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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Dec 07. 2023

아침 여섯 시 반에 티브이를 켜면

아침형 인간 코스프레

 찍 출근하는 남편이 아침 6시 10분 나가면 나는 노견과 함께 잠을 잔다.

  '추가 잠'이라 부르는 이 시간에는 밤잠보다 잘 자기도 한다. 발에서 들리는 견의 코 고는 소리는 꿀잠 ASMR이다.


 오늘 아침에는 빨리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김장김치를 발코니에 잠시 뒀는데 연일 10도 이상의 날씨가 이어지더니 오늘도 따뜻한 날이 예보되었다. 김치통들을 냉장고로 옮긴 후에 편안히 추가잠을 자려고 했다.

 그런데 칸마다 사이즈가 다른 김치냉장고에 배치를 하다 보니 부득이 김치를 다른  옮기게 됐다.

  예상과 달리, 체한 김치통을 씻고 주변 정리를 하는 부가 업무가 발생했다.

 꼭두새벽부터 주방에서 꿈지럭거리니 배가 고팠다.

 마침 친한 언니가 만들었다고 주고 간 팥죽이 있었는데 어제저녁으로 먹고 냄비에 반공기 정도 남아있었다.

 그게 없었다면 뭔가를 찾아 먹기 귀찮아서 주린 배를 안고 잤을 텐데 냄비를 데우기만 하면 되니 든든히 먹고 다시 자기로 했다.


 팥죽을 들고 식탁에 앉은 김에 티브이를 켜 보았다. 대체 아침 6시 반에는 테레비에서 뭘 하나 궁금했다.




 수십 개가 되는 케이블 채널은 낮이나 저녁과 똑같이 예능이나 드라마를 재방송하고 있었다. 꼴 보기 싫은 트러블메이커들이 모여서 시끄럽기만 한 예능은 대체 누가 보길래 저렇게 자주 틀어주나 싶다.

 공중파 메인 채널들은 대부분 아침 뉴스를 하는 중이다. 광고 상단에 미리보기로 보여주는 타이틀이 어젯밤 뉴스와 엇비슷하다.


 마케팅의 모든 것이 있는 홈쇼핑에서는 역시 내 친구와 선배들처럼 주로 아침잠이 없는 주부들을 겨냥한 듯한 품목들이 나오고 있었다.

 온열침대, 탄력크림, 밍크퍼가 달린 코트 그리고 주시청자층의 남편들을 배려해서 중년의 활력을 살리는 건강보조식품들이 활발히 판매 중이었다.

 

 밍크 퍼를 조만큼 붙인 코트는 요즘 얼마야 하고 잠시 보다가, 아침 6시부터 밍크에 관심 있음으로 추정되는 시청률에 들어갈 것 같아 급히 채널을 돌렸다.  

 나는 밍크, 여우, 너구리 이런 귀여운 애들 죽여서 붙인 거 입고 다니기 정말 싫다. 몇 년 전부터는 새로 사는 방한의류와 용품을 가능한 한 오리털이나 거위털 아닌 신소재로 선택한다.

 신소재공학 쪽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이 좋은 연구 많이 할 거라고 믿는다.


 팥죽을 다 먹고 빈 그릇 앞에서 리모컨을 렀다.



  좋은 프로그램이 많은 교육방송에서 여행 프로가 나온다.

 주제가 타이완이다. 타이완이라면 동갑내기 사촌동생이 20년 넘게 살고 있는 곳이고 몇 년 전에 딸들과 함께 다녀왔다.

 가오슝이라는 지명이 익숙해서 채널을 고정했다.

 지역의 전통 축제를 소개하는데,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큰 모형을 끌고 행진을 하는 중이다. 액운을 가져간다는 불사자라고 한다.

 원래는 밤에 입에서 불을 뿜는 사자상을 이끌고 행진을 한 후 사자상을 불태웠던 축제인데 환경오염 문제로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증기를 뿜는 사자로 바꾸고 밤이 아닌 낮에 한다고 설명했다.

 불사자 아닌 증기사자의 입에서 몇 초에 한 번씩 나오는 증기는 가정용 스팀다리미 정도 되어서 웃다.

 

 전통도 현대의 변화에 맞춰 적절히 바뀌며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유구한 세월을 살아남았더라도 현재의 사람들수용지 않는 전통은 결국 가치를 잃고 소멸되는 결과만 남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나무통에 떡을 찌는 장면이 나왔다. 옛날에 과거에서 낙방한 선비가 재수 시절에 만들어 팔던 쌀떡으로 우리 백설기에 땅콩가루를 섞은 맛이라 한다. 그 선비가 급제한 후 황제에게 떡을 바쳤더니 황제가 맛을 보고 감탄하며 '장원떡'이라 불렀다는 고사를 소개다.


 우리나라나 대만이나 왕들이 음식을 먹고 그 이름을 짓는 게 취미였나 보다. 때로는 네이밍이 기발해서 감탄이 난다.

 그러고 보면 저 선비는 과거시험에 떨어졌더라도 떡 사업으로 성공했을 것 같다.

타이완의 축제 장면



 

 타이완 풍경에 푹 빠져 있다가 문득 노견을 돌아보니 고개를 저쪽으로 외면하누워있다.


 사람들은  말을 못 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개들은 뒷모습으로도 말을 한다.

 우리 노견은 지금 '아니 오늘은 왜 잠을 안 자고 저 난리야, 귀찮아 죽겠네' 하고 있다


 그래, 나도 배가 부르니 이제 졸리다.

 이른 아침의 일탈을  자야겠다.


 오늘은 우리 동네 병원에 온다는 후배를 잠깐 만나고 장도 보고 안경다리 수리도 하고 운동도 다녀와야지.


 굿나잇, 어게인.

잠 좀 자자,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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