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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Dec 05. 2023

너와의 결혼, 나만의 비혼

선택할 힘을 위하여

 현재 내 주변에 자녀의 결혼이 이슈인 집이 두 집이다.

 하나는 내 고등동창의 외아들이고 하나는 (내 글에 가끔 등장하는) 1기 신도시의 마샤 언니네 큰딸이다. 극히 좁은 예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려 한다는 말이 살짝 무색하다.


 마샤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고 그 집 큰딸도 우리 큰딸보다 다섯 살이 많은 서른인데 양가 상견례를 앞두고 있다.

 언니는 사돈 가족을 만날 장소도 무척 고민했다. 가까운 모임에서 매달 먹는 점심 장소도 고르고 고르는데 사돈과 처음 만나는 자리는 얼마나 무겁겠는가.

 딸과 예비사위가 주말마다 결혼식장을 돌아보고 결혼반지도 보러 다니는데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른 비용의 차이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녹록지 않은 여정이 이제 시작이다.


 고등동창의 아들은 만 나이로 스물아홉이라 남자치곤 이른 감이 있다지만 결혼의 최우선 조건은 나이보다 당사자 커플의 의지와 상황이니까 적령기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커플은 다음 달이 결혼식이라 온/오프라인 청첩장도 나왔신혼살림을 시작할 아파트 입주를 마쳤다.

 결혼식 문화에서도 함 보내기, 예단비와 꾸밈비 명목의 현금 주고 돌려받기, 폐백과 이바지 음식 등을 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둘이 살 신혼집 구하기만도 버거울 테니 줄일 수 있는 항목은 포기하고 양보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마 신혼여행 항목보다야 다른 데서 아끼는 게 나을 것이다.

 

 동창과 언니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예비부부의 어머니 입장에서 혼주 한복 맞추기 큰 이벤트인 것 같았다. 예전엔 한복집에서 각자 한복을 맞춰서 입고 식장에서 입장만 같이 했는데 요즘은 두 어머니의 분위기를 맞추느라 한복대여점에 함께 가서 비슷한 톤으로 골라 빌려 입는다고 한다.

 사실 나 같은 하객의 눈에선 히로인인 신부의 드레스조차 기억이 안 나는지라, 화촉을 밝히러 제일 먼저 단상에 나오는 어머니들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한복은 관심 밖의 소재였다.

 

 나도 앞으로 신부 어머니가 되거나 말거나의 옵션이 남은 처지라 공감이 갔다.

고등친구 아들의 청첩장

 


  

 문득 20년도 넘은 나의 결혼 한복이 생각났다. 두 벌인데 둘 다 딱 두 번씩 입었다.

 연분홍 한복은 웨딩 촬영날과 큰딸의 돌잔치 때 두 번, 새색시의 녹의홍상은 폐백 때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시댁에 갔을 때 이렇게 두 번이다.

 그 한복들을 꺼내 보니 화사한 연분홍 한복에는 23년 전 돌잔치 날 큰딸을 안고 분주했던 흔적이 끝동과 치맛단에 역력히 남아 있었다.


 만약 딸들 중 누구라도 결혼을 한다면 내가 입을 한복을 대여점에서 빌리느니 (비싸게 맞춘) 옛날 한복을 손질해서 다시 입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20대에 입던 한복 그대로 입기는 무리니까 한복 치마 위에 덧입다는 갈래치마로 우아한 느낌을 살리고 저고리 위에는 배자나 두루마기를 입으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냈다.

 방치했던 세월 동안 남은 얼룩을 예전에는 없던 최신 세제와 도구로 최대한 지워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얼룩을 빼다 지쳐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아무리 한복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지만 요즘 입는 혼주 한복에 비해 내 한복은 상당히 동떨어진 디자인과 색감이었다.   

 게다가 갈래치마나 배자를 대여하는 비용이 전체 한복 대여비나 엇비슷하다.

  

 그동안 뭔알 수 없는 미련으로 옷장에서 베란다 창고로 옮 놓을망정 버리지 못한 한복들을 이제는 진짜 버릴 수 있겠다.

이렇게 사진으로 남기고 이제는 아듀




 내 얘기를 들은 후배가, 친구 아들의 청첩장을 받는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직 때가 아닌 건지, 자녀의 결혼을 치러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좀 귀찮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결혼식날 아침 6시 반까지 청담동에 혼주 메이크업을 받으러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애들은 혹시 결혼하려면 오후 늦게 하래야지'라 생각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결혼을 포함해 우리 인생에서 필수인 것은 별로 없다. 인륜지대사라는 결혼도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20대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낸 남자와 빨리 같이 살고 싶어서 결혼했다. 내 선택의 결과로 지금까지 따뜻하거나 춥고, 분주하거나 외로우면서 잘 지내고 있다.

 나의 딸들도 아무 때나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언제라도 결혼하고 싶으면 하는 거다. 스무 살, 마흔 살이라도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쉰, 예순이라도 혼자 사는 게 좋으면 혼자 사는 거다.

 결혼과 비혼은 스스로 선택하되 신중하게 할 것, 신중하게 선택했지만 결국 후회가 된다면 수정을 두려워하지 말 것, 이보다 명확한 답이 있을까.


 점점 더 하기 힘들다는 결혼을 결심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응원과 축복을 보낸다. 그리고 현재의 나 자신을 위해 비혼을 지향 중인 청춘들에게도 하고 싶은 만큼 비혼을 계속할 용기를 주고 싶다.   

 쉰을 넘은 내 친구들 중에는 드물지만 미혼자가 있는데 옆에서 볼 때 그녀들의 일상은 나와 모습이 다를 뿐 똑같이 행복하고 충만하다.

 안에서 볼 때도 우리들의 고민과 외로움은 다르게 생겼을 뿐 총량은 비슷할 것이다.

 나는 배우자와 자녀가 주는 기쁨과 슬픔을 잘 알고 미혼인 친구는 혼자 사는 삶의 기쁨과 슬픔을 잘 안다는 차이일 뿐이다.

 

 고양이와 개가 서로 다른 듯하지만 똑같이 귀여운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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