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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Oct 10. 2024

엄마의 자격

보통의 모성에 관한 두어 개의 단상

1.  
-너는 딸이랑 남편 중에 누가 더 좋아?


 큰애가 첫돌이 좀 지났을 때로 기억한다. 친구가 대뜸 물었다. 

 나는 그때 생각나는 대로 '남편'이라고 대답했고 친구는 말했다.


 -와, 그렇게 대답한 사람은 너밖에 없어.


 친구는 연애 중인 미혼이었고 나는 왕초보 엄마였으므로 그런 철없는 우문과 우답이 오갔던 것이다. 그래놓고 한동안은 내가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인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내게 다시 그 질문을 던지면 정말로 선택할 수가 없다.

 자식은 나와 일촌지간의 혈연이라 물보다 진하다는 피의 끌림이 수반된다. 자식과 남편은 나와 태생적 연결 자체가 다른데도 둘 중 하나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면 그건 '나와 무촌지간인 남'께서 참 잘해 오신 덕이 아닐는지.

 

 오래전에 읽은 소설 속이었다. 

 '빨치산이 군경을 피해 도망할 때 은신처를 아내에게 알리고 간 사람은 다 잡히고, 어머니에게 알리고 간 사람은 잡히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 당시 나 '역시 들에 대한 머니의 사랑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보다 크구나'라고 무심히 넘어갔고 작가의 의도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30년 가까이를 엄마로서 살아 보니 이제야 남편의 은신처를 고한 아내들에 대해 다른 이해가 가능했다.

 빨치산의 어머니는 내 목숨보다 아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자식'이라는 약점을 가진 아내의 입장이었면 어땠을까? 남편이 있는 곳을 말하라는 협박의 칼날 아래에 내 자식이 떨고 있었다면? 

 나 역시 자식을 살리기 위해 남편이 숨은 곳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아들이 전부였다면 아내에게도 아들이 먼저인 게 아닌가.



2.

 나는  둘 낳 인이 될 때까지 기른 엄마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이 환영받지 못하는 임신을 하자마자 초음파 사진을 어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아기를 꼭 낳을 거예요'라고 눈물로 고집하는 장면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장면이 의외로 흔하다. 

 너무 박진감이 없다. 정량화할 수 없는 모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주입하는 인위적인 모성애 같아 거부감마저 든다.

 

 자라고 임신과 동시에 그렇게 맹목적인 모성애가 생기지는 않는다. 

 내  두 생명이 한 몸의지하사계절을 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는 엄청난 고통을 견 내야 아기를 만난다. 그리고 그 후로도 지금까지 지내온 것보다 더 긴 나날들을 잠 못 자고 울면서 키우는 중에 여자는 마로 점점 성장한다.

 나는 오히려 흉악범의 어머니가 '제발 내 자식을 용서하고 나를 대신 벌해 주세요'라고 울부짖는 심정이 뭔지 알 것 같다. 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해도 내 자식이 힘어하모습에 죽을 만큼  것이 보통의 어머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실대로 아들 안중근에게 '나라를 위해 한 일이니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당당하게 죽으라'라고 전언했다는 조마리아는 평범한 어머니 아니다. 

 나 같은 범부는 그런 마음을 추측하기조차 어렵다.

 


3.

 소소한 하루 얘기를 나누고 통화를 마칠 때마다 엄마는 '조심하라' 말한다. 속으로는 '아니, 대체 뭘 맨날 그렇게 조심하라는 거야' 싶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러려니 한다. 

 딸과 엄마는 애증의 존재다. 누구보다 사랑하는데 누구보다 상처를 주기도 한다. 떨어져 생각하면 애틋하지만 만나서는 사소한 것들로 서운하고 안 해도 될 말을 던지고 후회한다.  

 그러나 저 흉악범의 어머니처럼, 어쩌면 자식이 무슨 짓을 하든 그의 편이 되는 사람은 '엄마' 뿐일 지도 모른다. 오랜 친구, 배우자와 형제, 심지어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에도 엄마는 분명히 '내 새끼 얼마나 힘들었니' 하며 받아줄 것이다.


 사람들 종교를 는 이유도 비슷 것 같다. 곁에 아무도 없고 앞이 보이지 않도록 절망했을 때 마음껏 의지하고 위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 신이기 때문에.

 

 래서 신의 현신은 어머니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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