엄마들은 70대 중후반이 많다. 형제 중 막내라면 엄마가 80대에 접어드셨다. 아직은 무리 없는 일정으로 여행을 즐기실 나이다.

 언니는 제주를 생각했고 나는 여수를 추천했다. ktx를 타고 여수엑스포역에서 내려 택시로 이동하면 된다. 그리고 80 엄마와의 여행이니 많이 돌아다닐 것도 없고 맛있는 현지 음식 먹고 예쁜 곳에서 바다 구경을 실컷 하며 이야기 많이 나누는 데에 초점을 두면 된다.

 그렇지만 근사하고 안락한 호텔 예약은 필수라고 덧붙여줬다.


 아직 낮동안은 춥지 않으니 여행하기 딱 좋다.






 내 친구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두 분을 함께 모시고 여행을 한 적이 있단다. 결론은 너어어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주변에 절대 비추천이라 했다.

 이런 여행 조합에서 딸이자 며느리인 한 사람이 두 어머니를 케어해야 하는데 두 분의 입맛이나 성향이 다르면 더욱 곤란해진다. 그리고 우리나라 친정엄마들의 특성상, 딸을 위하려는 마음에서 사돈댁에게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다.

 친구 엄마 여행지에서도 본인의 즐거움보다 먼저 '사돈댁이 혹시 불편하실까' 늘 염려했단다. 작은 것에서도 두 분에게 공평한 관심과 배려를 분배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단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시어머니가 삐지지는 않을까, 친정엄마가 서운하게 느끼지는 않을까 내내 마음 쓰였고 한다.


 지금  또래들은 이 결혼해서 시댁 가족이 생긴다 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시댁에 잘해라'라는 말 같은 건 안  것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말 딸을 가진 분들에게서 들었다.

 

 자라는 동안 엄마의 편애와 이익을 아들이 독점는 집도 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정작 어가는 엄마한테 시큰둥하다며 딸들은 분노했다.

 천상 효자가 아니었던 남자들결혼하면 효자로 변신는 경우가 많은데  몫다른 집 딸인 자기 아내에게 슬쩍 기기도 한다.

 그렇게 '딸들'은 결혼하면서 남편의 엄마에게도 딸 같아지기를 요구받는 것이다.




 

 집에 오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이번에는 뭐 하느라 바빠서 엄마 생일도 까먹고 지나가버렸다. 날짜를 헷갈리게 음력으로 해서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사실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다른 도시에 사는 엄마와 두어 달에 한 번씩 만나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 모녀의 데이트인 셈이다.

 얼마 전에 남편이 장모님과 둘이 제주도에라도 다녀오라고, 지금 안 하면 후회한다고 말했는데  실천하지 못했다.

 

 남편과 여행을 가면 나는 아무 계획, 고민, 불안 없이 가자는 대로 따라다니기만 하면 돼서 편하다.

 그러나 엄마와 함께 가면 내 역할은 총괄책임자이며 현지가이드가 돼야 하니 자칫 여행을 즐기는 게 아니라 '치르는' 입장이 될까 봐 주저했던 것이다.


 이기적인 생각이다. 한 번쯤 여행을 치르면 좀 어때. 엄마가 행복하면 그걸로 되는 거지.

 엄마가 아직 건강하고 내가 아직 건강할 때 가까운 곳에 다녀와야겠다.


 그래서 우리는 딸이다.

 

내가 사랑하는, 남의 집 딸들

 

매거진의 이전글 시립도서관에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